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전두환, 민주주의에 당해 보지도 않고
[取중眞담] 2019년 3월 11일 광주, 1931년생 그에겐 어떤 날이었을까
▲ 거센 항의 받으며 광주법원 떠나는 전두환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참석한 뒤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11일 낮 12시 30분,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전두환씨는 그저 당당했다. 취재진은 그에게 "(사자명예훼손) 혐의 인정하나", "(5.18 당시) 발포명령 부인하나", "광주시민에게 사과할 생각 없나" 이렇게 세 가지를 물었다.
▲ "발포 부인하냐" 질문에 짜증해는 전두환 "왜 이래"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5.18당시) 발포명령 부인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며 짜증을 내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 공동취재사진
재판은 오후 2시 30분 시작됐고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됐다. 한동안 법원에서 나오지 않던 전씨는 오후 4시 30분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몸으로 막아 선 경찰들 너머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전씨는 쉽사리 차에 오르지 못했다. 더 늘어난 취재진은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수많은 카메라가 그를 조준했고, 급기야 기자 한 명은 차문 앞에 서서 전씨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경호원들도 더 이상 취재진을 가볍게 밀쳐낼 수 없었다.
오도 가도 못한 전씨가 의지할 곳은 꼭 붙든 아내 이순자씨의 손뿐이었다. 20초 가까이 차에 오르지 못하며 그저 앞뒤를 번갈아 돌아보던 그는 경호원들 손에 밀리다시피 차에 올랐다. 아니, 태워졌다. 그때만큼은 그의 얼굴에서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전두환 차량 에워싼 광주시민들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뒤 청사를 떠나자, 시민들이 차량을 에워싸며 전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돌이켜보면 전씨 평생 이런 적이 있었을까.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사조직 '하나회'의 수장을 맡았고, 그 힘으로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땡전뉴스'에선 광주를 폭도로 칭했다.
독재로 얼룩진 대통령 재임 시절, 6월항쟁으로 전씨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친구(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편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12.12군사반란 및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전씨는 결국 구속됐지만,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구속 전 '골목성명'의 현장에는 두 발 딛고 당당히 서서 "정치 보복"을 내뱉는 전씨의 모습만 있었다. 과거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그를 지원했다. 전씨에게 내려진 무기징역형은 2년 만에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1997년 감옥에서 나온 그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반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떠받들어졌다. 몇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공식 석상에서, 전씨는 환대와 덕담에 휩싸여 웃고 있었다. 일부 유력 정치인들은 그에게 '문안을 드리는 것'을 상징적 의미로 활용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이따금 자신의 연희동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거나, 언론을 통해 자신을 규탄하는 국민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시민'을 마주하지 못했다.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 사죄의 뜻을 보이지 않은 채 재판이 끝나자, 유가족과 5.18단체 회원들이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전씨에게 11일 하루는 어떤 날이었을까. 광주시민들이 법정에서 "학살자"를 외치고, 자신의 차를 가로막아 20분 넘게 50m도 이동하지 못했을 때, 독재자였던 그는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 기자들이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채 5.18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땡전뉴스를 언론으로 알고 살던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않았고, 한 번도 시민을 만나보지 못했던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서울로 올라갔을까.
'2019년 3월 11일 광주'는 '1931년 1월 18일생 전두환'에게 생애 첫 민주주의와 시민의 개념을 안겨줬다. 전씨에게 반성을 바라는 건 사치겠지만, 권력자였던 그의 가슴에 이 말 한 마디만 꽂혔으면 한다.
민주주의에 당해보지도 않고.
▲ "학살자 전두환! 광주서 무릎 꿇어라!" 20여분 간 전두환 붙든 광주시민들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전두환씨가 차량을 이용해 법원을 빠져나가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전씨가 탄 차량을 막아 거세게 항의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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