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78회] 훗날 이 사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 김대중은 역사와 국민들 믿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쉬지 않고 노력하며 도전했다. 국민들은 그런 김대중을 좋아했다. ⓒ 김대중평화센터
이승만ㆍ박정희는 정치적 궁지에 몰리면 어김없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희생양을 찾았다. 김구ㆍ조봉암과 장준하ㆍ인혁당 8인이 그렇게 희생되었다. 전두환도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의 쿠데타에는 재야의 지도자 김대중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 내란음모 재판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때의 문익환, 김대중. ⓒ 사단법인 통일의 집
권총으로 무장한 안전국(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수경사 병력들과 함께 동교동 김대중 자택에 들이닥친 것은 그날 밤(5월 17일) 10시 40분 경, 김씨는 엄습해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비서들과 함께 말없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저녁 8시경부터 "천지개벽이 되었으니 빨리 피하라", "모두 끝났다. 신변을 조심하라"는 익명의 전화가 걸려왔던 것이다.
바깥 분위기를 정탐하러 나간 비서들로부터 "10여 대의 검은 승용차가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10시 40분경, 골목어귀 가로등이 꺼지고 초인종이 울렸다. 비서가 대문을 열자마자 M16 소총을 든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들어오며 닥치는대로 개머리판을 휘둘러댔다.
"이 새끼들, 까불면 모두 죽여버려!"
지휘자가 고함쳤다. 거실에 있다가 뛰어나온 김옥두ㆍ이협ㆍ유훈근 등 비서들의 턱밑에도 M16 총검이 겨눠졌다. 비서들은 모두 마당에 꿇어앉혀졌다.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은 비서 정승희는 정신을 잃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1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김대중의 집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안전국 요원들이 구둣발로 거실에 들어섰다. 그들은 잠자코 의자에 앉아있던 김대중의 양팔을 꼈다. 끌려서 대문을 나서는 김씨의 등 뒤를 총검이 에워쌌다. 이때가 밤 11시 10분 경, 김씨를 태운 승용차가 남산 지하실을 향하면서부터 겪기 어려운 수모가 시작됐다. 김씨는 차안에서 내내 무릎 사이까지 머리를 숙여야 했다" (이도성, 〈남산의 부장들 3〉인용).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이해찬 대표 재판 장면 ⓒ 민주언론시민연합
80년 9월 9일 내란음모ㆍ외환관리법ㆍ계엄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대중은 7월 12일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어 9월 17일 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3일 육본 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도 사형, 81년 1월 23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독재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맹종이었다.
김대중은 같은 날 특별사면으로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어 1월 31일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었으며, 82년 3월 3일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또 그와 함께 구속 기소된 문익환ㆍ이문영ㆍ예춘호ㆍ고은태(고은)ㆍ김상현ㆍ이해동ㆍ함세웅ㆍ이해찬 등도 각각 중형을 선고받았다.
▲ [최초공개] 문동환 목사 - 도널드 프레이저 미니에폴리스 시장이 전두환씨에 보낸 서신'김대중을 비롯한 한국 민주지도자들의 석방을 위한 운동' 공동의장인 문동환 목사와 도널드 프레이저 당시 미니에폴리스 시장이 1980년 11월 24일 작성해 전두환씨에게 보낸 서신. 이 서신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미국무성은 김대중의 석방에 노먼 번즈 동아시아국 대변인을 통해 환영논평을 발표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수상은 "인도적 견지에서 지극히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논평했으며, 아베 신타로 일본외상은 "한국정부의 조치를 평가한다"고 환영했다.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은 5ㆍ17쿠데타를 감행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조작된 시나리오로 김대중을 처형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군사재판에서 사형까지 선고했지만,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 등 우방국들의 세찬 비판과 국제인권단체들의 구명운동에 굴복하여 해외추방 조치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국내에서는 강원룡 목사 등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훗날 이 사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 사형수 김대중 ⓒ 김대중평화센터
전두환의 하수인이 된 5공검찰과 판사들은 밤 11시 10분경 김대중을 연행하여 안기부 밀실에 수감하고서, 그 다음 날 광주에서 일어난 항쟁을 조종했다고 억지를 씌웠다. 유치원생들도 믿기 어려운 일을 백주에 기소장ㆍ판결문에 쓰고, 어용언론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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