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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세탁소

[소소한 사는이야기] 아재들의 우정

등록|2019.02.15 08:53 수정|2019.02.18 15:19

▲ ⓒ 정지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십 년도 넘게 이용하는 단골 세탁소의 사장님은 잘 듣지 못하고 말을 못 하신다. 그 시간이 오래 되어 이제는 사람이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얼추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시거나 제스츄어 또는 메모를 통해 손님들과 의사소통을 하신다.

우리 가족은 드라이를 해야 하는 옷뿐만 아니라 빨기 번거로운 옷들도 모두 그 세탁소에 맡기면서 아버지가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났다. 가끔 아버지가 들렀을 때 다른 손님이 오면 아버지가 대신 대화를 하고 손님의 요구를 메모로 남겨주기도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세탁소 사장님이랑 술을 드시고 오신 날 그 아저씨랑 긴 대화는 어떻게 하냐고 내가 물었었다.

"그냥 같이 제스츄어하고 카는데..  말은 내 혼자 하고... 나는 뭐 눈빛이나 보고 이해하고 그 쪽에선 주로 들어주지."

세 여자는 "우와 진정한 친구네! 진지한 얘기도 할 수 있나? 완전 베프 먹은 거 아냐?" 온갖 호들갑을 떨었고, 술 냄새를 풍기며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대답을 하던 아버지의 광대는 수줍게 올라갔다. 아버지의 말을 우리가 들어주기만 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방에서 한동안 생각했다.

올해 초겨울까지 입다 보냈던 겨울 옷들과 머플러를 얼마 전 택배로 다시 받았고 코트 안쪽, 니트 안쪽까지 한 장씩 끼워두신 신문지를 차곡차곡 접어 정리하다 이런 메모를 발견했다.

어떤 손님이 와서는 놓여진 신문지 위에 이렇게 써서 물어봤을 것이고, 사장님은 글로 손짓으로 대답하셨을 거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듯 아버지는 여전히 퇴근 길에 들러선 틈만 나면 한다는 저녁 내기를 할 것이고. 아버지는 내기에 이길 때만 메뉴를 찍어서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사진만 덜렁 보내 놓는다. 귀여워라 대머리 아재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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