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무전기 대신 스마트폰... 이 차이가 죽음을 불렀다

[김용균의 죽음이 남긴 것 ⑤] 대용(인권운동사랑방)

등록|2019.02.09 10:57 수정|2019.02.09 10:57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를 느리지만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28년 묶여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이 높은 국회의 입법 장벽을 넘어 개정됐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시작됐습니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짚어봅니다.[편집자말]

▲ 김용균씨 어머니가 고인의 동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고 안전을 당부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 신문웅(시민대책위 제공)


일하는 현장의 문제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충남 태안에서 만난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하청 노동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설비에는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비는 무엇인지, 노동자 간의 연락체계는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지 등.

노동자들은 이미 현장 문제의 원인과 개선 방향까지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65일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는 설비를 운용하면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누구보다 현장을 잘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멈출 수 없는 노동자의 현장 대응

화력발전의 원료인 석탄을 나르기 위해서 부두에서부터 화력발전소의 보일러까지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운전/점검하는 업무로 고 김용균씨의 업무이기도 했던 컨베이어벨트 운전원은 2인 1조는커녕 4km 이상의 범위를 혼자 담당한다.

석탄을 컨베이어벨트로 올리고 내리는 기계를 조작하는 제어실 노동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2시간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모니터를 주시하는 제어실 노동자는 늘 10분 안에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밀도 높은 노동환경에 놓여 있었다.

다룰 수 있는 장비의 면허 개수만큼 조작해야 하는 장비기 늘어나는 중기원을 포함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모두 고강도 노동을 견디고 있었다. 외주화된 위험업무를 적은 인원으로 긴 시간 일하는 만큼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곧 노동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다. 태안에서 만난 현장 노동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끊임없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었다.

"파트장들에게 (개선 요구를) 수시로 합니다. 또 설비문제는 TM(개선요청서)도 낼 수 있고, 설비개선 요청도 파트장 통해서 냅니다."
"(현장에서 사용해야 하는) 도구가 미비해서 저희가 자체적으로 도구를 만들어서 해요. 제가 집에서 임시로 만든 거죠. 집에 있는 철판으로 만든 거고..."


체계 없는 업무 지시

그렇다면 문제는 현장 노동자의 개선 요구나 대응 방식이 '실제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8년 동안 12명의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 말해주듯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는 묵살되고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는커녕 관리직이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소통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지시는 내용과 상관없이 수행해야 하지만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는 갖춰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가 호소하는 어려움은 업무를 계획하고 수행하기 위한 일관된 체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로 일을 한다.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에 앞서 소속 파트장을 통해서 당일의 현장상황, 업무 인계와 필요에 따른 업무 우선순위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들어가면 이 사전 조율과정은 의미가 없어진다. 원청 또는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사전 업무 조율이 전부 뒤집히기 때문이다.

현장 감독이란 명분으로 원청의 직원이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현장을 돌면서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기도 하고, 하청 관리직을 통해서도 지시해 가며 현장의 판단을 배제한 업무지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부)발전직원이 보면 파트장 통해서 조치하라고 연락이 온다. 그러면 당장 그걸 하러 가야 한다. 또 자재 같은 거 쌓여 있는 걸 지적 받으면 처리 전후 사진 올리라고 하니까 그런 거 위주로 해야 하고, 원청이 지시하는 거니까."

위계적인 소통이 만드는 문제
 

▲ 위험천만 태안화력 발전소 작업 현장 ⓒ 신문웅


업무지시체계가 붕괴한 현장에서 소통은 오직 위에서 아래로만 이루어졌다.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소통은 업무의 연관성 이상의 위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는 갖추지 않았다.

이런 위계적인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외주화 과정에서 연속적인 업무를 임의로 분할하면서 단순히 업무를 나누는 것 이상으로 업무의 핵심과 비핵심이라는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위계로 분할된 업무는 연속된 발전소 업무에 대한 이해를 전체적으로 떨어뜨렸다고 현장 노동자는 이야기한다. 즉, 실질적으로 원청에서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지만 원청은 외주화된 석탄이송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은 (석탄의) 자연발화를 더 심해지게 해요. '그렇게 하면 자연발화가 더 심해진다 안하는게 좋겠다' 하면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고 우겨서 하게 되고. 시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거죠."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문제는 원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발전소 하청업체의 관리직이 대부분 원청 출신 퇴직자로 채워지면서 같은 하청업체 안에서도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 사이에 업무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만큼 소통도 쉽지 않았다.

원청과 하청 모두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귀가 없는 상황에서 원청에서는 현장 노동자의 설비 개선요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설비개선을 실행하며 문제를 키우기도 했으며, 하청 관리직은 작업중지가 고려되는 상황에서 현장 투입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적절한 소통수단

발전소 업무가 외주화를 거치면서 원청과 하청노동자 간의 소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인 전화기'였다. 현장 노동자의 개인 전화기는 제어실과의 소통을 위한 무전기이자, 고장난 랜턴의 대체품이기도 했으며,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는 작업 상황을 전/후로 보고하는 창구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실시간 소통을 위한 통신 수단은 지급하지 않고 원청의 업무지시 이행 여부를 보고하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서 장갑을 빼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판단은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카오톡'이라는 간소화된 업무지시는 도급 계약에 따라 원청이 하청업체에 공문을 보내고 협조를 구하는 최소한의 방식조차 생략시켰다. 간소해진 절차만큼이나 업무지시는 쏟아졌으며, 현장 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

"전화로 계속 문자가 날라와요 계속. 카톡방이 수십개가 있어요. 계속 전화가 오는 거죠. 사람 못살게 구는 거예요. 똑같은 거 가지고 사람만 바꿔가면서 차장, 부장, 너네는 왜 일 안하냐. 못살게 구는 거죠. 그럼 일을 안할 수가 없어요."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권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노동자의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노동자의 안전도 담보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외주화 과정은 인력 축소와 부실한 설비의 문제만이 아니라 업무 과정에서 소통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소통의 실패가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는 노동자의 대처능력을 떨어뜨려 온 것이다.

그럼에도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현장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내가 하는 노동을 아는 만큼 내가 마주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하는 노동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 마주치는 위험도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함께 모여서 말할 수 있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귀를 갖출 때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의 문제 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