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처럼... 울고 웃으며 위로 받아요"
불당문화창작소, 상처받은 삶들을 위한 무대공연 ‘두근두근’
▲ 불당문화창작소 회원들이 자신이 읽은 책을 그림으로 표현해 선보이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해설가: 평범한 가장 그레고르.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레고르: "이게 어찌된 일일까? 꿈 속 이구나"
▶해설가: 그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 말고는.
▶어머니: "그레고르야 6시45분이다. 출근 안하니?"
▶해설가: 이내 대답을 하려다 놀라는 그레고르.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을 만큼 찍찍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아버지: "그레고르, 도대체 무슨 일이냐?"
▶여동생: "오빠, 어디 아파요? 문 좀 열어 주세요."
▶해설가: 그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 '불당문화창작소'에서 각색한 낭독극 <카프카의 변신> 중
▲ <극단 아산> 대표 이강미 강사가 등장인물의 특성에 맞는 정확한 발성과 표정과 몸짓을 지도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불당초등학교 어린이도서관. 이곳에는 매주 월요일 저녁 5시 30분, 20~60대 여성들이 개성넘치는 모습으로 하나 둘 들어선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한바탕 떠들썩하다. 구성원들이 삼삼오오 모이자 누가 준비했는지 따뜻한 녹차와 커피를 나르고, 김밥과 간식거리를 펼친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이들은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분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각자 현재 본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낯선 인생에 새롭게 도전한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불당마을'
▲ 불당문화창작소 조애산 대표는 “불당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파장이 이웃과 이웃으로 번져 도시 전체에 문화와 예술과 낭만이 흘러넘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 불당문화창작소 교육생들이 낭독극으로 각색된 <카프카의 변신> 대본을 읽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불당초등학교 어린이도서관은 불당문화창작소(대표 조애산) 회원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 모이는 공간이다.
불당문화창작소는 천안시 불당마을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주민들이 2015년 3월 조직한 비영리단체다. 단체 회원들은 생활 속에서 함께 즐기는 거리공연과 시민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현직 불당초등학교 교장인 조애산 대표는 불당문화창작소를 통해 지역사회의 새로운 문화지평을 열고 있다. 조애산 대표를 중심으로 예술과 공연을 꽃피우겠다는 의지로 불당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처음에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불당마을 주민 6명이 모여 불당문화창작소가 시작됐다.
조애산 대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작은 규모의 공동체인 불당마을 자체가 훌륭한 공연무대며 생활공간"이라며 "주민들이 삶 속에서 문화예술을 함께 만들어 즐기고, 활성화 시키자는 마음으로 문화창작소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지역신문에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게재하고, 동사무소 협조를 얻어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문을 걸었다. 또 도서관 게시판과 활용 가능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팝업창도 띄우고, 밴드를 비롯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커뮤니티에 불당문화창작소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자 문화와 예술에 목말랐던 주민들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돼 있던 끼와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고, 발산시키면서 커다란 흥미를 느끼고 있다. 또 이렇게 개발된 예술적 재능을 지역사회에 기부하면서 지역사회의 공연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책 속의 등장인물을 무대로 불러내다
▲ 대본연습을 하는 동안 교육생들에게서는 끊임없는 웃음과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데이빗 새논의 <줄무늬가 생겼어요>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불당문화창작소는 일년내내 상처받은 삶들을 위해 두 권의 책을 선정해 낭독극으로 풀었는데, 그 과정이 매우 진지하고 흥미롭다. 작년에는 두 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각각 주어진 배역을 통해 '삶의 가치'를 돌아보고 '통찰'을 배우는 과정에 꼬박 1년이 걸렸다.
1차 교육은 작년 5월15일부터 7월31일까지 8주간 진행했다. 선정도서인 <줄무늬가 생겼어요>를 읽고, 줄거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낭독극을 완성시킨다.
1~4주까지는 단계별 이론 강의로 진행한다. 1주차는 먼저 책을 읽고 현대인의 직업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2주차는 등장인물을 탐색하고 산문을 대화체로 고친다. 3주차는 대화체로 고친 글을 상상하며 각자 그림으로 표현한다. 4주차는 그림을 보고 감정을 넣어 대화를 시도해 본다.
5주차는 소리의 고저장단에 맞게 대사를 읽는 발성연습과 지문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6주차는 각자 등장인물의 역할을 추천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움직임과 목소리 톤을 익힌다. 7주차는 본격적인 낭독극을 연습해 본인과 극중 인물을 일치시킨다. 8주차는 낭독극을 무대에 올려 공연한 후 토론과 평가의 시간을 갖는다.
2차 교육은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1차 교육과 같은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8주 과정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고,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배워 실천한다는 목표를 잡았다.
이들은 작년 한 해 두 편의 책을 파헤치고, 재해석해 새로운 두 편의 낭독극을 완성시켰다. 이들이 지난해 완성시킨 낭독극은 무대공연으로 되살아났다.
삶의 가치를 깨닫고 통찰하다
▲ 불당문화창작소 회원들이 각자 자신이 읽은 책을 재해석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 불당문화창작소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읽은 책을 재해석해 그림으로 표현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불당문화창작소가 추구하는 목표는 지역의 구성원들이 삶의 가치를 깨닫고 통찰하는데 있다. 이들은 교육대상자나 강사진 모두 로컬자원을 활용해 모집하고 교육한다. 먼저 배우고 익힌 사람은 옆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학습한 사람은 또다시 마을 전체로 확장시켜 결국 도시 전체에 예술과 문화와 공연을 뿌리내리기 위한 과정을 반복한다.
교사이며 시인인 현영희 강사와 프리랜서 기자인 신영현 강사는 전반적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독서지도를 한다. 극단 아산 대표면서 연극인인 이강미 강사는 등장인물의 특성에 맞는 정확한 발성과 표정과 몸짓을 지도한다. 업성고 국어교사인 박성용 강사는 읽은 책을 재해석해 무대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디자인화가로 천안미술협회에서 활동하는 연선미 팀장은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길러준다. 전직 교장출신으로 동화연구가인 권향순 강사는 책 속의 주인공이 공연무대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 넣는다. 손미주 강사는 쉬운 책읽기를, 김지중 강사는 무대연출에 필요한 음악을 활용할 수 있도록 풍부한 감성을 살려준다.
자신이 읽은 책 한권이 수없이 분해되고, 재조립 되면서 한 편의 극으로 재탄생한다. 한 권의 책이 공연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꼬박 8주가 걸린다. 이렇게 8주가 지나면 서로 다른 개개인의 생각들이 섞이고, 다듬어져 삶의 가치를 깨닫고 인생을 통찰하는 지혜도 함께 길러지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과 낭만이 흘러넘치는 도시를 꿈꾸며
▲ 불당문화창작소 회원들이 불당초등학교 강당 무대에서 낭독극을 공연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불당문화창작소는 2015년 3월 결성한 이후 자체 교육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악기를 하나씩 다룰 수 있도록 교육했다. 그 결실로 이듬해인 2016년 불당천 다리에서 어린 시절 추억의 동요를 연주하는 거리공연을 펼쳤다.
2016년 9월에는 신방도서관에서 일러스트작가와 함께 하는 상상큐레이터 관객참여 연극교육을 실시했다. 2017년에는 옥상위의 민들레꽃 낭독극을 공연했다. 2018년은 초등학교에서 낭독극 재능기부공연을 선보였다. 2017~현재까지 충남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충남 온통시민배움터 사업에 공모해 낭독극 시민교육을 펼치고 있다.
조애산 대표는 "그동안 불당문화창작소가 이룬 작은 성과가 있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의 끼를 찾아주고, 함께 공연하며 확산시킨 것"이라며 "일반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일깨워 자존감을 키우면서 개개인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불당문화창작소에서 펼치는 교육사업 전 과정은 지역의 각 분야 전문인들의 재능기부로 선순환 되고 있다. 이들은 불당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파장이 이웃과 이웃으로 번져 도시 전체에 문화와 예술과 낭만이 흘러 넘치길 기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충남시사신문>은 아름다운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이나 단체를 찾아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소개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주민들이 조직한 비영리단체 '불당문화창작소'를 찾았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