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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감수성... 우리도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주장]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의해 2차 피해 구제 가능

등록|2019.04.01 16:44 수정|2019.04.01 16:44
아빠가 돌아가신 날, 조문 온 아빠 친구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한 분을 알고 있다. 그녀가 그 사건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한 시점은 사건 발생 후 10년이 지나서였다. 40살이 넘은 지금의 그녀는 결혼해 남편과 아이가 있다. 남편은 그녀의 과거를 모른다.

우리는 그녀에게 성폭행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인 아빠 친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라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인 아빠 친구가 그 사건을 남편에게 말한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 친구의 부인과 자식들은 자신의 가정에 해가 되는 그녀에게 어떻게 할까?

필자는 요즘 쟁점이 되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 2심 재판부의 판결(2019년 2월 1일)과 대법원 2018. 4. 12.선고2017두74702판결을 인용하여 성폭력 피해자가 두려워하는 2차 가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안 전 지사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서울고등법원의 성폭력 전담 재판부 중 하나인 형사12부이다.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는 안 전 지사의 운전 비서에게 당한 성추행 사실을 핵심 측근들에게 여러 차례 알렸으나, 그들은 이를 무마하려고 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하면 '나만 잘리고 말겠구나. 나만 이상한 여자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피해자 김지은씨 진술의 신빙성을 받아들여 1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위력'의 범위도 폭넓게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10번의 간음 혐의에 대해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김씨의 의사에 반해 4차례 간음하고 1차례 추행했다. 또 4차례 걸쳐 강제추행을 했다"고 판단했다. 2017년 8월 안 전 지사 집무실에서의 강제추행 혐의만 제외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준 재판부의 태도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1, 2심 모두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1, 2심에서 피해자 김씨의 진술이 얼마나 믿을만한가에 따라 유무죄 여부가 완전히 달라졌다. 2심은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말했다. 다음은 성인지감수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대법원판결의 일부 내용이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때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삼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법원 2018. 4. 12.선고된 2017두74702 )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받던 중 필자는 살면서 겪어온 성폭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강사는 한국 여성으로 살면서 필자 정도의 미투 거리 없는 여성이 오히려 드물다고 하셨다. 미투 운동으로 세상은 그동안 가해자에 의해 만들어진 성폭력의 허와 실에 대하여 각성하기 시작했다.

성폭력은 모르는 이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강간 가해자가 평소 내가 좋아하던 가족, 친척, 이웃, 지인들이기에 성폭력 피해자가 범죄 피해자임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자에는 아이도, 남성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대한 2차 가해이다. 우리 사회는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이 자리 잡은 탓에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한다. [시행 2019. 12. 25.] [법률 제16086호, 2018. 12. 24. 제정]

2019년 성폭력 신고율은 10% 내외이다. 즉 실제 발생 사건의 10%만 알려진 것이다. 여성 중 3명이 성폭력을 경험했고, 남성과 어린이들 또한 성폭력의 희생자이다. 남성 4명 중 1명은 여성 파트너에게 신체적 성적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고, 10명 중 1명이 강간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UNDP UNFPA UN Woman UNV/6개국 10178명의 18~49세 남성 대상)

또한 미성숙한 아동과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로 자신이 피해자임을 모르는 때도 있고,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가 두려워 가해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성적 노리개로 고통받는 일도 있다.

특히 알몸 사진, 성관계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을 당하는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사회가 그런 불법 사진과 동영상을 즐긴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1인 1 스마트폰 시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초소형 몰카, CCTV 등 우리의 삶은 늘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 이러할 때 내 딸과 내 아내는? 내 엄마는? 그리고 내 아들과 나는 그 종류조차 다양한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세상을 변하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부터 변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성폭력 가해에 해당하는 건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한다. 시작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멈추는 것부터 하면 어떨까? 요즘 성폭력 피해자라 주장하는 나조차 성에 대해 이중잣대를 가진 성폭력 가해자였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나는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단 내가 이런 것을 경험했고 그래서 이런 것을 알고 이렇게 산다는 것을 세상에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덧붙이는 글 대전광역시 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인권신문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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