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조계산'에 숨겨진 비극, 15년 추적 끝에 마침내 소설로
<조계산의 눈물> 펴낸 김배선 작가... "정의롭지 못한 역사, 늘 마음의 빚이었다"
▲ <여수넷통뉴스> 출판사인 미디어넷통에서 <조계산의 눈물>이 출판됐다. <납북어부의 아들>에 이은 두 번째 도서다. ⓒ 심명남
여순사건부터 6.25전쟁까지 근현대사의 아픔 속에 조계산 일대에서 발생한 비극적 실화가 소설로 출간됐다. 빨치산과 토벌자 사이에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조계산의 눈물>(미디어넷통)이다.
'여순10·19사건'은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출동 명령을 '동포 학살'로 받아들인 여수 주둔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도 출동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계엄령을 발의한 이승만 정부는 여수를 반란의 도시로 규정해 무차별 진압에 나섰고, 수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후 여순반란사건이라는 멍에가 씌워져 국가보안법 마련의 토대가 됐다.
특히 도울 김용옥 선생은 여수MBC가 마련한 3부작 강연에서 "당시 여수 14연대는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이건 항명이 아닌 거부였다. 여순 항쟁은 자랑스러운 우리 민중의 의거였다"라고 강조했다.
15년간 발품 팔아 소설로 펴낸 조계산의 눈물
▲ <조계산의 눈물>을 소설로 쓴 김배선 저자는 "우리 가족을 비롯해 우리 시대에 겪었던 부당함과 정의롭지 못한 역사적인 비극이 늘 맘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심명남
<조계산의 눈물>은 지리산권에서 빨치산의 활동기간에 조계산과 주변마을에서 일어난 아무도 알려지지 않고 묻혀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구전으로 듣고 기록으로 남긴 책이다. 15년간 발품을 팔아 기록한 실제 증언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펴냈다.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는 "역사는 기록이다"면서 "격랑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집념을 불태운 이 책에는 눈물겨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을 진솔하게 풀어냈다"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조계산의 눈물은 망각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김배선 저자의 역사적 책무를 실행한 책"이라며 "민중의 대서사시 조계산의 눈물을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라고 평가했다.
김배선 저자는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글을 쓴 게 아니고 내 고향인 조계산을 찾아다니며 이웃마을 사람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구전으로 들었다"면서 "우리 가족을 비롯해 우리 시대에 겪었던 부당함과 정의롭지 못한 역사적인 비극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라고 책을 쓰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저자는 조계산을 오가며 약 15년간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책속의 16편은 각각 내용이 다르다. 집단학살, 비극적인 일가족의 몰락, 경찰관이 죽음을 당하는 사건, 빨치산 활동의 최후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렸다.
특히 1부 '아버지... 옥순아가 왔어라'에서는 60을 넘긴 딸 옥순이가 사위와 함께 55년 만에 접치고개 집단살해사건으로 총살된 아버지의 무덤 찾아 울부짖는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마을에서 있었던 이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떠올랐다. 지난해 8월, 68년 만에 가진 한맺힌 눈물의 추모식이 생각났다. 당시 네 명의 가족을 잃고 60여년 만에 차려진 제사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이춘혁씨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또 '죽산마을 집단총살사건'에 좌익으로 몰린 임병순의 24년 짧은 생애는 부모와 가족의 가슴에 한을 남겼다. 장손을 살리기 위해 소를 팔아 파출소장에게 로비한 아버지의 애끊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결국 예비검속령으로 사살됐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예비검속령으로 남한 특히 제주와 전라도 일대의 남로당 관련자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좌익으로 몰린 많은 사람들이 한 많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면서 "그중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은 공권력이 무차별 살상에 개입된 처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라고 말한다.
송광사 입구 송광면 평촌마을에서 태어난 김배선 저자는 그의 첫 저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펴내 조계산의 속살을 세상에 알리면서 '조계산 박사'로 불렸다. 그의 이력도 독특하다. 1974년 해양경찰로 입사해 줄곧 여수에서 생활한 그는 2008년에 정년퇴임 했다. 그의 조계산 사랑이 지금껏 고향이 간직한 조계산의 아픔과 억울함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빨치산이 활동했던 조계산 마을에 태어난 저자가 어린 시절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을 담담히 책으로 펴낸 용기와 끈기를 보면서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70대가 넘은 나이에 근현대사에 비극에 묻혀있던 역사의 현장을 <조계산의 눈물>로 세상에 선보이는 것을 보면서 청춘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닌 열정이라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한수 가르쳐 준다.
자신만의 지역사랑을 책으로 펴낸 김배선 저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기록한 증언록을 구슬처럼 꿰어 태어난 이 책이 더 많은 구독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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