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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템플스테이, 절 배우는 건 포기했지만

[유네스코 세계 유산 한국의 산지승원3] 조계산 선암사 세 번째 이야기

등록|2019.03.16 14:55 수정|2019.03.16 14:55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암사에서의 2박 3일간의 템플스테이 체험담을 싣는다. - 기자말
   

선암사 적묵당 선암사 공양간으로 사용되는 적묵당 ⓒ 변영숙


"늦어도 4시 반까지는 오시면 좋아요. 4시 50분부터 저녁공양인데 늦으면 식사를 못하세요."

선암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40분. 꼬박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밥'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처 달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도 나왔다.

2박 3일 동안 선암사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울 것이다. '진정한 자아', '참선', '명상', '108배' 같은 것들은 접어두고 도량을 산책하고 스님들의 생활을 엿보고 선암사의 아름다움에 취할 것이다.

심검당에서의 꿀잠
    

선암사 여성 전용 요사채인 '심검당'건물 '지혜의 칼을 닦는 곳'이란 뜻의 심검당 건물, 여성전용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 변영숙


범종각 옆에 커다란 나무대문이 있는 건물로 안내되었다. '지혜의 칼을 닦는 곳'이란 뜻을 가진 심검당 건물이다. 스님들이나 행자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였으나 지금은 여성용 템플스테이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검당은 한눈에 보아도 지어진 지 꽤나 오래된 건물이었다. 틈이 벌어진 나무대문이며, 모양도 제각각인 주춧돌이며, 때가 낀 툇마루며... 천년 고찰의 고색창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는 단층으로 지어졌을 건물은 최근에 덧대어 2층을 올린 듯 1층과 2층의 나무색이 달랐다. 임기응변식으로 덧댄 합판은 궁색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암사 심검당 심검당 내 방의 쪽문을 열면 심검당의 뒷마당과 대나무 울타리 쳐진 선암사 계곡 풍경이 펼쳐진다. ⓒ 변영숙


그런데 이 모든 외관상의 단점들이 나에게는 시골 할머니댁에라도 온 듯한 편안함과 정겨움을 안겨주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야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과 공동욕실조차도 2박 정도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불편함이었다.

나무선반과 대나무 옷걸이 그리고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 전부인 방은 '단촐함' 자체였다. 하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불은 개켜서 한 켠에 놓으면 굳이 이불장이 필요 없고, 옷은 대나무 옷걸이에 걸면 되는 것을. 옷장, 행거, 화장대, 책상, 침대도 모자라 새로 서랍장을 들여놓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심검당의 방은 말없이 조언하고 있었다. '그만' 됐다고.

심검당은 '물욕'과 '탐심'으로 생기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법을 말없이 가르쳐준다. 수행의 첫걸음은 '버리는 것'임을.

적묵당에서 먹는 꿀밥 
 

선암사스님들의 발우들 공양간에 들어서면 스님들의 발우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 변영숙


공양간에서는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들만  조용히 식사중이었다. 스님들의 공양은 이미 끝난 모양이다. 스님들의 발우공양을 보고 싶었는데...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발우를 가지고 예법에 따라 공양하는 의식으로 불교에서는 중요한 수행 중의 하나이다.

공양간 입구 진열장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꼭 꿀단지(?)같이 생긴 단지들이 스님들의 '발우'다. 발우는 부처님이나 스님들의 밥그릇으로 크기 순으로 밥그릇, 국그릇, 청수그릇, 찬그릇 등 4개로 되어 있다. 큰 그릇에 나머지 그릇들이 다 들어가므로 포개 놓으면 꼭 1개의 단지처럼 보인다.

공양주에게 물으니 스님들의 발우공양은 "아침에만 하시는 거 같던데요"라고 한다. 스님들의 아침 공양 시간은 신도들보다 30분이 빨라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발우공양 모습은 보기가 힘들 것 같다.

주방 쪽에 차려진 반찬과 밥을 덜어 와 자리에 와서 앉았다. 눈 앞에 놓인 밥과 반찬들을 보니 '일미칠근'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 톨의 쌀이 나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는 다른 사람의 노고와 땀이 일곱근이나 든다'는 뜻이다. 이른 새벽 내게 차려진 이 음식들이 새삼 고맙다.
  

선암사 비빔밥 나물에 선암사 매실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빈 '선암사비빔밥'은 그 어떤 산채비빔밥보다 맛나다. ⓒ 변영숙


선암사의 김치와 고추장 맛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매실(액)을 넣고 담근 매실고추장을 넣고 비빈 선암사 비빔밥은 진짜로 '엄지척'이다. 취나물, 무나물, 깻잎장아찌, 호박나물, 콩나물 무침, 고추조림 등 갖가지 나물 반찬들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살이 더 찐 거 같아요. 스님."
"계속 먹으면 빠져요."

갑자기 채식과 소식을 하는 스님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제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일년 내내 밥과 나물 반찬만 먹는다면 살이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다. 빈그릇은 행자들과 공양주들이 설거지를 하는데 공양간에 싱크대가 없어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아 바닥에 앉아서 설거지를 한다.

'저 물은 따뜻한 물일까?'

주는 밥을 받아 먹고, 설거지까지 남에게 맡기니 마음이 편치 않다. 문득 '내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타인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니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선암사의 일상
 

선암사의 새벽 풍경 조계산의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아침해가 떠오른다. ⓒ 변영숙


선암사의 하루는 새벽 3시 도량석으로 시작된다. 도량석은 이른 새벽 어둠 속에서 목탁을 울리며 도량을 한 바퀴 도는 의식인데, 잠들어 있던 세상 만물을 깨우고 자연의 순리가 시작됨을 알리는 의미란다.

오전 3시 40분에는 새벽 예불이 시작되어 약 한 시간 가량 이어진다. 경내에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뜻을 알 수 없는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

아침 공양이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둠이 걷히고 동이 터온다. 조계산 동쪽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밝아오면서 세상이 다시 드러나는 모습은 '장엄함' 자체다.
 

예불 장면 선암사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는 모습 ⓒ 변영숙


한번 살아보세요

원통전 돌담길에 서서 한참 동안 해가 떠오는 모습을 바라보다 지장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는 스님 두 분이 제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오늘 제사가 있나 보네요, 스님?"
"네."

"아직 젊으신데 어쩌다..."
"업보죠."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님들과의 대화는 모두 선문답같다.

"근데 스님, 선암사에는 스님이 몇 분 정도 계시나요?"
"한 25명 정도 되시죠. 칠장선원에 여섯 분, 학승이 열다섯 명 정도 돼요."
"선암사에서 하루에 밥 짓는 양도 상당할 것 같은데요."
"글쎄요. 사람이 많을 때에는 200여 명이 먹을 분량을 할 때도 있어요, 보통은 40-50명이 먹을 밥을 해요. 근데 보살님은 뭐 그런데 관심이 많으세요?"
"그러게요. 그냥 선암사의 모든 게 궁금하네요. 저는 하루만 있다 가려다가 선암사가 너무 좋아서 하루 더 머물고 있어요. 스님은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절에 사시니."
"하하, 직접 한번 살아보세요. 선암사가 진짜 아름답긴 하죠. 눈이 오면 진짜 멋있어요. 다녀봐도 선암사가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요. 고친 데도 별로 없고, 처음에 지어진 대로, 그냥 그대로예요."
"그러니까요."
"근데 사는 데에는 불편한 점이 많지요. 이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증개축도 마음대로 못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부족해서 손이 다 튼다니까요." 


사람들은 선암사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하고, 또 그것이 인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 되었지만, 스님들에게 이런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선암사 자유시간 
  

운수암 가는 길 선암사에는 비로암, 대각암, 대승암, 운수암 등의 암자가 있다. 모두 선암사 고승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 변영숙


정해진 일정이 없는 '휴식형'은 공양시간만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유시간이다. 한껏 여유로운 걸음으로 선암사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각황전과 무우전, 야생차밭, 동부도, 서부도, 대승암, 운수암까지.

저녁에는 스님과의 차담에도 참석했다. 스님이 따라 주는 차를 마시며 스님 말씀을 들었다. 편하게 던지는 듯한 말씀이 선문답같기도 하고, 인생 선배의 팁 같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만의 규율을 만들어서 생활해 보면 좋아"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선암사 차담 시간 오후 6시 30분부터 심검당에서 진행되는 스님과의 차담시간. ⓒ 변영숙


대승암에서는 스님에게 절하는 법을 배웠다.

"절 할 때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올리면 아주 보기 흉해요."
"태고종에서는 손바닥을 위로 올리지 않아요."

 

태고종에서는 손바닥을 위로 쳐들지 않는다. - ⓒ 변영숙


"팔은 앞쪽으로 뻗어 적당한 간격으로 바닥을 짚고, 양손 사이로 머리가 들어오도록하고, 발은 왼발을 오른발 등에 X자 모양으로 올리고, 일어날 때는 X를 풀고 발가락에 힘을 주고 일어나요."
 

스님의 말씀대로 '절'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고, 머리와 몸은 따로 놀았다.

"엉덩이 내리고... 팔을 너무 벌렸어요... 아, 그게 아니지."
"스님 이제 발목이 아파서 못하겠어요." 


결국 나는 '절하는 법' 배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스님들은 전각이나 불상, 탑을 보면 무조건 삼배나 반배를 올린다. 불교에서 절은 자신을 낮추면서 불, 법, 승 삼보에게 최대의 존경과 참회를 표하는 예법이자 '수행'이기 때문이다.
 

선암사 숲길에 있는 염불 연습대 선암사 스님들이 깊은 숲속에서 염불연습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염불연습대 ⓒ 변영숙


북부도로 가는 길에 스님들이 숲 속에 세워 놓은 염불연습대를 보았다. 거기에는 빼곡하게 불경이 적힌 종이들이 붙어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염불 연습을 할 수 없으니 깊은 산속에 들어와서 연습을 한단다.

선암사를 돌아다녀보니 구석구석 스님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선암사의 역사와 전통, 아름다움은 드러나지 않은 스님들의 고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깨닫는다.

올 봄, 명상과 힐링, 수행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선암사로 가서 천 년이 넘도록 유지되어온 신앙·수도·생활도량을 향유해 보면 어떨까. 오늘 아침 선암사 돌담길에 피어난 매화 사진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선암사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선암사 템플스테이 휴식형
1.     일일 일인실 휴식형 5만원.
2.     김치, 매실고추장 맛이 압권.
3.     편백숲 트래킹 & 스님과의 차담
덧붙이는 글 선암사 마지막 기사입니다. 선암사가 온전하게 선암사를 지켜온 분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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