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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선데이 서울> 있다면, 인천엔 <새러데이 인천> 있다

'추르추르'의 진나래 작가 "가볍고 재미있는 간식 같은 책 만들래요"

등록|2019.04.10 17:15 수정|2019.04.10 20:50

▲ 미술작가이자 출판사 '추르추르' 대표인 진나래 작가가 펴낸 가십형 잡지 <새러데이 인천>. ⓒ 추르추르 제공


문화정체성을 갖는 국가와 도시가 각광을 받는 요즘,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접목한 합성어 '글로컬(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도시를 해석하는 관점은 정치, 행정, 경제, 건축, 경영, 문화, 예술, 사람 등 각자의 기호에 따라 나뉜다.

도시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각화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하늘과 땅의 길을 여는 인천은 세계화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와 같은 과제는 로컬의 문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 말, <새러데이 인천>이라는 가십형 잡지를 펴낸 미술작가이자 출판사 '추르추르' 대표 진나래 작가는 책을 통해 로컬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와 개발과 지역활성화, 재생 등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장소 발견, 인천의 아티스트 등을 소개하여 인천의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였다.

'내게 주어진 삶', 남이 아닌 내가 조각해가는 과정

"미술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좋았고, 미술학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반면에 학교에 가면 그냥 잠만 자고 무의미한 시간들이 너무 따분하고 답답했어요. 예고에 진학한다는 뜻을 내비치니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못 견디는 성격이라 뜻을 굽히지 않고 진학했죠."

10대 때부터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가꾼 진나래 작가는 예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진학하여 조각을 전공했다. 조각하는 작업 자체가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함으로써 정신적, 체력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조각이 저에게 아주 적성에 맞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조각을 전공했기 때문에 시각이 확장되었던 것 같아요.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살펴보게 된 거죠. 예를 들어 어째서 물질만 조각인 것인지,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학습을 위해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해 수료한 상태예요."
 

▲ 가십형 잡지 <새러데이 인천>에 소개된 공간. ⓒ 추르추르 제공


서울에서 자취를 했던 진나래 작가는 월세와 용돈을 충당해야 하는 금전적인 부담으로 인해 2012년에 인천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약 3~4년 동안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 일시 합의 기업)라는 이름으로 팀 활동을 했었어요. 다양한 키워드를 주제로 퍼포먼스, 영상, 전시, 출판 등의 콘텐츠를 제작했어요. 당시 대부도와 창동 등 타 지역 레지던스를 오가며 활동을 했는데 에너지 소모가 크더라고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인데 왜 인천에는 아무것도 없을까, 내 주변사람들과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였어요. 지역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보고자 지난 2017년 문화기획, 창작을 목적으로 '추르추르판판'과 출판사 '추르추르'를 설립했어요."


'추르추르판판'은 작년에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북한이탈주민,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음식과 삶의 추억을 기록하고, 그들이 즐겨먹던 음식 레시피를 나누면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실향민 공유밥상'이라는 프로젝트를 주관하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인천에서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출판 프로젝트, 만화, 무크지 등 발간

출판사 '추르추르'는 '책은 양식(糧食)이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디저트, 핑거푸드, 샌드위치, 패스트푸드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간식 같은 책'을 만들자는 모토로 시작되었다.

텍스트가 많고 책의 두께가 두꺼운 책보다는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에 다가가고자 창작자들의 출판 프로젝트, 만화, 무크지 등 잡지 형식의 인쇄물, 그 외에 가볍고 재치 있는 프로젝트 작품을 발간하고 있다. 추르추르는 그동안 <피아노를 위한 소곡>, <이주민패션매거진>, <새러데이 인천> 등 세 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 피아노를 위한 소곡. ⓒ 추르추르 제공


피아노 교육 열풍이 불었던 90년대. 많은 학생들이 학원이나 가정에서 피아노를 치며 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음표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야만 했다. <피아노를 위한 소곡>은 그 시절, 피아노 교육 열풍이 던진 사회적 메시지를 연결시켜 추억 너머의 것들을 주시하며 즐거움, 욕망, 억압, 꿈, 좌절, 가족 등 기억을 재생시켜 그에 얽힌 이야기를 진나래 작가가 엮은 책이다.

인터뷰 모음집 형식으로 제작된 이 책은 피아노 교습 광고에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의 이야기이자 본인의 이야기다. 이 책을 엮기 전에 진 작가는 만석동 우리미술관 레지던스에 참여해 실제로 며칠 동안 피아노 교습소를 열어 배우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지 등 피아노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였다.

또한, 진 작가의 모친은 직접 피아노 교습부터 학원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진 작가에게 피아노는 교육의 수단뿐만이 아니라 엄마, 가족으로 확장된 유년시절 기억의 장치다.
 

▲ 이주민 패션 매거진. ⓒ 추르추르 제공


현대미술가 박가인 작가가 엮은 <이주민패션매거진>은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 산업연수자들의 패션을 다룬 단행본이다.

한국의 학생들이 친구가 옷을 못 입으면 외국인 노동자 패션이냐고 놀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박 작가가 문제의식을 느껴 '그들도 충분히 멋있어, 패션에 관심이 많고 똑같은 젊은이야!'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직접 취재하여 같은 또래로서 바라보는 시도를 창작물로 엮게 되었다.

<선데이 서울>을 벤치마킹한 <새러데이 인천>은 작년에 인천문화재단 청년문화레지던스 사업에 선정되어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활동 및 공간을 관광(가십) 잡지 형태로 제작한 창작물이다.

사진,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인천의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소개하는 인천, 방문객 통계를 내기 위한 관광지가 아닌 예술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천에 원래 있었던 곳', '우리가 소개하고 싶은 곳', '우리가 생각하는 인천스러운 곳'을 선택해서 실었다.

예를 들어 유명한 관광지의 보여지는 장면이 아닌 마을 옆에 공사현장, 철거 예정인 공장, 자유공원에 LED가 난무하는 풍경 등 관광객의 시선에서 비켜난 곳과 인천의 본모습이 담긴 '날것'을 다루었다.
 

▲ 가십형 잡지 <새러데이 인천>에 소개된 웁쓰양. ⓒ 추르추르 제공


2018년 국립현대미술과 올해의작가상 전시에서 옥인콜렉티브의 소개로 알려진 예술가 모임 '회전예술', '멍때리기 대회' 기획자 웁쓰양, 예술계의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진작가 오석근, 현재는 인천을 떠난 김수환 작가 등 인천에도 많은 예술가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번에 출간된 <새러데이 인천> 첫 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추르추르는 앞으로도 인천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이에요. 유명한 작가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하여 콘텐츠로 제작해 알리고 싶어요. '추르추르'에서는 지속적으로 가벼운 책을 출간하고, '판판'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분리해 스튜디오로 활용하며 현대미술작가와 문화예술 관련된 심도 깊은 책을 펴낼 계획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것을 e북, 이미지, 게임, 영상 등 장르 불문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제작한 결과물을 출판이라고 생각해요. 교육과 교육 아닌 것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없애고 싶어요. '놀 수 있는 책'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로 접근해보고 싶어요."


'로컬아트신'으로 해석한 인천

진 작가가 생각하는 인천의 매력은 산업화의 잔재가 남긴 난잡함이다. 산업화의 잔재에는 비주얼적 매력은 물론 억압과 노동운동의 역사가 담긴 인천 고유의 자원이 있다. 그녀는 로컬문화를 장면(scene)으로 담아 해석을 시도한다.
 

▲ 가십형 잡지 <새러데이 인천>에 소개된 백인태 작가. ⓒ 추르추르


"로컬문화에 대해 물었을 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왜냐하면 공간이나 행정구역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사람은 돌아다니잖아요. 명확히 '로컬'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특정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만 지역민이라 볼 수 없으므로 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과 문화예술, 현장 등을 담고 싶었어요.

문화를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세 또한 중요한데 인천은 아직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점이 더딘 것 같아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그들의 커뮤니티예요. 그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바라봐주느냐 마느냐가 문제인데, 서울은 바라봐주는 사람이 많으니 권력이 확장된다고 볼 수 있어요. 다른 지역에 서울과 같은 향유 문화가 없는 것이 아닌데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런 문제점을 직시하고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천에도 고유의 문화가 있다'고 알려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싶은 바람이에요. 추르추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건 대중화이기 때문에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해나갈 거예요."


이밖에도 진 작가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을 통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야하며,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인천의 주요 문화예술시설에서 문화 향유의 기회와 다양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에서 지속적인 '배움'을 행하며 그녀만의 줏대 있는 사고와 결과물을 창출하는 진나래 작가. 그녀가 행해왔고, 행할 행동들이 전부 조각품을 완성해가는 여정과도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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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렸습니다. 이 글을 쓴 이수인 기자는 'I-View' 객원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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