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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관람, 1960년대 문법 파동 생각났다

[리뷰] 영화 <말모이> '주시경 선생'과 '문법 파동 사건'

등록|2019.02.03 14:24 수정|2019.02.03 14:24

▲ 영화 <말모이>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현재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에 대해 느낄 것이다. 이런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배우 유해진(김판수 역)과 윤계상(류정환 역)의 연기도 눈여겨 볼 만하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제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사투리)를 모았던 비밀 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이 사망한 이후,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할 때,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했다.

일하던 한 경성의 극장에서 해고돼 백수가 된 김판수는 아내 없이 두 자녀를 키우는 가장이다. 가난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한다. 그와 의기투합한 양아치 동료들과 경성역 대합실에서 기회를 보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밖으로 나온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발견하고 그의 가방을 훔쳐 달아난다.

가방에는 돈이 아닌 사전을 만드는 데 사용할 중요한 자료들이 들어 있었고, 결국 김판수의 실수로 집주소를 알아낸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은 그의 집을 찾아가 가방을 되찾는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런 해괴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이야기를 듣던 조선어학회 동료 조갑윤(김홍파 분)는 과거 김판수에게 신세를 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심부름을 할 사람으로 김판수를 채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대표 류정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변한다. 자신의 가방을 훔쳐간 사람이니 그가 이해될 법도 하다.

하지만 대표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원하자 할 수 없이 김판수를 심부름꾼으로 채용하게 된다. 하지만 김판수는 대표 류정환과 매일매일 티격태격하고, 그러는 한편 정 또한 쌓이게 된다.

일제의 탄압은 조선어학회에도 예외 없이 마수를 뻗쳤다. 우리말과 글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직원들은 조선 팔도 사투리를 모으고 우리말 사전을 제작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일본 순사들이 이를 알아차리면서 위기에 처한다.

영화를 보면서 주시경 선생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 나라가 기울고 있던 대한제국 시절 주시경 선생은 "나라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른다"는 말로 우리 말글을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1910년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됐다.

주시경 선생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그 꿈을 접지 않고 더 열심히 우리 말글 보급에 나섰다.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여러 학교를 다닌다고, 붙은 별명이 '주보따리'였다고 한다(2014년 3월 13일 <한겨레> [시론] 겨레말이 살아야 겨레가 살고나라말이 빛나야 나라가 빛난다/ 이대로). 일제 치하 일본말이 국어가 되니 우리말을 '국어'라고 부를 수 없어 '한말', '한글'이란 이름을 지어 부른 것이 유래가 돼 지금까지 '한글'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제국 시절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 사전 '말모이'를 만들었다.

<말모이>를 보면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63년 일어난 '문법 파동' 사건도 떠오른다. 문교부 국어사정위원회 주최로 전국에 다양하게 난립했던 문법 용어를 하나로 만들기위해 표결을 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문법파와 말본파의 주장이 팽팽할 때였다. 문법파는 문법, 동사, 명사, 조사 등 일본식 한자어로 된 문법용어를 강조했고 말본파는 말본, 움직씨, 이름씨, 토씨 등 순우리말로 된 문법 용어를 주장했다. 1963년 7월 25일 표결에 붙인 결과 8대 7로 문법파가 승리했다. 이후 표결에 진 말본파는 치열한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이를 역사는 '문법 파동'이라고 일컫는다.

심부름꾼 김판수는 갈등을 빚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에게 "사람이 없이 산다고 그렇게 막말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가슴을 찡하게 했다.

<말모이> 감독 엄유나는 "영화를 통해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험한 세상을 가까스로 혼자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영화 <말모이>를 두고 역사를 이용한 오락 상업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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