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논문 표절 교수, 3년 지나면 징계 불가능?
서울대·교육부, 표절 징계시효 '면죄부' 논란... 법원은 "표절 피해 있으면 시효 유지"
▲ 서울대 정문 ⓒ 연합뉴스
서울대 국문과 박아무개 교수 논문 표절 사건을 계기로, '징계 시효'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아래 진실위)가 박 교수의 논문과 단행본 12편을 표절이라고 판정했지만, 교원징계위원회(아래 징계위)는 교원 징계시효 3년 규정을 들어 이 가운데 논문 1편만 징계 대상에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관련기사: 표절 판정 서울대 교수, 제보자 '법적 조치' 압박).
서울대와 교육부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을 표절 논문을 작성하거나 제출한 시점으로 해석해, 작성된 지 3년이 지난 논문은 그 뒤에 표절로 밝혀지더라도 징계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대학 징계시효 규정이 표절 교수에게 '면죄부'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완성된 지 3년이 지난 표절 논문은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서울대와 교육부 주장은 사실일까?
[서울대·교육부 주장] "표절 논문, 완성 시점에서 3년 지나면 징계 불가능"
서울대 진실위는 지난 9월 20일 국문과 박아무개 교수가 지난 200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쓴 논문과 단행본 12편을 표절(연구부정행위)로 판정했다. 진실위는 "위반의 양과 기간 등 이 사건의 경위에 비추어 연구진실성 위반의 정도는 상당히 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 사실상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요청했다.
교육부는 지난 2017년부터 국립대 교수가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 시 최대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징계양정 기준을 강화했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의 경우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는 '파면',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인 경우'나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는 '해임'하도록 했다.
문제는 '징계 시효'다. 서울대는 현재 국립대 교수 징계 기준이 따로 없다며 사립학교법을 준용하고 있는데, 사립학교법 제66조 4항(징계사유의 시효)은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이 지난 경우에는 징계 의결을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의 표절 문헌 12편 가운데 이 같은 '징계시효' 규정에 부합하는 건 지난 2015년 <비교한국학>에 실린 '한중 근대문학 비교의 쟁점: 이육사의 문학적 모색과 루쉰' 1편뿐이다. 징계 대상이 단 1편이라도 위반 정도가 심하고 고의성이 있으면 중징계는 피할 수 없지만 징계 대상이 줄어든 만큼 징계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대 인문대학 일부 교수들이 박 교수 구명 운동을 벌이고, 박 교수가 최근 로펌을 통해 제보자에게 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를 압박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도 이 같은 징계 시효 규정을 이용해 징계 수위를 최대한 낮추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실제 서울대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을 표절 판정이 이뤄진 지난 9월이 아닌 해당 논문을 작성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31일 "징계위에서는 징계시효 안에 드는 연구 실적만 징계 대상으로 논의한다"면서 "박 교수의 경우 (진실위에서 표절 판정한 12편 가운데) 1편만 징계 대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징계시효 이전에도 연구부정행위가 상습성, 연속성이 있으면 징계위에서 참작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지난 2013년 3월에도 논문 17편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강수경 수의대 교수를 해임하면서 당시 교육공무원법상 교원 징계시효인 2년을 적용해 2010년 12월 이전에 쓴 논문 11편을 제외한 6편만 징계 대상으로 올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 관계자도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에 따른 징계시효는 비위가 있는 날부터 3년을 적용하고 있고 그 이후엔 징계가 불가능하다"면서 "징계시효 기산 시점은 표절 판정 시점이 아닌 연구 자료를 제출하거나 해당 논문을 완성한 날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법원 판례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윤리 학계 반박] "논문 작성 아닌 표절 판정 시점부터 징계시효 따져야"
연구윤리 학계에서 논문 표절과 같은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검증 시효'가 점차 사라지고 있고 '징계시효' 적용에도 부정적인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지정 연구윤리정보센터는 "국내 여러 대학에서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을 논문이 게재된 날로 보아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연구부정행위로 판정난 날로 보아야 함이 더욱 타당하고 징계가 가능하다는 견해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과거 교육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연구행위의 진실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시효(검증 시효)를 5년으로 규정하기도 했지만, 지난 2011년 6월 지침 개정 이후 이 규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주요 대학에선 '징계 시효'를 적용해 논문 표절 교수를 무혐의 처리하거나 서면 경고, 주의 등 경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지난 3월 전국 4년제 대학 183개를 대상으로 연구부정행위 징계 처리 결과를 조사한 결과, 2017년까지 4년간 각 대학 진실위에서 표절 판정한 20건 가운데 '파면'은 단 1건도 없었고 중징계에 해당하는 '해임'과 '정직'도 각각 2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경고(2건), 견책(2건), 감봉(3건) 등 경징계였고 '시효 만료'를 포함한 무혐의 결정도 3건이었다.
연구윤리정보센터장인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는 "연구부정행위가 학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데 비해 징계시효가 너무 짧아 부정행위 제재 효과가 미미하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논문 표절이 학계에 알려지고 제재하는 데 보통 3~5년 이상 걸리는데 징계시효를 두는 건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제재 대상이 1건이라도 시효를 벗어난 다른 부정행위가 알려졌을 경우엔 징계시효를 떠나 가중 처벌해야지, 제재 대상이 적다고 징계수위를 낮추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 판례] 서울중앙지법 "표절 피해 발생시까지 징계시효 유지"
한국저작권위원회 표절위원장을 지낸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5년 펴낸 <표절론>(현암사)에서 "표절에 검증시효 제도가 인정될 수 없다"면서 "표절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해가 고착된다거나 안정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표절이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시효로 보호해줄 이유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이 책에서 논문 표절 징계시효를 사실상 무력화한 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011년 2월 10일 논문 표절로 면직 처분을 받은 한 연구원이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원고 쪽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원고는 해당 논문을 발표한 시점이 2002년이어서 징계 시점인 2010년엔 이미 징계시효 2년을 넘겨 징계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징계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이라 함은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가 종료된 시점'을 말한다"면서 "이 사건 도서가 발간 이후 이 사건 면직 무렵까지 시중에서 판매 내지 배포되어온 점,(중략) 등에 비추어보면 원고의 저작권 침해 행위는 이 사건 징계절차 개시 전까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고 할 것"이라며 원고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도 "이 사건 도서의 출판 이후 다른 테러리즘 연구자들이 실제로는 원고가 표절한 사건 논문 중 테러리즘의 정의 및 역사 부분을 원고가 원저작자인 것으로 알고서 원저작자의 논문이 아닌 원고의 이 사건 도서 중 이 사건 논문을 인용해 오고 있는 점"까지 추가해 결국 국방연구원의 면직 처분이 타당했다고 판결했다.
남 교수는 "비위행위가 있고 그에 따른 피해가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경우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가 종료된 시점'은 '피해 발생 시점'"이라면서 "표절물이 서점의 유통경로나 도서관에서 완전히 회수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표절이라는 비위 행위는 종료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판정 결과] "3년 지난 표절 논문은 징계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논란'
서울대와 교육부는 그동안 사립학교법이나 국가공무원법상 교원 징계사유 발생 시점을 표절 논문 작성 시점으로 좁게 해석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표절 논문은 징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구윤리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과거 5년이었던 논문 표절 '검증 시효'도 지난 2011년 이후 점차 사라지고 있고, '징계 시효' 역시 논문 작성 시점이 아닌 표절 판정 시점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서울중앙지법도 이미 지난 2011년 국방연구원 사건 판결에서 징계 사유 발생 시점을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표절)가 종료된 시점'으로 폭넓게 해석해, 표절 논문이 시중에 배포·판매되고, 다른 연구자에게 인용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는 동안에도 저작권 침해 행위가 계속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이 국공립대 교수 논문이 아닌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논문(단행본) 표절 행위를 대상으로 했지만, 논문 표절 행위의 '징계사유 발생 시점'에 대한 서울대·교육부와 사법부의 해석이 엇갈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작성된 지 3년 지난 표절 논문은 징계 시효가 지나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서울대와 교육부 주장은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고 상충되는 판례와 같은 중요한 사실을 누락했다고 판단해 '논란'(절반의 진실)으로 판정했다.
[근거자료]
남형두, <표절론>, 2015, 현암사 p.526~558
서울중앙지법, 2011년 2월 10일 선고 판결문(2010가합57966)
서울교대 연구윤리연구센터, '연구부정행위의 검증시효'
한국연구재단, '2017년도 국내 연구윤리 활동실태 조사 및 연구윤리 위반 요인 분석', 2018년 3월 최종보고서(한국대학교육협의회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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