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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시신 떠오른 4·11민주항쟁, 기념일 돼야"

등록|2019.04.11 14:57 수정|2019.04.11 14:57
 

▲ 창원 용마고등학교 학생들이 4월 11일 경남 창원마산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표지석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 정기식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장이 4월 11일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열린 '제59주년 4.11민주항쟁 기념 및 김주열 열사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4·11민주항쟁은 창원시 또는 경남도의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1일 경남 창원마산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에서 열린 '제59주년 4·11민주항쟁 기념 및 김주열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김영만 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이렇게 긴급제안했다.

3·15의거는 경남도 기념일이 되었다가 지금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4·11민주항쟁은 아직 아무런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았고,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해마다 기념·추모식을 열어오고 있다.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 입학 동기인 김영만 대표는 "3·15의거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민주항쟁사로 평가받는 것은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4·19혁명을 촉발시킨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3·15의거가 곧바로 4·19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3·15의거 이후 진해와 부산 등 몇몇 도시에서 소규모 학생 시위가 있었지만 시민항쟁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마산에서 자행한 이승만정권의 폭력적 진압과 빨갱이 몰이로 온 나라에 공포감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한편에서는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들이 3·15부정선거 등 일련의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5월 8일을 '디데이'로 잡고 쿠데타 모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며 "4·19혁명으로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자 1년 뒤, 또 다른 명분으로 5·16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르지 않았다면 과연 4·19혁명이라는 역사가 그 시점에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4월 11일, 이 날 마산시민의 분노는 화산처럼 폭발하여 4·11항쟁의 시위 규모는 3·15의거 보다는 몇 배나 컸고 항쟁의 강도는 3·15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며 "이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승만 물러가라'는 구호도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마산시민의 4·11항쟁이 거센 바람을 탄 들불처럼 온 나라로 번져 마침내 4·19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김영만 대표는 "3·15의거와 4·19혁명 사이에 김주열 열사와 4·11민주항쟁이 없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며 "4·11민주항쟁 60주년이 되는 2020년, 내년부터는 창원시 또는 경남도의 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명백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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