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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의 증손녀가 광복회장에게 보내는 편지

[기고] 저희 할머니가 박은식 선생 친딸인 것을 밝혀야 합니다

등록|2019.03.07 14:29 수정|2019.03.07 14:30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7일 <백암 박은식 선생 '외동딸' 박영애, 왜 역사에서 사라졌나>라는 기사를 통해 백암 박은식 선생의 외동딸로 추정되는 고 박영애씨가 박은식 선생의 후손으로 기록돼 있지 않음을 알렸습니다. 박은식 선생의 후손으로 기록된 것은 양아들 박시창 선생뿐이며, 그의 장남은 박유철 광복회장입니다. <BR> <BR>고 박영애씨의 손녀 윤복주씨는 <오마이뉴스>에 "박영애 할머니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박유철 광복회장에게 쓴 편지를 전달해왔고, <오마이뉴스>는 이를 최소한의 편집만 거쳐 싣습니다.[편집자말]
박유철 광복회장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윤복주이고, 저의 아버지 존함은 윤진해이며, 친할머니 존함은 박영애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박은식 할아버지의 저서와 신문 자료 등을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희 남매들에게 너희 증조부님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이고, 전 생애를 민족의 독립에 바친 독립투사로 한국의 독립을 이룬 너무나 훌륭한 분이며, 너희는 그 자손이니 늘 가슴에 새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백암 박은식 선생 ⓒ wiki commons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족사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남매들이 있었으나 다 죽어 할머니 혼자 남아 외동딸이라 했고, 양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박시창이라고 하셨습니다.

박은식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으로 너무나 바빠 가족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할머니는 어릴 때 잘 알던 윤씨 집안에 혼인 약속을 해서, '윤철선' 저희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아들 1명, 윤진해를 두었고 손주는 현재 7명입니다. 집이 가난했고, 손주들까지 돌봐주시면서 너무나 많은 고생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1986년 92세에 돌아가셨고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박은식 할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셨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박은식 할아버지의 저서와 자료를 보며 할머니를 생각하며 많이 우셨습니다. 할머니가 친딸임이 역사적으로 밝혀져야 한다고요.

저는 후손으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또 할머니 생전에 할머니도 아버지도 박시창 할아버지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저도 할머니가 박시창 할아버지 댁에 인사 다녀오라고 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때(1982년, 1983년) 2~3번 시흥 집에 찾아가 박시창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렸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 백암 박은식 선생의 양아들 박시창 선생이 중국에 거주하며 백암의 외동딸(박영애)보낸 편지. 박영애씨를 '누님'이라 칭하며 고마운 마음과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소장


1975년 '백암 박은식 선생님 추모 50주기'에 저희 큰 오빠가 갔고, 1993년 백암선생님 유해 안장식때 국립묘지에도 오빠가 참석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에 할머니가 친딸이라는 걸 밝히려고 교수님도 기자분들도 보훈처도 만나고 노력하고 애쓰셨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안 밝혀지고 있습니다.

현재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에 백암 박은식을 검색하면, 어디 한 곳에서 할머니의 존재는 없습니다. 가족란에 아예 없습니다.

저는 앞서 말했지만 후손된 도리로서 할머니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박유철 회장님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박영애 할머니가 백암 박은식 선생님의 친딸임을 정확히 말씀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2019년 03월 04일 윤복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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