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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공장으로 돌아갑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71명 조합원 복직

등록|2018.12.26 15:04 수정|2018.12.26 15:12
2009년, 공장 밖 생활의 시작
 

노조와해 비밀문건 책임자를 처벌하라2018년 8월 28일, 경찰청인권침해조사에서 2009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의 최종승인 하에 노조와해 시나리오가 조직적으로 실행되었음이 밝혀졌다. 해고자들은 비를 맞으며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2009년 정리해고로 거리에 나왔다. 마냥 거리로 내몰린 것은 아니었다. 해고통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 자신의 퇴직금을 담보로 회사의 신차 개발을 위한 자금으로 대출도 받겠다, 해고 없이 일자리를 나누고 순환 무급휴직을 통해 회사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노동조합의 간절한 메세지들은 고스란히 묻혔다. 최근에서야 그 과정에서 경찰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접 승인 하에 이루어진 '노조와해 시나리오'의 결과였음이 밝혀졌다.

그 과정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상하이기차의 먹튀에 대한 문제제기나 정리해고에 대한 부당함을 외치고 그 해결방안까지도 열심히 외쳤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마치 빨갱이 공산당인 것처럼 왜곡된 비난들이나, 회사가 망하는데 고집을 부리는 이기적인 귀족노조라는 비난들 뿐이었다.

투쟁 이후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옥살이를 해야했다. 오랜시간을 가족들과 동지들과 떨어져 갇혀있으면서 마음에 품었던 고통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옥살이를 하지 않았던 조합원들이라고 편히 지냈던 것은 아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라는 이름에 덧씌워진 낙인은 그들을 다시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자꾸 막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용자동차와 관련된 이력을 지워야만 했다.

정리해고법은 IMF 이후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해도 괜찮다는 법이다. 그러나 참 우습게도 자신의 잘못도 아닌 채 기업의 경영상의 문제로 해고된 이들을 책임지는 법은 없다. 국가는 정리해고를 허가해두고도 이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은 마련하지 않았다. 해고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낼 수 밖에 없었다.

2018년 9월 14일,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하다 
   

노노사정 대표, 대한문 분향소에 방문하다 2018년 9월 13일 쌍용자동차해고자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에 앞서 노노사정 대표가 분향소를 방문했다.기업노조 홍봉석 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서 있고,쌍용자동차 최종식 대표이사가 분향 중이다. ⓒ Jombbae Jum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7월 3일, 서른 번 째 영정을 안고 해고자들은 대한문 앞으로 갔다. 2012년 4월, 스물 두 개의 영정을 안고 갔던 그날로부터 벌써 6년이 흘렀으나 변한 건 없었다.

2015년 말, 2017년까지 해고자들의 순차적 복직에 합의했었지만 2018년인 현재까지 복직은 묘연했다. 그 과정에서 또 두 사람이 희생됐다. 기다리는 동안 해고자들의 아픔은 점차로 증가됐다. 해고자들은 '기다리라고 할 거면 최소한 기다릴 수 있는 무언가라도 주고 기다리라고 하라'고 울부짖었다. 적어도 복직 기한을 언제까지로할지, 확정지어달라 부탁했다. 지난했던 9년의 세월이 계속 이어져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2018년 9월 14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전원복직에 합의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 기업노조, 쌍용자동차 사측, 경제사회노동위원회까지 노노사정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며 합의했다.

합의안의 골자는 간단히 볼 때 이러하다. 2018년도 내에 해고자 60%, 2019년 상반기까지 나머지 40%를 단계적으로 채용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려 노력한 노사의 합의에 존경을 표하며 회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80일간의 대한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해고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가족들과 기대를 나누기도 했고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주었던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러 다녔다. 그리고 연대로 이겨낸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투쟁이었기에 다른 투쟁장의 연대자로 함께하기위해 분주하다.

그렇게 12월, 오늘로 2018년이 닷새 남았다.

2019년에는 공장으로
 

12월 31일, 공장으로 돌아갑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조합원 총회에서 앞으로 복직 이후의 투쟁결의를 다지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고태은


2018년 내에 복직을 약속받은 사람들은 119명의 해고자들 중 60%에 해당하는 71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공장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2018년이 끝나기 전에 해고자들이 복직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해고자들은 아직 기다리고 있다.

연대자로 지켜보는 마음에도 불안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2015년에도 합의했다가 지켜지지 못해 다시 합의한 것이 아닌가. 이번 합의도 지켜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한 시선들이 여러 곳에서 올라온다. 그러는 중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어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2월 31일 복직 축하 기자회견에 시민들과 기자들을 초대했다.

2019년이면 투쟁 10년차이다. 30대에 거리에 나온 이들이 벌써 50을 바라보고 있다. 더 늦으면, 복직 전에 정년을 맞이하는 해고자들도 늘어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복직은 노조와해 시나리오를 조직적으로 발동0시켰던 이명박 정부의 만행으로 겪었던 고통을 직시하고, 더이상 개인들을 죽음으로 몰지 않겠다는 약속의 산물이다. 그 과정에는 시민사회의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있었다.

이번 합의과정에서 다 같이 복직하는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왜 버티지 않았냐는 말에 김득중 지부장은 더이상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복직대기자들 중에 가장 마지막 복직을 선택하고, 모두가 들어간 이후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의 의미는 그저 선언이기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 바람이 또다지 무너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 자체가 이루어지기를 함께 바란다.

너무 늦었지만, 2018년 12월 31일에는 공장으로 돌아가게 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공장으로 복직한 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준 시민들을 위해 사회의 아픈 곳에 함께 연대하겠다는 이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2018년 마지막 날 아침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함께 보내고 배웅하는 자리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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