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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찬 받던 평창 경기장, 1년 지나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유

[평창 그 후 1년②] 사후활용 계획 없이 올림픽 유치... 시설 두고 문제 불거져

등록|2019.02.13 11:10 수정|2019.02.13 11:10
지난해 2월, 대한민국은 30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경사를 맞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동계스포츠는 역대 동계올림픽 가운데 가장 풍성한 결과를 낳으며 밝은 미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지난 9일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올림픽을 치른 후 1년,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 '평창 그 후 1년'을 통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 지난 2018년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r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 유성호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 난 후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 중 하나는 동계스포츠에 대한 저변 확대였다. 한국에서 동계스포츠는 비인기종목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된 지원도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동계올림픽 때마다 '메달 밭'으로 군림해온 쇼트트랙과 김연아(28)라는 피겨여왕이 등장한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종목에서만 빛을 조금 본 정도였다.

평창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동계스포츠계는 최첨단 시설이 한국에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들썩였다. 국내 링크장들의 경우 대부분 아이스하키 빙질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사용하기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빙질이다. 빙상 종목은 빙질과 얼음 온도에 따라 요구되는 정도가 다르다.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3~4도로 너무 딱딱하지 않은 빙질이어야만 점프 등을 비롯한 기술사용에 무리가 없고, 쇼트트랙은 영하 7~8도, 아이스하키는 영하 10도 내외다.


설상이나 썰매 종목은 더욱 암울했다. 평창 전만 하더라도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와 같은 썰매 종목은 훈련장 자체가 없어서 아스팔트 위에서 훈련을 해야만 했다. 설상종목도 국내에 적합한 훈련장이 없어 해외 전지훈련으로만 메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 지난 2018년 2월 1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 2인조 원윤종 선수가 4차 주행을 마치고 결승점을 통과하자 손을 꺼내 썰매를 만지고 있다. ⓒ 이희훈


열악한 환경 탓에 평창 올림픽을 통해 새로운 훈련장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동계스포츠계에는 큰 경사였다. 올림픽 이후에도 선수들이 새로 지어진 시설들을 지속적으로 활용해 마음껏 훈련하고 기량 향상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이 시설들은 최고라는 극찬을 받았다. 대회 당시 빙상종목에서는 거듭 세계 신기록이나 올림픽 신기록이 바뀌었고, 그 배경으로 최고의 빙질과 경기장의 따뜻한 온도가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2월 16일 YTN 기사에 따르면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고다이라 나오는 "링크 안이 따뜻해서 몸을 움직이기 쉽고, 빙질도 단단해 컨트롤하기 좋다"고 경기장을 평가했고, 다른 해외 선수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전 한국의 빙상장 수준과는 너무나 달라 '신세계'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평창 경기장들
 
 

▲ 지난 2018년 1월 29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내 메인프레스센터에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 마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기대와는 달리, 실제로는 경기장 중 일부는 현재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 많은 돈이 투입됐지만 쓸모가 없어진 것을 뜻하는 표현)가 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은 총 13개로 이 중 대회 이후 한 번이라도 사용된 적이 있는 곳은 강릉 컬링센터, 강릉 아이스아레나,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정도다. 컬링센터에서는 지난해 11월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등 9개 나라가 참가한 아시아 태평양 컬링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강릉 아이스아레나는 몇 차례 콘서트나 공연 용도로 사용됐으며, 스키점프대는 관광객들의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지나간 자리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오는 9일 개막 1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경기장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올림픽이 끝난 모습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사진은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지난해 2월 20일 쇼트트랙 예선전을 보는 관중들(왼쪽)과 지난달 30일 문화공연을 위해 무대를 설치하는 시설관계자들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제대로 된 사후 활용방안을 찾지 못했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 하키센터, 평창 슬라이딩 센터, 정선 알파인 경기장 등은 올림픽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관리주체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마땅한 사용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경우 경빙장이나 냉동창고로 활용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올림픽 폐막한 직후 1년이 지나도록 예산 문제로 정부와 지자체가 합의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 때문에 관리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문이 잠겨있다. 이로 인해 현재 썰매 대표팀은 국내에 세계 최고 훈련시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훈련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가리왕산 스키장, 존치냐 복원이냐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오는 9일 개막 1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경기장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올림픽이 끝난 모습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알파인 경기를 치른 정선 가리왕산 생태복원 문제는 곤돌라와 생태도로 만이라도 존치를 요구하는 주민들과 산림으로 복원한다는 사회적 약속과 법에 따라 복원해야 한다는 산림청·환경부가 맞서고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 모습. ⓒ 연합뉴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두고는 환경부와 산림청이 스키장 건립 허가의 전제조건이었던 가리왕산 전면 복원 입장을 내세우고 있고, 반면 강원도와 정선군은 스키장을 복원하더라도 곤돌라와 도로를 남겨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평창 동계올림픽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복원 문제가 남아 선수들이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향후 활용 방안이 불분명했던 강릉 하키센터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나서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현재 강릉 하키센터를 아이스하키 전용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유지시켜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1월 말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남자부 국제대회인 레거시컵 2019 KB금융 아이스하키 챌린지가 이곳에서 열렸고, 9일부터 11일까지는 여자부 국제대회 레거시컵 2019 W 네이션스 챌린지가 열리고 있다. 특히 8일에 열렸던 한일전 경기에서는 한국이 2-0 승리를 거뒀고 이 경기는 SBS SPORTS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13일부터 18일까지 계획된 전국동계체전도 이곳에서 열린다.

강릉 하키센터 역시 아이스하키협회가 맡기 전까지는 뾰족한 대안이 없던 곳 가운데 하나였지만, 국내외 대회 등을 지속해서 유치하면서 사후 활용 계획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다.

또 올림픽 유치? 국민지지 얻을 수 있을까

이 같은 사후 활용방안 문제는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늘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부는 지난 3차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 함께 2032년 하계 올림픽 유치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32년 하계 올림픽 개최 계획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11일 서울시가 유치 신청 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상당수의 일부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불과 1년 전 이 땅에서 열린 올림픽도 대회가 폐막한 후 상당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또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제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것에 '혈세낭비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 지난 2018년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가 게양대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세계적으로도 동·하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국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예민하고 사후 활용방안을 찾기가 더 까다로운 동계올림픽은 더욱 그렇다. 현재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도시로는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밀라노, 스웨덴 스톡홀름만이 남은 상태이다. 이전까지 터키 에르주름, 캐나다 캘거리, 일본 삿포로 등이 유치를 희망했지만 도시기반 미흡, 지진 등의 문제로 모두 철회했다.

특히 캐나다의 경우 동계스포츠 강국임에도 캘거리 주민들이 막대한 비용을 이유로 반대의사를 표시했고, 결국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50% 이상 나오면서 최종적으로 유치 신청을 취소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사용된 시설의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면서 정부와 지자체간 분담금을 떠넘기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 올림픽을 유치할 때부터 적절한 방안을 도출해낸 이후에 유치 신청을 했어야 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이 유치부터 하고 나니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누군가 나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도 아직까지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곳은 찾기 힘들다.

평화를 상징하고 세계 최고수준의 시설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은 평창 동계올림픽은 1년이 지난 지금 국민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가. 황량한 시설을 보면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평창올림픽 그 후...1년평창올림픽이 폐막한 지 1년이 지났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이 열렸던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플라자는 성화대와 형태만이 남아 있다. 왼쪽 사진은 평창올림픽 전에 촬영한 올림픽플라자. 오른쪽 사진은 본관과 성화대만 남은 올림픽플라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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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당하고 훈련장 잃기도... 추락한 한국 동계스포츠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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