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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여름에 쓰는 방과 겨울에 쓰는 방이 달라요

대전문화연대·환경운동연합 걷기모임... 유희당을 가다

등록|2019.04.23 09:02 수정|2019.04.23 09:02

유회당에서 내려다본 마을탱자나무가 양쪽에 자리하고 마을이 보인다. ⓒ 이경호


이름도 생경한 무수동은 대전 유등천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의미는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는 유래가 있는 마을이다. 무수동을 따라 오르다보면 안동권씨 종가가 위치하고 있다. 종가를 지나 안쪽끝자락에는 조선후기 문신 권이진이 만든 유회당이 있다. 부모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만든 정원이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회당 뒤편으로 1km 내외의 산행을 하면 거업재, 여경암 그에 딸린 산신당을 마날 수 있다.

대전환경운동연합과 문화연대는 매월 3번째 일요일 '유유자적 걷기모임'을 진행한다. 지난 21일에는 무수동 일대를 회원 20여명과 함께 걸었다. 대전에 오래 살면서 무수동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유회당이라는 곳 역시 처음이라는 회원이 여럿 있었다.

 

▲ 유회당의 모습 ⓒ 이경호

 
처음 들린 유희당을 안내 한 박은숙 문화연대 대표(이하 박대표)는 충청도보다는 경상도의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위치상으로 산기슭에 자리 잡아 축대를 쌓아 올린, 충청도였다면 아마 평지에 지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안동권씨 후손이었기에 경상도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추정이다.

유회당 안쪽으로 알라가니 무수동이 한눈에 내려보인다. 약간 위협적으로 느꼈던 입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래된 탱자나무 2그루와 배롱나무가 고즈넉한 유희당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평상시 만나기 힘든 탱자나무 꽃을 만날 수 있었다.   유회당 안에 기궁제와 삼근정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기궁제는 제를 지내는 곳이고, 삼근정사는 시묘소(묘를 지키기 위해 세운 건물)였다. 여기 툇마루에서는 멀리 권이진의 부모의 묘가 보였다. 효를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 현대에는 문화에서는 적용이 힘들지만 정성을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다.
 

▲ 툇마루에서 멀리 묘가 보인다 ⓒ 이경호

     
유회당을 나와 여경암과 거업제로 이동했다.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거업제는 조선시대에 공부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총 4개의 방이 있었는데, 여름과 겨울의 방이 다른 모습을 확인했다. 여름에 사용하는 방 2개는 방문이 넓고 크며, 위로 완전히 문이 열릴 수 있게 설계돼 있고, 구들장도 없다. 겨울 방은 문이 작고, 구들장으로 온돌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거업제의 모습오른쪽 2개와 왼쪽 2개의 문 크기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이경호

 
거업제 뒤편에는 여경암이 위치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여경암은 특이하게 앞쪽이 아닌 뒤쪽으로 난 'ㄷ'자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문산의 기운을 다 받도록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경암에 세운 기둥들은 같은 모양의 기둥이 없었다. 바닦에 주춧돌 역시 평평하지 못해서 나무 아래를 주춧돌 모양에 맞추어 깍아내어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바위에 맞게 깍아내는 작업을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 여경암의 모습 ⓒ 이경호


여경암 뒤편에 크기가 작아 귀여워보이기 까지 하는 산신당이 있었다. 오래 자란 느티나무 아래 지어진 모습에 참가자들은 모두가 이렇게 작은 산신당은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여경암, 거업제, 산신당이 같은 자리에 있다. 불교, 유교, 도교가 한자리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나와 우리는 안동권씨 종가로 향했다. 종가에 다다르자 작은 4각의 초가정자가 나타났다. 문중에서 설치한 정자가 초가인 것이 매우 특이했는데 실제 가까이에서 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4각의 모든 방향에 이름을 다르게 지어 놓은 것이다.

먼저 남쪽의 광영정(光映亭)은 함께 조성한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는 정자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동쪽엔 수월난(受月欄)은 달빛을 받아들이는 난간이라는 의미로 달이 뜨는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지은 이름으로 보였다. 서쪽엔 관가헌(觀稼軒)으로, 농사짓는 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았다. 북쪽엔 인풍루(引風樓) 바람을 받아 들이는 누각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정자에 앉아 바라본 모습을 상상하며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이 비록 초가정자지만 운치위 정취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박 대표는 정자의 광영정의 의미를 설명하며 중국의 학문에서 가져와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김삿갓이 떠오른다며 시를 한수 읊었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사각 솔소반 죽 한 그릇 안에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 구름 그림자 함께 감돌고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은 조금도 미안해 마시게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나는 물에 넘어져 오는 청산을 좋아 한다오

 

우리나라의 김삿갓의 시조랑 정자가 잘 어울린다는 박 대표의 설명에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문화적 해설이 곁들여진 걷기모임은 종가에서 마무리됐다. 3km 내외의 짧은 거리를 3시간 동안 걸었으니 정말로 유유자적 걸었던 모임이었다. 대전환경운동연합과 문화연대는 5월에는 유등천 상류를 걸으며 하천의 생태와 생명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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