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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다시는 장일순 같은 인물 나오기 힘들것"

[무위당 장일순평전 36회] 리영희는 장일순을 언제 만났을까

등록|2018.12.30 16:54 수정|2018.12.30 16:54
 

장일순 선생무위당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리영희의 신념 체계를 크게 바꿔놓은 사람이 장일순이다. 리영희는 장일순을 언제 만났을까.

그게 정확히 몇 년도라는 생각이 나질 않아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쯤인데 그 무렵 김지하 시인이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었어요. 제기동에 살 때인데 김 시인이 이런 분이 계시다고 해서 원주로 찾아가게 된 것 같아요. (주석 1)

리영희는 암담한 시대에 마음이 외롭거나 영혼이 적막할 때이면 장일순을 찾아 원주로 내려갔다.

자주 내려갔어요. 우선 순전히 물질주의적인 사회, 콘크리트 속을 떠나서 선생님 댁에 가면 아까 말한 것처럼 마당과 주변에 살고 있는게 그냥 자연이니까. 자연과 하나가 되는 속에서 아주 차원이 다른 인간적 생존양식 같은 것을 느끼고는 했거든요.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생활에서 정신적인 생활로, 또는 현대 자본주의적인 생활에서 인간본연의 생활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주석 2)
 

▲ 임옥상 화백이 그린 리영희 선생. ⓒ 한겨레 제공

리영희는 장일순을 사숙하고 배우면서 자신과 크게 다른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무위당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어울려서 사는 분의 사상이나 자세에는 어림도 없죠.

나는 너무 서양적인 요소가 참 많아요. 사회를 직선적으로, 구조적으로,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보려고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분석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같은 의미에서 무위당은 종합적이랄까, 총괄적이랄까, 잡다하게 많은 것을 이렇게 하나의 보자기로 싸서 덮고 거기에 융화해 버린단 말이에요. 난 그걸 굳이 골라서 A,B,C‥‥ 이렇게 분석하고 그러니까 작은 거죠. 차원이 낮은거고.

둘째는 역시 나는 감히 못 따를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자세인데, 그 철저하면서도 하나도 철저한거 같지 않으신, 이게 말이 좀 모순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 삶이 얼마나 철저합니까. 그렇게 살 수가 있어요?

한 예로 그 집의 변소를 보면, 남들은 전부 개조해서 세상을 편리하게만 살아가려고 고치는데, 그냥 막 풍덩풍덩 소리가 나고 튀어오르고 야단이 났어요. 지금도 그 부엌이 그대로인지 모르지만 사모님 사시는 부엌도 그렇지, 마당 그렇지, 우물 그렇지.
(주석 3)

리영희도 매사에 철저한 사람인데, 장일순은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다시는 장일순과 같은  분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런 크기를 지니고 사회에 밀접하면서도 사회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속에 있으면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시키면서도 본인은 항상 그 밖에 있는 것 같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밖에 있으면서 인간의 무리들 속에 있고, 구슬이 진흙탕에 버무려 있으면서도 나오면 그대로 빛을 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이 이제 없겠죠. (주석 4)

인간(人間) 관계는 상대적이다. 사이간(間)을 쓰는 이유도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뜻하는 것이다. 리영희만한 그릇이기에 장일순의 '무위자연'의 큰 그릇이 보였을 것이다.

주석
1> 앞의 책, 63~64쪽.
2> 앞의 책, 66쪽.
3> 앞의 책, 69쪽.
4> 앞의 책, 7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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