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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자격증, 어디까지 필요한가

[현장에 답이 있다] 위험물 누출, 항공기 추락, 산불화재 등 출동대원 자격기준 없어

등록|2019.01.19 16:18 수정|2019.01.19 16:18
소방관이란 이름이 만능은 아니다

아주 오랜 전 시골에서 트럭을 직접 운전해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한 노인을 본 일이 있다. 면허시험에서 탈락한 그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것처럼 보이는 능숙한 운전 실력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를 '무면허 운전자'라고 부른다.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운전을 잘하는 것이 어쩌면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면허증은 차량을 운행하기 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법정 의무사항이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출동하는 우리의 소방관들은 화재, 구조, 구급이라는 기본 서비스 외에도 한층 복잡하고 위험한 사고현장에 출동한다. 화학물질 누출사고, 항공기 추락사고, 산불화재, 수난 및 산악구조 등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 지난 해 9월 경남소방 119 특수구조단 소속의 생화학구조대 차량이 출동대기를 하고 있다. ⓒ 이건


하지만 전국에 위치한 9개 소방학교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화학물질, 항공기, 산불화재 등에 관한 일부 교육과정은 있으나 대부분이 별도의 전문 자격과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소방관이란 이름으로 자격증도 없이 위험한 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처럼 출동대원 임무에 따른 세부적인 자격기준이 마련돼야

미국소방의 기본 컨셉은 모든 소방대원들이 자신이 맡은 직무를 수행하기 전 반드시 관련분야의 자격증(Certificate)을 취득해야 한다.
 

▲ 2007년 필자가 취득한 미 국방부 '위험물 현장지휘관' 자격증(Certificate) ⓒ 이건


관련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이유는 앞서 무면허 운전자의 사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방관의 오랜 경험이나 경력과는 별개로 특정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 소방대원 자격증 목록과 이를 우리말로 번역해 소방학교에 자격과정이 있는지 여부를 정리해 아래 표를 만들었다.
 

▲ 미국과 한국 소방대원 전문자격 비교표 ⓒ 이건


표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 화재진압 및 화재조사, 구조, 구급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 자격과정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현장전문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소방관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자격 기준도 없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관련분야를 연구하고 또 이론과 실기평가라는 검증을 거쳐 소방관 스스로 준비된 자신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훈련 정책의 변화가 요구된다.

미국이 이렇게 세부적인 자격기준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현장 전문성 강화'와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 확보' 때문이다.

만약 미국소방 자격시스템을 우리가 도입한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난 2011년 미국소방관 기본자격인 'Firefighter I, II'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진 '화재진화사'라는 자격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단순히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평가에서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등 일부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소방관들을 위한 자격과정은 소방관의 보건과 안전, 그리고 현장 전문성을 높여 소방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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