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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가 청년에게 밥 먹여준다

등록|2018.12.31 16:40 수정|2019.01.02 10:47
밥을 먹으려면 밥솥이 필요하다. 쌀만 있다고 밥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쌀은 소화도 잘 안 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정책(밥)이 있는데, 만들 정치 구조(밥솥)가 없다면, 사회적 요구(생쌀)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 배우 하정우 '먹방' ⓒ


사회적 요구와 압력을 바탕으로 정책은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 스며든다.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정치가 하는데, 문제는 한국 정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못난 정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들지만, 청년은 더욱 힘들다. 한국의 청년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고용률이 현저히 낮고, NEET 비중이 높고, 졸업 5년 후 NEET 비율은 가장 높으며, 한국 내 전체 임금근로자에 비해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다는, 외부자성의 부정적 측면을 중첩적으로 가지고 있다(김영순 2017).2) 청년이 못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앞장서야 할 이유이다.

1) NEET : 니트족(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젊은이) - 출처 : 네이버 사전
2) 참고문헌 : 김영순(2017) 청년노동조합운동의 복지 의제와 복지국가 전망(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를 중심으로)

정치를 바꾸면 청년의 삶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첫째 청년에게 알맞은 정책이 만들어질 환경이 조성된다. 현재 청년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청년기본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는 청년 의제를 사명으로 정치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청년 운동가들의 헌신으로 청년 의제를 이슈화하고, 정책으로 만들어 왔다. 거버넌스를 확장하여 '사회적 조정' 기구에 참여하기도 한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강제할 힘이 거버넌스 기구에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서울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수당'과 같이 지자체 수준에서 큰 정책성과를 거둔 사례들도 더러 있지만, 청년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청년기본법 법안 하나가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사회적 수준에서 청년의 삶을 바꿀 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가 바뀌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선진적인 청년 정책이 만들어지는 유럽 국가들은 어떠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여기에 해답이 있다. 바로 '비례대표제'로 만들어지는 선진적 민주주의다. *복지국가는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에 기초한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 곳에서라야 비로소 순조롭게 발전해 간다(최태욱 2013). 정상적인 정치 구조라면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조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그다음 합의 이행 단계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참고문헌 : 최태욱(2013) 경쟁력을 위한 사회적합의주의 발전의 정치제도 조건(네덜란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한국)

여기에 선진 유럽국가와 한국의 차이가 있다. 한국은 말 바꾸기 정치가 일반적이다. 정치인들이 특정 의제를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1등만 하면 그만인 현행 선거제도 때문이다. 유럽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포함한 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한다. 비례대표 선거제도는 1등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이 득표한 만큼에 비례해서 의석을 나누어주는 제도이다. 한국에도 청년을 위하는 정당이 있다면, 사회적 요구의 크기만큼 큰 정치세력이 탄생하고, 비로소 말 바꾸기 정치가 줄어들 수 있다.

둘째는 청년의 정치 참여가 수월해진다. 1등만 당선되는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치 구조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사람, 재력이 있는 사람이 선출되기 쉽다. 청년정치가 필요하지만, 청년들은 사회적인 명망을 쌓을 시간도, 자신을 홍보할 재력도 부족하다.

반면, 비례대표제로 만들어지는 정치 구조에서는 소수정당들이 얼마든지 국회에 진출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유력인물 영입을 위해 공천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에서 성장한 능력 있는 청년들이 청년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가게 된다. 정당 정치 문화가 성숙한 유럽국가 곳곳에서 청년 정치 돌풍이 부는 것은 비례대표 선거제도로 조성된 정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한국의 정치 구조(를 만들어내는 선거제도)는 왜 청년에게 해롭나?

비례대표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현재 소수정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개혁 목소리가 높은 정치개혁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리를 알기 위해, 현재 한국의 정치 구조, 즉 한국의 선거 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한국은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앞서 간단히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후보만 당선되도록 한 선거제도다. 1등 한 사람의 득표가 과반을 넘지 않더라도, 1등이라면 당선자가 된다.

이런 소선거구제에서는 정당 지지율을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비례성 문제가 발생하여 민심이 왜곡된다. 과반이 아니어도 1등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얻은 득표율에 비해 거대정당은 '과대대표'된다.

심한 경우에는 매우 적은 득표로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하기도 한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37% 득표로, 과반이 넘는 51%의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소수정당은 '과소대표' 된다.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7% 이상 득표했으나 단 2%의 의석만을 얻게 되었다. 또한, 당선자가 아닌 후보를 지지한 표들은 모두 사표가 된다.
   

▲ 가장 최근인 20대 총선 결과를 두고 의석 전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아도, 실제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현행 선거제도는 정당 지지율에 준하는 의석을 보장하지 않는다. ⓒ 비례민주주의연대


불비례성과 사표 발생이라는 정치 제도적 한계는 정치 구조 또한 심각하게 왜곡한다. 명확한 정책적 지향성을 가진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치중하거나, 정책적 차이가 모호한 대중영합적인 공약만 남발한다.

또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거의 모든 권리를 독식하기 때문에, 다른 정치 이념과 정책을 수용하지 않고 배척한다.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불공정하게 분배되어 있는 사회적 자원을 재분배하는 정치가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 구조 속에서는 유의미한 청년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개혁조차도 '복지 의존성 강화'의 쟁점화라는 상황에 가로막혀 있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노대명 외 2009, 117) 근로 능력이 있는 청년층을 위한 정책이 어떤 비판여론에 부딪힐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김영순 2017, 254)." 유럽의 선진적 청년 보장 제도들은 장기적인 정치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거제도의 한계로 인한 정치 구조의 왜곡은 청년을 위한 정책 입안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문제도 살펴보자. 현행 선거제도는 1인 2표제로 지역구와 정당에 각각 투표한다. 그런데 심각한 한계가 있다. 비례대표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핵심 가치인 '비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는 국회의원 정수 300명 중 지역구 의석을 253석, 비례의석을 47석으로 정해 비례의석만을 정당 득표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도는 거대한 지역구 의석에 매우 적은 비례의석을 덧붙이는 형식이기 때문에 전체의석 비율이 정당 득표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나아가 유력정당이 유력인물을 영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행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하고 있다.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거대정당의 움직임은 이러한 맥락과 상통한다. '비례성'이 없는 병립형 제도가 청년의 정치 세력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는 왜 대안인가?

현행 선거제도의 많은 문제점에 대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불비례성과 사표 발생이라는 제도적 한계를 해결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현행 지역구 선거는 유지하되, '비례성'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고 의석수를 360석으로 늘려, 비례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석을 확보하고, 전체의석 수를 정당 득표와 연동하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더라도 정당득표에 비례하여 의석을 보장한다. 전체의석 수가 100개라고 가정했을 때, A정당의 정당 득표가 30%면 30의석을, B정당의 정당득표가 50%면 50의석을 보장하는 것이다. A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31의석을 얻었다면, 의석을 보충하지 않는다. 1석의 초과의석은 허용한다. B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38석을 얻었다면, 정당 득표에 맞춰 12석을 비례의석으로 연동하여 보충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역구 선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다.

'비례성'을 확보하면, 유럽 선진국과 같은 정치 구조를 가지게 된다. 민주주의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물 중심 정치가 해소되고, 정당 중심 정치가 자리 잡는다. 대중영합적인 정책이 남발하는 선거가 아니라, 정당 이념에 따른 정책 선거를 치르게 된다. 득표율에 따라 소수정당도 거대정당도 실력만큼 공평하게 의석을 가지게 된다.

다양한 사회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게 된다. 배제의 정치를 합의와 조정의 정치로 변화시킨다. 합의와 조정을 통해 다듬어진 정책은 쉽게 폐기되지 않고, 지속성을 보장한다. 선진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선진적 정치를 통해 다양한 사회 계층의 요구에 응답하는 정책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왔다. 청년의 사회적 요구에 맞는 청년정책과 청년 정치를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밥이 필요하면, 밥을 어떻게 지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알맞은 밥솥이 필요하다. 지금의 밥솥은 낡고 구태의연해서 청년들이 먹고 싶은 밥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밥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그로 인해 만들어질 '개선된 정치 구조'다.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외쳐보자, 배고프다 밥솥 한 번 바꿔보자!
덧붙이는 글 강지헌 기자는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입니다.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1월 27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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