나리타 공항 면세점에서 마주한 한반도 이야기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17] 되돌아보기
▲ 백진훈 의원(왼쪽)과 현창회 회장단의 대화 ⓒ 이상기
[이전 기사] 일본 국회의사당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다
일본의 백진훈 참의원은 3선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헌민주당 소속이다.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계 일본인이다. 조선일보 일본지사장을 역임했고, 2004년 처음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2016년 3선 의원이 되어 평화헌법 수호, 한일우호, 일본인 납치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유학을 해 우리말에도 능통하다. 통역 없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 일본 국회의사당 단체 사진 ⓒ 이상기
일본의 조선통신사 관련 행사는 쓰시마에서부터 도쿄까지 연중 진행된다. 국내에서도 통신사 관련 행사가 부산, 영천 등에서 상당히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통신사 현창회는 국내행사에는 거의 참가하고, 일본 행사에도 선별적으로 참가한다. 이번에도 시즈오카에서 온 나가니시 하루요씨로부터 행사초대를 받았다. 우형택 일본지부장은 일본 행사를 모니터링 하면서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준다. 내년의 사업계획은 연말이나 내년 초에 수립될 예정이다.
도쿄만을 지나 나리타공항으로
▲ 일본 국회의사당 정원의 철쭉 ⓒ 이상기
버스는 이제 미나토구(港區)와 고토구(江東區)를 지나 후나바시(船橋) 쪽으로 가는 것 같다. 버스는 동간토 자동차도로로 들어선다. 밀리는 구간이 없어 3시 정도면 나리타 공항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 여유가 있어 중간에 시스이(酒々井)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 도쿄만 ⓒ 이상기
닛코의 절과 신사를 방문했을 때는 문화유산에 대한 해설을 맡았다. 그것은 그가 문화유산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린노지 보물관에서는 통신사 관련유물의 역사와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도쇼쿠의 조선종에 대한 설명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뿐 아니라 조선종 명문 탁본 2부를 우리 현창회에 기념품으로 주었다. 도쿄의 센소지와 히가시혼간지의 불교적 의미, 조선통신사와의 관련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번 여행에서 두 사람의 역할이 컸다.
나리타 공항 면세점에서 마주친 한반도 이야기
▲ 나리타공항 ⓒ 이상기
그런데 잡지 코너에 익숙한 제목의 주간지와 월간지가 보인다. <주간문춘(週刊文春>과 <문예춘추(文藝春秋)>다. <주간문춘>에는 한반도 관련 기사가 두 건 실려 있다. 늘 그렇듯이 한국 관련 글이 하나 북한 관련 글이 하나다. 마침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난 터라,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는 내용이다. 북한과는 납치문제라는 현안이 있어 그것을 다루는 인터뷰 기사가 났다.
▲ <주간문춘> 기사 ⓒ 이상기
"「(이번 판결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된 (일한) 양국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10월 30일 오후 4시 외무성 4층 응접실. 고노 다로 외상이 기다리고 있던 한국의 이수훈 주일대사를 맞아 무뚝뚝한 표정으로 착석을 촉구하며 엄한 어조로 추궁했다."
▲ <문예춘추> 기사 ⓒ 이상기
한국전쟁 관련 기사를 쓴 사람은 사진전문기자인 야마모토 고이치(山本皓一)다. 전 유엔군 주임속기관(主任速記官) 조지 풀러의 옛날 사진과 자신이 찍은 사진을 실었다. 기사의 제목은 "알려지지 않은 판문점"이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65년을 맞아 귀중한 당시의 컬러 사진을 발굴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판문점 역사 연표'와 야마모토 자신이 촬영한 판문점 사진이 실려 있다.
▲ 정전협정 당시 판문점 ⓒ 이상기
무토 전 대사의 기고문 제목은 "한국 「징용공 판결」 문재인 일선(一線)을 넘었다."이다. 그는 '「있을 수 없다」 판결의 배경에는 일본에 대한 「응석 구조」가 있다'라고 썼다. 그는 강제징용 배상판결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죄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징용 문제는 경제문제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통신사 관련 일에 무거운 책임감 느껴
▲ 가와고에 토진소로이 행사에 참여한 통신사 현창회원: 정사와 부사 ⓒ 이상기
이번 방문을 통해 우리는 21세기 조선통신사 역할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활동 내용을 17회에 걸쳐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역사 속에 남는 일로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조선통신사 선조들을 찾아보고 연구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자세히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닛코까지 그들이 걸은 길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기록이 좀 더 자세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 조선통신사 현창회 ⓒ 이상기
그동안 잊혀져 있던 통신사 교류가 학술적으로 조명된 것이 30년도 채 안 됐다. 잊혀졌던 통신사 되살려 내기, 그것이 우리 통신사 현창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연재를 17회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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