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미남 이발관'에 간다
[써니's 서울놀이 39] 나만의 ‘오래 가게 1호’ 서울 신사동 ‘미남 이발관’
▲ 친숙한 스킨향이 나는 미남 이발관 안. ⓒ 김종성
저마다 볼일로 바쁜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미남 이발관'. 동네 이름 신사동과 이발관 상호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 도시에서 점점 보기 힘든 이발관인데다 재미있는 상호가 발길을 붙들었다. 나도 모르게 볼일은 잠시 잊게 되고, 어디 멀리 소도시에 온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피부에 닿으면 따끔할 정도로 강렬했던 '쾌남' 스킨 향이 날 것 같았다. 어릴 적 목욕탕과 함께 정기적으로 갔었던 추억의 공간이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해가 갈수록 화려한 것보다는 오래된 것들에 마음이 끌려서인지도 모르겠다.
▲ 손님 누구나 미남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이발관. ⓒ 김종성
꼬맹이 어린 시절 이발관 의자 팔걸이에 나무 받침대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머리를 깎았다. 당시 내게 어른이란 이발관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머리를 깎는 사람이었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시간은 내 맘대로 서둘러 가주질 않았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해 배운 이발 기술
▲ 이발부터 면도까지 능숙하게 하는 이발사의 손길. ⓒ 김종성
한동안 가위질은커녕 매일 새벽에 일어나 양 어깨에 물통을 지고 물을 떠오는 등 옛 도제식 교육(고용된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과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고 일을 배우는 제도)을 힘들게 받았다는 아저씨. 흡사 성룡의 영화에 나오는 소림무술 훈련 장면 같아 흥미롭게 듣다가도,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사막의 나라 중동까지 가서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 이발사 아저씨의 리즈 시절이 담긴 사진. ⓒ 김종성
▲ 이발관 의자 손잡이에 남아 있는 재떨이. ⓒ 김종성
이발소 한쪽 벽엔 이용사 자격증과 함께 이발사 아저씨의 '리즈' 시절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발 솜씨가 좋아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으셨단다. 1990년대까지 올림픽처럼 '세계 이미용 선수권대회'가 성황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가발센터에서 제작 배포한 날짜가 크게 인쇄된 달력도 재밌다.
이발관 의자 오른편 손잡이 위에 자리한 개폐식 작은 재떨이도 이채로웠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예전엔 이발을 하며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단다. 의자 위에 얌전히 앉아있는 할아버지 모습이 말 잘 듣는 학생 같아,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수선한 흔적이 훈장처럼 남아 있는 면도기. ⓒ 김종성
이발할 때 머리 위에 하얗게 분을 뿌릴 때 쓰는 용기엔 감자 전분을 넣는단다. 면도할 때 쓰는 날은 삭을까봐 아직도 사용하곤 한다며 손님의 수염을 면도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낡은 손잡이에 붙어 있는 반짝이는 면도날이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믿음직스러웠다.
소용이 떨어지면 사람도 쉽게 버리는 시대, 수선의 흔적이 훈장처럼 배여있는 이발기구들에 절로 눈길이 머물렀다. 다양한 이발도구들은 뭘 그런 걸 (사진) 찍느냐고 말하면서도 이발사 아저씬 못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후일 "이건 왜 찍은 거니?" 누군가 묻는다 해도 지울 수 없는 사진이 될 듯했다.
양털 깎는 기계를 개조해 만든 이발기구 '바리깡'
▲ 1970년대 이전에 쓰였다는 골동품 바리깡. ⓒ 김종성
바리깡은 머리칼을 짧게 자르는 데 특화된 도구로 원래 양털 깎는 기계를 개조해 만든 것이라고. 이발사 아저씨는 한 손으로 사용하는 바리깡 외에 1960년대 이전에 사용했다는 '양손용 바리깡'을 시범을 보이며 보여 주셨다. 그 모습을 보니 양털 깎는 기계를 개조한 것이라는 말이 맞구나 싶었다.
요즘 서울시에서 매년 지정하는 '오래 가게'가 떠올랐다. '오래 가게'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며 가게만의 정서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를 발굴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 부러 찾아가고 싶은 좋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미남 이발관을 나만의 '오래 가게 1호'로 정하고 혼자 좋아서 웃었다.
* 미남 이발관 주소 : 서울시 은평구 증산로17길 60 (매주 수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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