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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영리병원, 리모델링 공사만 하면 공공병원 전환 가능

영리병원이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⑦

등록|2019.02.27 07:41 수정|2019.02.27 07:41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알리고 저지 운동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국민들의 영리병원 반대 목소리를 몇차례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보험노조 등 99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재출범과 국내의료기관 우회 진출 녹지국제병원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유성호


지난해 10월 4일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개설허가 반대 58.9%, 개설허가 찬성 38.9%로 영리병원 개설 반대 의견이 20%나 높게 나왔으므로 영리병원 개설을 불허하는 대신, 보완 조치로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병원 등으로 활용하여 악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제반 행정조치를 마련하여 시행할 것을 제주도에 정책 권고하였다.

4일 뒤인 10월 8일 원희룡 지사는 "숙의형 민주주의로 제주도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진전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녹지국제병원 개설불허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2월 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표변하여,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 가능하다는 조건을 붙여 국제녹지병원 개설을 허가하였다. 원 지사는 당시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채용되어 있는 직원 134명에 대한 고용 문제, 투자된 중국 자본에 대한 국가신인도 저하나 외교 분쟁 비화 우려 등의 문제점을 열거하며 조건부 허가의 구실로 삼았다.

그런데 녹지그룹 측은 올해 2월 14일 제주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허가를 내주고도 소송을 당하였으니, 조건부 허가를 내준 주요 전제 중의 하나가 무너진 셈이 된다.

이제 녹지국제병원이 내국인 진료를 하지 않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하는 병원으로 개원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허가 조건상 3개월 이내로 되어 있는 시한 즉 오는 3월 4일까지 개원할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지 사정을 점검해 보면 상황은 더욱 명백해진다.

우선, 녹지국제병원은 조건부 개설 허가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도 부동산 가압류 상태에 있다. 2017년 10월 31일 녹지국제헬스타운유한회사는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등에 공사금액을 지급하지 못하여 총 1218여억 원에 헬스케어타운 부동산과 녹지국제병원 부동산을 가압류 당했는데, 심각한 것은 원희룡 지사가 작년 12월 5일 조건부 개설허가를 내 줄 때에도 병원 건물 등은 가압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가 막히게도 허공에 대고 신기루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현재 134명의 직원 중 절반이 넘는 70여 명이 이미 사직한 상태에 있다. 의사 9명은 모두 사직해서 의사는 단 한 사람도 없는 상태인데 새로 구하기도 거의 무망한 상태로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정상적인 개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해결 방안은 민주주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셋째로, KBS 제주방송 보도에 따르면 녹지제주병원 측은 개설허가를 받기 전에 이미 제주도에 "건물 시설에 투입한 비용과 각종 의료시설, 인건비 등 경영비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병원 인수 방안을 최대한 빨리 제시해 주거나 제3자를 추천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헬스케어센터 주무 관청인 제주국제도시개발센터(JDC) 측에도 같은 취지로 인수타진을 하였다는 말도 있다. 사실상 병원 포기 의사를 밝혔는데도 제주도측이 이를 묵살하고 영리병원 개설허가를 내주었다는 것은 국민들과 제주도민들을 기만하는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어느 모로 보나 원희룡 지사의 영리병원 조건부허가 조치가 결정적인 실패로 귀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녹지국제병원이 시한인 3월 4일까지 개원하지 못한다면, 원희룡 지사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영리병원 조건부허가를 취소하는 것이 정도이고, 시작부터 잘못 꿰어진 영리병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편, 중앙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른바 안종범 수첩에 의하면 박근혜의 지시에 의해 당시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허겁지겁 사업계획서를 승인하였다는 의혹이 있다(개설허가를 심의했던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위원들에게도 사업계획서 원본을 제공하지 않고 8쪽에 불과한 요약본만 주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이라고 하지만 중앙정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영리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해 준 잘못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영리병원 반대를 공약으로 당선되었는데, 국토교통부 등에서는 대통령 공약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심지어는 작년 10월 3일 '녹지국제병원 공론화를 위한 도민참여형 조사 2차 숙의토론'에서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제주국제도시개발센터(JDC) 의료산업처장이 영리병원 허가 찬성 쪽 전문가로 나타나는 웃픈 상황도 벌어졌었다.

둑에 생긴 작은 구멍 하나가 커져서 큰 둑이 무너지듯이, 제주영리병원이 일단 개원하고 나면 영리병원이 전국화되고, 그에 따라 의료비 폭등이나 과잉진료 등의 일반화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나 의료 공공성이 파탄날 위험이 농후하다. 미국에서 1970~1980년대 소규모 영리병원이 시작된 지 20~30년 만에 오늘날과 같은 의료비 폭탄 상황이 도래했던 사례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이제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 임박해 오고 있다. 시간을 끌어서 꼼수를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시간이 경과된다고 제대로 된 다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해결 방안은 민주주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바로 공론화위원회의 정책권고, 즉 영리병원 불허하고 보완 조치로 대신 비영리병원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괜찮은 공공병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

이 시점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국회, 특히 집권여당이 나설 필요가 있다. 제주도 원희룡 지사 측은 민주주의 원칙까지 파괴하면서 조건부 개설 허가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중앙정부도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박근혜의 지시에 따라 맹목적으로 사업계획을 승인한 국정 농단의 공범된 사안이어서, 제주도나 중앙정부 모두 먼저 나서서 시정조치를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원죄가 덜한 집권 여당이 대통령 공약 이행 차원에서, 또 의료 공공성을 지키고 확대 강화하는 차원에서 나서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이 발의하고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제주도, 그리고 제주영리병원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제주도민 등이 참가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고 여러 가지 실현가능한 대안을 모색해 보는 방안이다.

그리고 검토 가능한 대안의 핵심은 녹지국제병원의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공공병원을 개설하는 방안이다. 중앙정부와 제주도가 재원을 마련하여 녹지국제병원 시설을 인수하고, 제주도민들의 필수 의료를 충족시키는 공공병원을 개설한다면, 전화위복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공공병원이 의료기관 수로는 5.4%, 병상수로는 10.3% 수준에 불과하고, 특히 제주도의 경우는 응급의료 취약지역, 분만 취약지역일 뿐 아니라 공공노인병원이 없는 공공의료 취약지역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 공공병원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확인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단독으로 공공병원을 개설하는 방법도 있고, 또는 제주도가 노인요양병원 기능을 축으로 한 서귀포의료원 분원을 설치하거나 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주대병원 분원 방식으로 설치하는 방식도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보건복지를 제대로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비중을 최소한 30~40% 수준으로 증대시키는 것이 필요조건이 될 것인데, 공공병원을 새로 만들려면 적어도 4-5년이 걸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는 리모델링 공사만 하면 공공병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상황이므로, 정책 방향을 제대로만 수립한다면 도리어 단기간에 공공병원 하나를 확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국립트라우마센터(행정안전부 의뢰, '국립트라우마센터의 설립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용역 최종보고서' 참조), 소방공무원 특수질환 전문치료를 위한 소방복합치유센터('2017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 참조), 또는 보훈병원 또는 보훈요양원 등으로 전환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도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주영리병원 허가를 취소하는 대신 이를 괜찮은 공공병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족한 보건복지 증대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정부 여당과 제주도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석운 기자는 제주영리병원저지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며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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