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혐오 노래하는 래퍼, 당신들은 '힙합'을 모른다

[주장] 김효은-브래디스트릿 '머니 로드' 논란... 여성 비하는 '놀이'가 아니다

등록|2019.04.04 14:02 수정|2019.04.04 14:38

▲ 래퍼 김효은(왼쪽)이 최근 발표한 '머니 로드'는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 앰비션뮤직/멜론


래퍼 김효은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3월 30일 발매한 음원 '머니 로드(Money road)'에 포함된 가사 때문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해당 음원에 피처링한 래퍼 브래디스트릿의 파트다.

"메갈X들 다 강간/난 부처님과 갱뱅/300만 구찌 가방/니 여친집 내 안방/난 절대 안가 깜빵/내 변호사 안전빵/내 이름 언급하다간/니 가족들 다 칼빵."

'메갈' 여성들을 모두 강간하겠다는 가사는 많은 질타를 받았다. 또한 '부처님과 갱뱅'이란 표현에 대해 조계종에서도 항의 공문을 보냈다. 논란이 되자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 해당 곡은 현재 음원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다.

사실 힙합 신의 '여성혐오'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Mnet <쇼미더머니4>에 출연한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는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17년 래퍼 블랙넛은 래퍼 키디비를 성희롱 하는 가사로 지난 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전히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다소 둔감하게 반응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 "외국 래퍼들의 가사는 (여성혐오가) 더 심하다", "그럼 힙합을 어떻게 즐기냐" 등 토로하는 글도 자주 볼 수 있다. 힙합이 뭐기에 '여성혐오' 없이는 안 된다는 걸까.

미국 힙합과 인종적 역사와 맥락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힙합은 1970년대 '파티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파티 분위기에 흥을 더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MC들의 멘트는 최초의 랩이 되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랩은 흑인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토로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인종분리 정책은 흑인 거주 지역(Ghetto)을 각종 범죄로부터 방치했고, 흑인들의 주류 사회 진출을 제한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인종 차별은 수많은 흑인들의 삶을 억압하고 목숨까지 빼앗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는 랩은 흑인들에게 삶의 돌파구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의식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래퍼들은 극히 드물다. 미국 힙합의 랩 가사들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을 고백하고 감정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미국 힙합의 (흑인 사회를 바탕으로 한) 역사나 맥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입장 표명을 요구 받기도 하고 다른 흑인 셀러브리티의 죽음에 힙합 스타들이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비흑인 래퍼들의 수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힙합은 흑인을 바탕으로 한 인종적 맥락을 떼어놓을 수 없다.

'메갈리아'가 한국 사회에 고발한 것들
 

▲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 갈무리 ⓒ 메갈리아


그렇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힙합곡 '머니 로드'에서 "강간해야 하는" 존재로 서술된 '메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보자. 인터넷이 보급되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긴 이후, 여성에 대한 혐오는 꾸준하고 공공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성들에 대한 뒷담화부터 '된장녀' '김치녀' 등 소위 '개념 없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징벌까지,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여성들을 징벌하는 공론장 역할을 했다.

이 흐름에 돌을 던진 것은 2015년에 퍼진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였다. 당시 메르스 의심환자인 한국인 여성 2명이 홍콩에서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고,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는 어김없이 '개념 없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격리를 거부한 2명이 남성으로 밝혀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오보에 분노한 여성들은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메르스 갤러리'를 점거했다. 그들은 독립된 사이트 '메갈리아'를 개설하고, '미러링(Mirroring)'을 통해 여성혐오 행위를 한 화자의 성별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사회 속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은 온라인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남성 잡지 <맥심>에 '강간 미화' 포스터를 삭제하라고 요구했으며 성범죄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되도록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다룬 서적이나 여성 단체를 소개하며 '페미니즘 리부트'에 불을 붙였다.

나 역시 메갈리아를 처음 접한 것은 '미러링'이었다. 하지만 당시 메갈리아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성희롱, 데이트폭력, 강간, 폭행 등의 여성혐오 범죄를 토로한 글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이를 신고했을 때 경찰들의 무신경한 반응과 2차 가해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 경찰들이 흑인들을 대하는 행태를 떠올리게 했다. 최근 '클럽 버닝썬 게이트'에서 권력과 유착해 클럽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흑인들의 '메갈', '메갈'들의 힙합

당시 내가 보고 느낀 메갈리아는 한국 여성들의 '힙합'이었다. 대부분의 '메념글(메갈리아+개념글: 특정 사이트에서 유저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을 가리킨다)'은 신박한 미러링의 비중 만큼 자신이 겪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고발이었다. 일상 속 차별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치고 사회적 강자인 남성을 조롱하는 한편, 여성혐오 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폭로의 장이었다.

메갈리아는 주변인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상처나 트라우마를 익명을 빌려 쏟아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미투' 운동은 해외에서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각계 각층의 여성들의 공개적인 폭로로 이어지고 있다. '미투' 이전에는 'OO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메갈리아'가 있었다.

같은 의미에서 힙합, 특히 랩은 미국에 사는 흑인들에게 '메갈'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게토 흑인으로서의 삶, 인종차별, 경찰에 대한 분노를 랩으로 표출했다. 2015년 한국 여성들이 메갈리아에 글을 게시하듯 말이다. 하지만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힙합에도 여성혐오 논란이 있다. 1980년대부터 갱스터 랩으로 인기를 끈 래퍼들은 늘 혐오에 대한 가사로 논란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래퍼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시의 흑인 커뮤니티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만큼 높지 않은 시대였으며, 혐오 논란이 있어도 힙합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될 문제 따위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20년이 넘은 지금, 래퍼들의 상황과 사회적인 성숙도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게토를 벗어난 래퍼들이 백만장자 대열에 오르고, 실질적인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래퍼들도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1980년대에 비해 훨씬 사회적으로 성숙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제 래퍼들도 혐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받는다. 2013년 릭 로스(Rick Ross)는 피쳐링으로 참여한 곡에서 '약물 강간'을 묘사해 큰 질타를 받았다. '강간'이라는 단어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에미넴은 데뷔 후 내내 동성애 혐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요구받았다. 이에 에미넴은 동성애자인 엘튼 존과 함께 무대에 서고,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퀴어 혐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미국 사회가 성숙한 만큼 래퍼들도 사회적 인식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해상도 높은 비전으로 사회를 직시하라 
 

박근혜 즉각퇴진 8번째 촛불집회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 ‘박근혜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Yeah I know 광장에 모인 모두가 그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아도
Yeah I know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 넘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도
말 안 되는 거 작동 안 되는 거
산이에겐 미안하지만 상대는 더
해상도 높은 Vision으로 까야만 한다는 거
물론 음원에 관해선 널 이길 순 없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OK 이 시국에 자세하게 더 들어가면 내 손해겠지만
혐오의 단어는 내뱉고 싶지 않아." 


위 가사는 지난 2017년 탄핵 정국 당시 버벌진트가 싱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산이의 '나쁜X(BAD YEAR)'에 대해 남긴 답변이다. 산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곡 '나쁜X'를 발표해, 당시 여성 혐오라는 비판을 받았다. 버벌진트는 이에 산이를 '디스'하는 곡을 발표한 것.

물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념 없는' 일상 속 여성도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에 대해 비판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걸고 넘어지는 순간 그것은 여성혐오가 된다.

일부 남성들은 여전히 '개념 없는' 여성이나 본인의 마음에 안 드는 여성을 찾아 혐오하고, 이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기고 있다. 따라서 사이트가 폐쇄된 '메갈'을 붙잡고 '강간'을 하겠다고 하거나 '개념 없는' 여성을 찾아 혐오하는 것은 자신이 여성혐오자임을 인증하는 꼴이다.

또한 일부 남성들은 '페미는 정신병'이라고 하거나 '특정 사상', '그쪽 성향' 등이라고 부르며, 페미니즘을 비난하고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여성을 '메갈'이라고 낙인찍어 혐오하기도 한다. 김효은의 곡에 피처링한 브래디스트릿의 가사도 그러한 맥락이리라.

미국에서 힙합이 흑인과 이민자들의 '메갈'인 것을 떠올리면, 한국 래퍼들이나 남성들의 스탠스는 오히려 백인 특권층에 가까운 뉘앙스다. 미국 흑인들의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요소나 이민자의 삶을 소거하고 그들의 문화나 사운드만 차용한 한국 힙합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 없는 이성애자 한국 남성들의 '기득권' 장르로 군림해왔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힙합은 미국 흑인들과 이민자, 소수자들의 '메갈'이고, 나와 당신은 한국 사회에서 특권층에 위치한 남성이란 것. 당신은 한국에서 밤늦게 돌아다녀도 스토킹 당할 일 없고, 애인한테 폭력을 당할 일도 없고, 유학파 남성에게 '메갈'로 찍혀 '강간'당할 일도 없다. 이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한국 힙합에게도 한국 남성에게도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족. 지난 1일 미국의 베테랑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이 로스앤젤레스의 의류 매장 근처에서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 닙시 허슬의 명복을 빕니다. 저 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