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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조연'까지 재능기부... 학생들이 만든 특별한 영화

[꿈의학교를 찾아서] 학생 자살 소재로 한 <눈치게임>, "해외영화제 출품할 것"

등록|2019.01.25 15:35 수정|2019.01.25 15:35

▲ 야간 촬영 ⓒ 최성형


"꿈의학교 아이들이 만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실제 개봉할 계획입니다."

이덕행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학교 교장(남양주 영상위원회 대표)에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영화개봉이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난 18일 촬영을 시작했고, 24일 0시 30분에 촬영을 마쳤다. 밤을 꼬박 새는 강행군을 거친 결과였다.

영화 제목은 <눈치게임>이다. 한 아이가 자살 시도를 하면서 친구들한테 보낸 문자메시지로 인해 벌어진 학생 간, 그리고 교사 간 오해와 갈등이 이야기의 뼈대다.

영화를 만든 아이들은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학교가 모태가 되어 설립된 별나라 꿈의학교(교장 이수경)다. 이덕행 교장은 이 학교 상임 운영위원이다.

'학생 스스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꿈의학교답게, 대본부터 학생들이 차근차근 준비했다. 여기에 개성파 연기자로 알려진 배우 지대한과 영화 <위험한 중독> (2015)을 만든 최율권희 감독 등이 재능기부로 힘을 보탰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종잣돈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받았다. 부족한 자금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채웠다. 펀딩은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간 진행했다.

"촬영 기간 내내 긴장 속에서 살았어요. 애들이 아프지는 않은지 혹시 안전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입술이 다 부르텄습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어요."

이덕행 대표 말이다. 지난 24일 오후 그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말에 이어 그는 "한 아이가 과로로 쓰러졌는데, 좀 쉬라고 하는데도 다음날 촬영장으로 달려오고. 그 열정이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목표는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영화관 10곳에서 개봉, 10만 관객을 끌어모아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부천국제 판타스틱·부산 국제영화제 등에 출품해 좋은 평가를 받아 그 여세를 모아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흥행에 성공하고, 해외 영화제 출품하는 게 목표"   

▲ 재능기부로 참여한 실감나는 배우들의 연기. ⓒ 이민선

 
지난 23일 오후, 촬영장의 열기를 몸으로 느끼고 싶어 영화 <눈치게임> 촬영 장소인 남양주시 오남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촬영 마지막 날인데도 배우와 스태프 얼굴에서 지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요즘도 주로 악역을 맡는지?"라고 농을 치듯 말을 걸자 그는 "제가 전과 100범쯤 됩니다"라고 시원하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 재능기부로 참여한 주연급 명품조연 배우 지대한. ⓒ 이민선


그는 주연급 연기자이지만 '명품조연'으로 더 유명한 배우 지대한이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험악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감독님이 잠깐만 도와주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지금까지... 하하하, 한마디로 낚인 거죠."

그가 이곳에 발을 들인 이유다. 낚인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스스로 낚여 준 것이었다.

"학생 꿈을 찾아 주는 게 목표인 꿈의학교 취지에 호감이 생겼어요. 사실 제가 꼭 해 보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저도 고등학생 때 연극 한편 해보고는 이 길로 들어섰거든요. '대한이 참 연기 잘한다'라는 선생님 칭찬을 받고는 '내가 연극에 소질이 있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이 길로... 여기 배우나 스텝은 보수가 수천만 원 하는 친구들입니다. 이런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게 학생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이 경험 덕분에 몇 명은 인생이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이 경험이 몇명의 인생을 바꿀 것"
 

▲ 영화 <눈치게임>에제작에 참여한 전문 배우와 학생들, 중 3부터 고3까지 약 20명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 최성형


실제로 유명한 배우, 감독과 영화 촬영을 한 게 학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마치 배우 지대한씨 말에 맞장구를 치듯 '좋은 경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감독을 맡은 조남훈 학생(남)은 "실제 영화를 만드는 감독, 배우들하고 일하니까 좀 더 전문적인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스태프로 활동한 주지나 학생(여)은 "유명한 배우하고 하니까 긴장감이 확 느껴져요. 어떤 마음으로 촬영에 임해야 하는지를 알게 돼서 기뻐요"라고 말했다.

두 학생 모두 좋은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입시에 성공해 올해 영화·영상 관련 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이 학생들과 다르게, 배우로 참여한 김채영 학생(여)은 영화나 연기에 전혀 뜻이 없었다. 입시에 성공해 올해 입학하게 되는데, 전공은 영화와 관련이 없는 경찰 행정학이다.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배우 해볼까'하는 고민에 빠졌다.

이 학생은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는 게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이 답을 금방 찾아 주어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학교를 수료하고 올해 별나라 꿈의학교에 참여해 영화 제작을 한 고3 학생 6명 모두가 입시에 성공했다. 4명은 영화·영상과 관련한 학과에, 1명은 경찰 행정학과, 1명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별나라 꿈의학교는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학교에 꾸준히 참여한 학생을 주축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적으로는 이미 '성공'
 

▲ 영화 촬영 ⓒ 최성형


  

▲ 영화 촬영 ⓒ 최성형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학교는 마을에 있는 전문 영화인들이 힘을 모아 지난 2015년 설립했다. 이덕행 교장은 영화 <꽃잎>(감독 장선우, 배우 이정현) 등을 기획한 전문 기획자다. 당시 이건우 영화감독과 김동철 남양주 종합 촬영소 대리가 학부모, 학생 등과 함께 운영위원을 맡았다.

그 뒤 매년 경기도교육청 핵심 사업인 경기 꿈의학교에 공모에 선정돼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이덕행 교장(별나라 꿈의학교 상임 운영위원) 목표는 아이들이 만든 영화 <눈치게임>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해외 영화제에 출품도 한다는 것. 이 목표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30년 경력 베테랑 배우 지대한도 흥행이 가능할 것 같느냐는 물음에 "신만이 알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양주 별나라 꿈의학교가, 꿈의학교 핵심 신조인 '거침없는 도전'을 과감하고 오롯이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 한번 부딪쳐 보라고 강조한다. 진짜 실패해도, 실패한 경험을 쌓았으니 교육적으로는 성공한 것이라며 등을 토닥여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양주 별나라 꿈의학교는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거침없이 도전했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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