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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희생자 71년 만에 다시 재판 받는다

대법 "군·경이 무차별 체포·감금, 재심사유 해당"… 민간인 희생자는 첫 재심 개시

등록|2019.03.21 17:01 수정|2019.03.21 17:01

▲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대법원에서 열린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 참석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 모씨 등 3명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2019.3.21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 첫 재심 재판 개시가 확정됐다.

당시 반란군에 점령됐던 전남 여수와 순천을 탈환한 국군이 수백명에 달하는 민간인에게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불법 체포한 후 구체적인 범죄 증명도 없이 유죄 판결을 내린 후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의혹을 두고 다시 재판이 열리는 것이다. 71년 만에 사건의 실체가 다시 드러날지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 모씨 등 3명의 재심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군·경이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에 대한 체포·감금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이에 부합한다"며 "원심의 재심개시 결정에 관련 법령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순천 시민인 장씨 등은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사형당했다.

이들은 어떤 절차로 수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 입증된 증거는 무엇이었는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심지어 법원도 판결문을 남겨놓지 않아 무슨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을 재조명했다. 군과 경찰이 438명의 순천지역 민간인을 내란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는 위원회의 결론이 나왔고, 이에 장씨 유족 등이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에서는 당시 군과 경찰이 장씨 등을 불법으로 체포해 감금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인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보면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검찰이 곧바로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항고했지만 2심인 광주고법도 "불법으로 체포·구속됐다"며 1심의 재심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감금됐다"며 재심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장씨 등에 대한 재심 재판은 조만간 재판부가 정해지는 대로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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