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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죽소년단이 악어나 뱀 가죽 안 쓰는 이유

지역 자원 연계로 순환 경제를 꿈꾸는 강동구 젊은이들

등록|2019.01.25 20:25 수정|2019.01.25 20:25

▲ 강동구 암사동에 자리잡은 서울가죽소년단 작업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은정 서울가죽소년단협동조합 이사장은 강동구 토박이다. 강동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 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다. 그에겐 한 가지 풀고 싶은 숙제가 있었다. 고향에서 일하면서 놀고 즐기는 것이다.

"합정동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출퇴근에만 3시간을 허비했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육체적인 피로감 때문에 행복도가 많이 떨어졌어요. 제 철학은 집과 사무실은 무조건 가까워야 한다는 거예요." 

집 동네에서 일하고 친구들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지낼 방법은 없을까. 그가 찾은 방법은 협동조합이었다.

서울가죽소년단협동조합(이하 서울가죽소년단)은 2016년 고용노동부가 8개월에 걸쳐 진행한 가죽패션창업협동조합 과정을 마친 수료생들이 만들었다. 가죽을 처음 접해본 사람부터 7~10년 차 베테랑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창업을 목적으로 기술을 익히긴 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각자 2%씩 부족한 점들이 있었다.

"혼자 물건을 만들어 팔기엔 너무 영세하고 힘드니까 같이 하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했습니다." 

8명에서 시작한 조합원 수는 3년 차가 되는 올해 20명으로 늘어났다. 가죽공예를 익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협동조합에서 맡은 주 임무는 제각각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제가 잘하는 건 제작입니다.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지만 회사 운영 부분에서는 자신이 없었어요. 이 역할은 지금 이사장님이 잘 해내 주시고 있죠. 협동조합은 그런 부분에서 나눔을 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 강사 출신 최영남 조합원

제작자로 참여한 조합원은 9명. 나머지는 IT 종사자, 작가, 웹디자이너, 영상 촬영 등 각자의 소질을 발휘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옛 직장에선 하루 일이 끝나면 '해방이다'라는 생각이 짙었지만, 협동조합에선 내가 좀더 일하면 회사가 '더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적극성을 띠게 됩니다. 누구의 회사가 아니고 내 회사니까요." - 김윤미 조합원

지역 자원 연계... 청년과 시니어 상생하는 일자리 창출
 

▲ 전은정 서울가죽소년단 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조합원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가죽소년단이란 이름에는 세 가지 큰 뜻이 담겨 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청년(소년단)들이 지역 자원(가죽 공장과 공방들)들과 연계해 제품을 생산하고, 지역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하는 순환 경제를 만든다는 뜻이다.

강동구는 서울 소재 가죽 산업체의 1/3이 밀집해 있다. 과거 이태원과 동두천 쪽에 몰려 있던 가죽 제조 공장들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재정비되면서 외곽으로 빠져나가 구두는 성수동, 가죽은 강동구로 나뉘게 됐다.

"강동구는 베드타운입니다. 젊은이들이 일할 자리가 많지 않아요. 전 강동구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300여 개 가죽 공장이란 지역 자산을 활용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청년은 물론 시니어도 같이 일하고 즐기면서 자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될 수 있으리란 걸 말이죠."

강동구청 사회통계에 따르면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업자 연령대가 50~60대에 쏠려 있고 연령대별 인구 분포 면에서 청년 비중은 20% 미만이다.

"하나의 가죽 제품이 완성되기까지에는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고 단계별로 요구되는 기술이 다릅니다. 처음 접하는 분들은 주로 재단과 바느질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능력치에 따라 일을 나눠서 시니어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교육을 통해 기술을 공유하고 전수하면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합니다. 이것이 다른 제조회사와 다른 지점입니다." 

서울가죽소년단은 2년 넘게 강동시니어클럽에 교육을 지원하며 제품을 같이 만들었다. 이 같은 결과물로 시니어 2명을 고용했고 일감이 생길 때마다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시니어들도 8명에 이른다.

"우리의 사회적 미션은 청년과 시니어가 가죽제작이란 사업을 통해 같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시니어와 청년들을 교육하고 제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서울가죽소년단은 경기도 하남자활센터에 취약계층을 위한 가죽제조 교육과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고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진로체험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서울가죽소년단협동조합은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

가방 브랜드 'TEMP°S(템츠)' 론칭... 해외쇼에서 호평
 

▲ 서울가죽소년단이 2018 밀라노 가죽패션쇼 MIPEL에 첫 선을 보인 가방 브랜드 ‘TEMP°S(템츠)'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가죽소년단의 수익 모델은 디자이너 샘플 제작이나 소량 생산, 교육과 컨설팅, 자체 제작과 브랜드 상품 등이 있다.

"정확한 수익모델 없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건 동아리지 사업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일단 협동조합 만들어 보세요'라고 등 떠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돈이 안 벌리면 아무리 좋은 취지도 언젠가는 싸움이 나고 와해됩니다."

서울가죽소년단은 지난해 세계적 가방 패션쇼인 '2018년 밀라노 가죽패션쇼 미펠(MIPEL)'에서 가방 브랜드 'TEMP°S(템츠)'를 론칭해 해외에 먼저 선을 보였다.

"템츠는 영어로는 온도, 프랑스어로는 시간을 뜻합니다. 저희 가방은 단아하고 각이 있는 제품들이 많아 평소 캐주얼하게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정장에도 잘 어울립니다.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잘 어울렸으면 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해외쇼에서 유럽권 바이어들은 '템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쪽에서는 샘플 제작 의뢰 이야기가 오갔고 독일·영국과는 수주에 대한 의견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최근 샘플 제작을 중국에서 많이 하는데 오랜만에 한국에서 나왔다면서 제작 의뢰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제작과 판매 방식에 대해서도 문의가 쏟아졌습니다."

서울가죽소년단이란 이름으로 판매하는 자체 상품으로는 문구류가 주를 이루며 온라인을 통해 판매된다. 오프라인 매장은 다음 달 개관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전 이사장은 "한 해 매출이 3배나 성장했다"면서 "올해 4월에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유해한 작업 환경과의 이별

▲ 서울가죽소년단은 가죽제조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부터 7~10년차 베테랑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 이사장은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가죽제품 생산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제작자들입니다. 유해한 본드 냄새에 노출돼 있는데 환풍기가 없는 곳이 많아요. 시설 설비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수익성은 낮고 영세해 어렵습니다. 요즘 경기마저 어려워지자 그나마 문을 닫는 가죽 공장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서울가죽소년단의 작업실엔 큰 창이 나 있고 아침이면 햇살이 비친다. 공방에서 오래 일해온 최영남 조합원은 "대부분의 공장들은 지하에 있고 창문도 없다"라며 "음지에서 나와 밝은 공간에서 빛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서울가죽소년단은 작업장에 환풍시설을 갖추고 인체에 해로운 유성 본드 대신에 덜 해로운 무독성 수성 본드를 사용한다. 이는 일반 본드에 비해 가격이 5배 이상 차이 난다. 직원들은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다.

전 이사장은 "가죽에 대한 오해가 많다"면서 "우리는 가죽을 얻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 가죽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소·염소·양처럼 식용 가축들이 사후에 남긴 가죽을 사용해 제품을 만듭니다. 가죽을 얻기 위해 키워지는 악어나 뱀 가죽은 쓰지 않아요. 악어는 대리석 위에서 키워지는 거 아세요? 가죽에 상처가 남을까봐 말이죠. 가공 과정에서 초래되는 환경의 유해함은 천연가죽이나 합피(인공 가죽)나 마찬가지여서 업계 차원에서 이를 줄여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동네 기업들끼리 뭉쳐 사회적 협동조합 추진
 

▲ 작업실은 2층에 위치해 있고 정면에 큰 창이 있어 햇살이 잘 들어온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가죽소년단은 지역 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뭉쳐 연대의 힘을 발휘하고자 사회적 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 관련 콘텐츠와 도시재생, 패션 제조 등 세 분야에서 총 16개 기업이 동참해 이미 창립총회를 마쳤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해 보다 많은 청년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청년들의 유입을 늘려 동네를 젊고 활기차게 하고 지역에 소외된 계층들에게 교육을 통해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 김중훈 사회적협동조합 '물결' 간사

"지역을 기반으로 일하며 지역 주민과 함께 상생하며 커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40년의 역사를 지닌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지역 내에 공장을 만들어 지역주민을 고용하고 교회와 극장, 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지역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어요. 우리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교육하고 다시 고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제 막 첫 발자국을 내딛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동구에 가죽 제조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이 지역에 학교가 없어요. 교육을 해서 기술자를 많이 양성하고 싶습니다. 최종 목표요? 지역에서 자생하면서 오래오래 사는 거예요." 
덧붙이는 글 글 / 백선기(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 이우기(사진가)
이 기사는 서울시사회경제지원센터가 격주로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 '세모편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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