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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구속영장 발부가 필연적이었던 이유들

[주장] 사법부 신뢰 회복의 마지막 수

등록|2019.01.25 18:17 수정|2019.01.25 18:57

영장실질심사 마친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법농단’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오랜 기다림 끝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3일 오전 10시부터 5시간 30분가량 진행된 구속 심사를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결과를 기다렸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다음날(24일) 오전 2시를 넘겨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구속사유로 들었다.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출신이 구속되는 치욕을 남긴 순간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 7개월여가 지난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공개소환 했고, 14일과 15일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더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12일과 15일에 조서를 열람했고, 17일에도 출석해 자신의 조사 내용에 대한 나머지 조서열람을 모두 마쳤다. 검찰은 처음부터 영장발부를 염두에 뒀다는 듯이 조사를 마친 지난 18일 260여 쪽 분량의 구속영장을 곧바로 청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범죄혐의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주된 범죄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재임시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KTX 승무원 사건, 성완종 리스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재판 등 각종 재판 거래에 개입했다는 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인한 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한 점, 헌법재판소 내부정보(재판)에 대한 비밀수집 및 누설, 소위 물의법관을 관리하기 위하여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부당한 사찰 및 인사상 불이익을 제공한 점,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 원을 조성해 사용한 점을 주요 범죄사실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한 결정적 증거(이른바 스모킹 건, smoking gun)는 김앤장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독대 문건이다. 김앤장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양 전 대법원장이 2015~2016년 김앤장의 한상호 변호사 등을 여러 번 만나 일본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다음으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2015년부터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하면서 작성한 수첩이다. 위 수첩에는 대법원장 등 윗선의 지시나 보고 내용을 모두 3권의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수첩에 기재된 내용 중 '大(대)'자로 따로 표시된 부분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사항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검찰은 '판사 블랙리스트'를 확보했는데 여기에는 법원행정처가 인사 불이익 대상자를 선별해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표시를 하는 등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이유 하나] 변명으로 일관한 전직 사법부 수장

검찰이 제시한 관련자(판사)들의 진술과 증거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지시한 적이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으며,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고,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는 대부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기본으로 삼아 방어했다. 또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진 부장판사의 수첩에 대해서는 사후에 가필 등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는 전언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후배 판사들이 한 것으로 잘 모르는 일" "실무선에서 한 일을 그저 보고받은 내용에 기계적으로 결재했을 뿐"이라면서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었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관련해서는 재판개입 부분은 자신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으며, '판사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서도 인사권은 대법원장의 정당한 고유권한 행사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소 내용 중 "김앤장의 한상호 변호사를 만난 것은 맞지만 소송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한 변호사가 사실을 왜곡했다"라거나 이규진 부장판사의 수첩 증거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해 사후에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거나 관련 판사들의 진술에 대해 후배들이 자신을 모함했다는 취지의 주장은 상식을 벗어난다. 후배들이 양 전 대법원장을 모함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범행의 부인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위험하다.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더 위험하다. 판사들이 항상 하는 질문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음해하려는 이유가 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반성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죄질이 불량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더욱이 사법농단의 정점에 있는 전직 사법부 수장이 일반 잡범 수준의 변명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언던 첫 번째 이유다.

​[이유 둘] 사법부 신뢰회복의 마지막 기회
 

▲ 지난 2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 연합뉴스


바닥까지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법조인들은 영장기각에 무게를 뒀다. 언론에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구속사유가 충분하지만 그동안 판사들이 사법농단 사건에서 보인 태도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무더기 기각,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검찰수사를 사실상 방해해 왔던 터다. 정치권과 국민여론이 특별재판부의 구성과 탄핵 카드까지 꺼내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기각을 예상한 것은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법원 내부의 배신자로 찍힐 것이 틀림 없어 그 두려움 때문에 부득이 기각시킬 거라는 논거다.

그럼에도 사법농단의 심각성과 대통령까지도 탄핵을 하고 구속을 시키는 마당인데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판사라면 설마 기각을 시켜 사법부의 붕괴를 자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영장기각으로 법원의 신뢰가 완전히 끝장나는 것보다는 영장발부를 통해 사법농단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서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법부와 관련되지 않은 사건이라면 사실 논란거리도 되지 못한다. 이성적인 사법부라면 구속영장 발부는 당연하다. 만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시키면 그것은 온전히 사법부의 제식구 감싸기, 집단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동업자 정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기준을 그대로 따르자면 구속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법농단 사건에서 보여준 판사들의 태도는 사법농단을 극복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사법부가 망가지든 말든 맹목적으로 판사들의 불법을 눈감아 주는 선민의식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더이상 대한민국에 사법부의 존립 근거는 상실된다. 앞으로 어떤 기준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인가? 사법농단은 대한민국의 법치질서를 어지럽혀 재판기능의 마비를 가져리올 정도로 중대한 범죄다. 법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할 입장이었다.

[이유 셋] 사법농단의 책임은 당연히 사법부 수장에게

​결국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연히 사법부의 수장에게 최종적인 책임을 묻는 게 타당하다. 사법농단 사건의 출구전략으로도 그의 구속은 불가피하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 사법농단 사건을 마무리 해 나가자는 제스처다.

그동안 제식구 감싸기로 사법부의 신뢰가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다. 국민들의 저항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영장이 기각될 경우 법원에 불어닥칠 후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 대한 영장발부기준에 비춰봤을 때 이를 기각할 명분이 전혀 없다. 범죄 혐의가 사법질서의 신뢰를 침해한 것으로 법치주의 최후 보루를 포기한 것으로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여기에다 영장심사에 임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태도는 사법부 수장답지 못하게 궁색한 변명 일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구속영장 발부를 피할 수 없었던 이유들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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