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온전히 비운 뒤에야 채워지는 봄을 보다

[포토에세이] 봄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등록|2019.02.26 11:49 수정|2019.02.26 11:49
 

박주가리여행 중 잠시 나뭇가지에서 쉬는 중 ⓒ 김민수


남도로부터 봄소식이 들려온다.
변산바람꽃, 얼음새꽃(복수초), 노루귀, 동백, 매화, 유채...

내가 살고 있는 근처의 야산 어딘가에도 피었다는 얼음새꽃,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찾아나섰지만 그를 만나진 못했다.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봄을 만났다. 텅 빈 씨앗꼬투리에서부터 겨우내 비썩 마른 잎과 열매는 누렇게 혹은 검게 퇴색되었지만, 그것은 봄을 위한 통과제의였다.
 

계요등게요등의 열매 ⓒ 김민수


참으로 무심했던 거다.
열매를 보고서야 그의 존재를 비로소 본다.
초록의 빛이 충만할 때에는 미미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모든 것은 빛난다.
그리고 가장 화사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 빛나는 간은 꼭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든 것은 빛난다는 것이다.
 

떼죽나무떼죽나무의 텅 빈 마음 ⓒ 김민수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온전히 마르고,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자 비로소 봄은 찾아와 내밀하게 그들을 채워가고, 떨어진 씨앗들은 흙에 몸을 기대고 겨우내 목마름을 해갈하며 제 몸에 있는 생명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나팔꽃품었던 씨앗을 놓아버린 나팔꽃 씨앗 ⓒ 김민수


그랬다.
자연은 비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욕심도 없어 소유하지 않고, 그냥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다. 그 모든 일이 자연스러워서 자연이겠지.

그리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특별히 누구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하지 않아도 봄을 맞이하고, 어우러지고, 자기됨을 피워낸다.

소유함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삶과는 다르다. 그토록 애쓰고 힘써도 넘어지고 절망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의 삶과는 다르다.
 

고사리물기 하나없이 말라버린 고사리 ⓒ 김민수


저들은 자신들의 부활을 꿈꾸지 않는다.
자신들이 아니라 새순, 그리고 그들이 피어날 무렵이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들의 윤회 혹은 부활을 위해 마르고 비운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고향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봄이면 새순이 돋아나고, 그 새순 안에 흙이 된 자신도 들어있는 기적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 조차도 인식할 수 없겠지만, 인식할 수 없으니 '절대자(신)'를 닮았다.
 

인동덩굴인동덩굴의 열매 ⓒ 김민수


인동덩굴(인동초), 남도에서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남도보다 혹독한 조건들을 견뎌야 한다. 그 덕분에 인동덩굴이 연록이 옷을 갈아입고 나면 이전 것은 없고, 새 것이다.

서울의 봄.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텅빈 것들 속에 봄은 충만하게 들어있다. 하루가 다르게 오는 봄, 그 봄에 욺추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도 함께 피어나길 소망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