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달군 연예인 더빙 논란... 현직 성우 반응은 이랬다
[기획] "가이드 떠준다" 발언 논란... 관련 업계 사람들 의견 들어봤더니
▲ <구스 베이비> 스틸 사진 ⓒ (주)이수C&E
최근 같은 날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한꺼번에 개봉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와 국산 애니메이션 <언더독>, 전현무가 더빙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구스베이비>가 16일 동시에 개봉한 것이다.
또 <주먹왕 랄프2>와 <극장판 공룡메카드: 타이니소어의 섬>이 1월 초에 개봉해 아직도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곧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3>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풍성한 연초가 될 것 같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배우나 개그맨 등 성우가 아닌 사람이 더빙이나 목소리 연기에 참여하는 일명 '연예인(비성우) 더빙'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 얼마 전 열린 애니메이션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비성우인 연예인(박성광)이 "(성우가) 일명 가이드를 떠준다"는 발언을 했고, 이 사실은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이드를 떠준다'는 말은 비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하기 이전에 전문 성우가 직접 대사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성우가 한 번 작업을 하고 비성우가 한 번 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성우의 입장에서 이런 작업 방식은 허탈감이 드는 일일 수밖에 없다.
▲ 2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역 인근 영화관에서 <구스 베이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전현무, 유아, 박성광이 참석했다. (주)이수C&E ⓒ (주)이수C&E
그렇다면 왜 이렇게 번거롭게 작업하는 것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마케팅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상업 영화에 비해 관객층이 폭넓지 않다고 여겨지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화제성 높은 연예인을 더빙에 참여시킬 경우 홍보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을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연예인을 기용할 경우, 초반부터 관객들이 캐릭터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스 베이비>의 전현무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로 이미 특유의 캐릭터가 구축돼있다.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를 캐릭터로 입혔을 때 해당 캐릭터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보사를 통해 입장을 밝힌 <구스 베이비>의 심정희 더빙 연출가는 "모두에게 익숙한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 발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캐스팅 자체가 캐릭터인 것이 스타 더빙의 장점"이라며 "<구스 베이비>를 빛나게 한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라고 비성우 더빙의 장점을 전했다.
최근 비성우 더빙이 줄어든 이유
▲ ⓒ 메가박스㈜플러스엠
익명을 요청한 한 더빙 피디는 "그래도 요즘 비성우 더빙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5~10년 전만 해도 마치 유행처럼 배우와 개그맨, 혹은 아이돌 가수 등을 기용한 애니메이션이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순재, 송강호 같은 대배우들이나 아이유 같은 뮤지션도 한때 더빙에 참여했다. 이순재씨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업>(2009) 당시 인터뷰에서 "호흡 방식이 달라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작업의 어려움을 언급한 바 있다. 그 즈음엔 오히려 비성우를 섭외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이 예외적인 케이스로 주목받아 기사화됐다(관련 기사: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예인 섭외 안 한 이유요?" http://bit.ly/LRnBOr).
사실 '연예인 더빙'을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더빙의 질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우의 전문 영역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2017) 더빙판은 더빙 경험이 없는 배우들과 역시 더빙 연출 경험이 없는 피디를 기용했다가 대중들이 기대할 만한 완성도를 내놓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16일 개봉한 영화 <언더독> 오성윤 감독 역시 이러한 인식에 대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우를 쓰느냐 배우를 쓰느냐를 논하기 이전에 영화와 잘 맞느냐, 목소리가 잘 어울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언더독>의 경우 배우 도경수를 비롯해 배우들을 기용하는 게 영화의 분위기에 더 맞다는 것이다. <언더독>의 경우 배우 캐스팅을 먼저 진행한 뒤 그들의 연기에 맞춰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 <언더독> 스틸컷 ⓒ 오돌또기, NEW(주)
그렇다면 실제로 비성우 더빙의 경우 작품의 퀄리티가 얼마나 떨어질까. 한 더빙 피디는 "해외에서도 배우들이 더빙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 보통 퀄리티가 떨어져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시간 싸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디의 말에 따르면, 비성우인 연예인들은 아무래도 더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더빙 피디 역시 시간 배분을 언급했다. 피디는 "비성우인 연예인이 한다고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라며 "하지만 전문 성우들처럼 몇날 며칠 감정을 읽어내고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이 있을까?"라고 피력했다.
이 피디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면서 성우가 아닌 배우 기용을 많이 말하는데 먼저 목소리 연기를 진행하고 그 위에다가 그림을 입히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는 수입해오는 애니메이션이 많고 국산 애니메이션도 작업 방식도 이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선상에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피디는 비성우가 더빙을 맡은 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언급하면서 "대사를 하나씩 녹음해서 잘라 붙이고 또 잘라 붙이고 그렇게 힘들게 편집 작업을 거쳐서 겨우 완성했나 보더라. 그러니 연기는 비교적 잘 나왔는데 그 연출 과정이 너무 힘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또 이 피디는 개그맨들이 자신의 유행어를 영화 더빙에 끼워맞추려는 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작품의 재해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길게 봤을 때 원 작품의 훼손에 가깝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 개그맨들을 써서 더빙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창작 애니는 배우들의 목소리로?
▲ 21일 서울 신사동 CGV압구정에서 열린 영화 <언더독>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오성윤 이춘백 감독과 배우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 이준혁. ⓒ 정교진
한편, 국산 애니메이션의 경우 수출을 목표로 한다면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연예인이 했을 때 더 긍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비성우 연예인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을 때 그 연예인을 쓰는 게 맞다는 것이다. 무조건 비성우 출신이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에 맞춰서 목소리 연기를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한 더빙 피디는 "성우가 하는 게 맞냐 비성우가 하는 게 맞냐고 물었을 때 정답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돌 출신이 배우로서 데뷔를 하기도 하고 성우가 연예인으로 인지도를 쌓아 사회를 보는 세상에서 목소리 출연을 성우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전문 성우 이상의 충분한 연습 시간이 주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한 성우는 "저희 역시 가수도 연기를 하고 뮤지컬도 하고 장르 구분 없이 활동하는 추세이다 보니 비성우 더빙을 완전히 반대하는 건 아니다. 연기에 대해 열정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충분히 찬성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티켓파워나 인기몰이를 목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연기력으로 도전하는 분들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나도 다른 장르에 도전한다면 그 업계 전문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배우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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