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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혼란했던 시기 최고의 예인... 재평가 됐으면"

신명숙 대진대학교 교수, 군산에 ‘권번춤문화원’ 개원

등록|2019.04.26 10:57 수정|2019.04.26 11:10

▲ 군산 권번춤문화원 테이프커팅 장면 ⓒ 조종안


지난 20일 오후 3시 군산시 번영로에 있는 팔마예술공간(예깊미술관)에서 권번춤문화원 개원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현판식 후에는 지난 1월에 작고한 장금도(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20호) 명인 추모 영상 감상과 권번춤문화원 예술단의 장구춤, 입춤, 흥풀이춤, 권번부채춤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을 지켜본 군산 차림문화원 이미숙(한복디자이너) 원장은 "하얀 옷에 푸른 옷고름을 드리운 장금도 선생님 공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덩기덕' 장단에 몸을 싣고 손끝으로, 발끝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하는 춤사위는 하얀 나비가 장자(莊周) 따라 청산으로 가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역사칼럼니스트 묵개 서상욱 선생이 '권번부채춤'을 상징하는 합죽선에 다양한 시구와 그림을 그려 넣고, 낙관을 찍어 참가자 60여 명에게 선물해서 눈길을 끌었다.

"군산소화권번은 우리나라 부채춤의 산실"
 

▲ 신명숙 교수의 권번부채춤 춤사위 ⓒ 조종안


한국의 부채가 갖는 멋과 아름다움이 깃든 부채춤은 경쾌한 민속악 반주와 함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국악의 꽃'이란 애칭을 얻으며 한국을 상징하는 춤으로 자리매김한 부채춤. 이 춤사위는 한국무용의 대가 김백봉이 1954년 창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권번부채춤'은 장금도 명인이 동기시절(1940년대 초) 군산 소화권번에서 배우고 익힌 춤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묻혀 있다가 2015년 12월 서울 성암아트센터에서 열린 신명숙 대진대학교 교수 작품발표회 때 '권번부채춤'이란 타이틀로 처음 춤사위를 드러냈다. '권번부채춤'은 화려함보다는 담백하면서 예술적인 면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금도 명인은 생전 구술에서 소화권번에서 가르치는 춤을 모두 섭렵했음에도 '승무'와 '살풀이춤' 외에는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부채춤', '검무', '화관무' 등은 여럿이 추는 군무인 데다 일찍 활동을 접는 바람에 춤사위를 풀어낼 기회도 없고,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신 교수는 "권번부채춤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춤'으로, 장금도 선생이 배울 때는 부채에 국화, 매화 등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춤사위도 조선 시대 교방춤(교방무)과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따라서 군산소화권번은 우리나라 부채춤의 산실이므로 무용 역사도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생과 권번 재평가하는 계기 됐으면.."
 

▲ 장금도 명인 추모영상 감상하는 참가자들 ⓒ 조종안


권번춤문화원 출범을 앞장서 추진해온 신명숙 교수는 1999년 당시 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춤 전승자인 장금도 명인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그 후 민살풀이춤을 전수하였고, 5~6년 전에는 '권번부채춤' 춤사위를 발견, 재연에 성공했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신명숙 교수는 지난 1월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보존과 전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군산시민이 됐다. 신 교수의 명예 시민증 수여식 전날 친정엄마처럼 모시던 스승 장금도 명인이 영면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신 교수는 "권번은 우리의 춤과 노래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복 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 대부분은 권번을 통해 계승됐다. 그런데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라며 "군산의 마지막 예기 장금도가 남긴 자료(구술, 사진, 춤사위 등) 정리와 권번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 권번춤문화원을 설립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 인사말 하는 신명숙 교수 ⓒ 조종안


"군산은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는 미곡항으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권번이 다섯 곳이나 있었으며 전통 가무를 배우고자 하는 예인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그중 소화권번 기생들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곳에서 춤과 노래를 배웠던 장금도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권번에서 학습 받은 예인들을 만나볼 수 없게 됐다.

장금도 선생은 자신의 삶 속에서 기생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어 하였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생과 권번은 사라졌으나 기록은 남아 있다. 기생들은 혼란했던 시기 최고의 예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장금도 선생과 인연으로 권번춤을 전승하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생과 권번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신명숙 교수는 지역 인문학자와 향토사학자들이 참여하는 세미나 개최, 현대인에게 필요한 정신문화 소양 강좌. 다도 문화체험, 권번 음악회, 권번 관련 자료 전시회, 숨겨진 지역 문화 발굴 등 미래 계획을 소개하면서 "권번춤문화원이 복합예술아카데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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