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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별난 '독종 스님'을 아시는가요?

명진 스님의 평화와 통일 이야기, 오는 23일 원광대학교

등록|2019.04.21 17:03 수정|2019.04.21 17:47

▲ 명진 스님. 자료사진 ⓒ 유병문


1950년 한국전쟁의 난리 통에 태어났다. 여섯 살에 어머님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평균 1년에 한번 꼴로 전학하며 가는 학교마다 주먹대장이 됐다. 공고에 들어가 싸움을 일삼고 선생님들에게 대들다 대학을 보내주겠다는 친척의 회유로 절에 들어가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수행하던 젊은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진짜 공부를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중이 되기로 작정했다.

스무 살 행자가 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기든 지든 제일 센 사람과 붙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야산 해인사의 성철 큰스님을 찾았다. 경전을 깊이 공부하려면 일본어를 배우라는 큰스님의 지시에 불복하며 뛰쳐나왔다. 당대 '최고의 스님'으로 불리던 성철의 제자가 되려면 대개 10년 걸리는 데 독특한 그에겐 1년 만에 계를 주겠다고 했지만 5일을 남겨놓고.

여기저기 훌륭한 스님들을 찾아다니다 스물다섯 살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어엿한 중이 됐다. 공부와 수행을 위해 계속 떠도는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스님을 찾아 안동 봉정사에 갔더니 병색이 완연했다. 간염에 소머리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전국을 돌며 돈을 모아 소머리를 구해 먹였다. 인근 절과 신도들까지 몰려와 항의했다. 어찌 절에서 소머리를 삶을 수 있느냐는 주지 스님의 질책에 대꾸했다. "그럼 스님 머리를 삶을까요?"

1978년 다시 해인사를 찾았다. 법문을 시작하려는 성철 큰스님에게 대뜸 물었다.

"성철의 목을 한 칼에 쳐서 마당 밖에 던졌습니다. 그 죄가 몇 근이나 됩니까?"

참선을 위해선 체력도 다져야 한다며 스키장에서 보드를 배웠다. 영하 18도의 밤에 혼자 미친 듯이 참 독하게 연습해 며칠 만에 최상급자 코스에서 제일 급한 경사를 맘대로 다닐 수 있게 됐다. 수영을 배울 때는 손이 불어터져 속살이 나올 때까지 연습해 일주일 만에 수영장을 20바퀴 돌았다. 어느 날 밤 갑자기 한강도 건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뛰쳐나가 홀로 한강을 왔다갔다 해버렸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계기로 사회문제에 관심 갖고 '운동권 스님'이 됐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경을 외웠다. 간수가 뭘 그렇게 중얼거리냐고 물었다. "너희놈들 지옥에 떨어지라고 주문 외운다." 공안사범으로 수갑에 밧줄로까지 묶여 감사 앞에 끌려갔다. 무심코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검사가 불쾌했는지 다리 풀라고 했다.

"진술 받을 때 다리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입을 꼰 것도 아닌데 뭐 다리 가지고 시비합니까? 물어보시오. 다 대답할테니."

1987년 개운사로 와달라는 중앙승가대학교 학생들의 끈질긴 요구에 처음으로 주지 스님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 당할 때 집으로 초대받았다. 김대중 선생은 "말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도 밀려본 적이 없는" 그에게 한 시간 반 동안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집을 나서며 은근히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다.

"중보다 불경을 더 많이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중 앞에서 자꾸 얘기하면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듣는 연습도 좀 하셔야겠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김대중 선생이 1987년 6월항쟁으로 가택연금에게 풀려나자 첫 강연을 개운사에서 하게 됐고, 그걸 주선한 그는 개운사 주지를 그만두게 됐다. 개운사는 이미 '제2의 명동성당'이 돼있었다.

1994년 조계종 총무원장 3선 반대시위를 주도했다. 종단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문(佛門)을 떠나고 승복(僧服)을 입지 않겠다며 농성을 벌여 총무원장의 3선을 막고 종단개혁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6년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가 됐다. 3년 가까운 1000일 동안 절 밖을 나오지 않고 매일 1000번씩 절을 했다. 백만 번 절하는 중에 907일째 딱 하루 외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불교의식 집전을 맡아달라는 봉은사 신도 권양숙 여사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거절과 고심 끝에.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신자 표시 제한'이란 문자와 함께 전화를 받았다.

"봉은사 명진 주지 스님이시죠? 저는 한나라당 후보 박근혜입니다."
"왜 박근혜가 전화를 해? 시끄럽다. 근데, 목소리가 진짜 똑같네. 너, 누구냐?"


2011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남북 합작으로 만들어지던 <민족21>을 압수수색했다. 발행인이던 그가 즉각 대응했다. "남의 나라 사절단 숙소나 뒤지다 발각되는 절도범 전과자 집단인 국정원이 감히 통일언론 <민족21>을 압수수색했다"고.

2017년 조계종 적폐 청산을 위해 꼬박 20일 단식했다. 총무원장에 맞서 종단 비판을 멈추지 않다 승적까지 박탈당했다. 중은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있으니 중이 아닌 대신 사람이 된 셈이랄까. 그에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지난날 몇 차례 찾아와 물었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이런 별난 스님을 다음과 같이 원광대학교에 초청한다. 어떤 게 잘 사는 건지 알아볼 겸 그가 언제부터 왜 통일문제에 관심 갖고 어떻게 <평화의 길>을 찾거나 걸으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당길지 들어보기 위해. 큰 관심 갖고 많이 참석해주기 바란다.

[통일부 지원 원광대학교 통일특강]

주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의 역할
진행: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대담: 명진 스님 (평화의길 이사장)
일시: 2019년 4월 23일 (화) 19:00-21:00
장소: 원광대학교 프라임관 컨퍼런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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