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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생태계 파괴하는 신규 양수발전소 반대한다

등록|2019.05.02 08:17 수정|2019.05.02 08:18
곡우를 앞두고 산골짜기에는 때 아닌 폭설이 내렸다. 4월에 내린 눈으로는 기상관측 사상 최고라 했다. 30센티미터 가까운 습설을 견디지 못한 100평 하우스가 그만 폭삭 주저앉았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도시의 친구가 "그게 다 기후변화 때문"이며 화석연료와 산림파괴가 그 원인이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혀를 끌끌 찼다.

지난 2월의 어느 날도 나는 이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이는 인터넷에서 보았다며 "봉화군에 양수댐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너네 부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과 함께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산 정상부의 상부댐과 아래쪽의 하부댐, 그 둘을 연결하는 수 킬로미터의 터널과 양수발전소를 짓는 초대형 사업으로 산을 깎고 계곡을 파헤치고 산림을 훼손하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연적인 사안이었다.

시행처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정부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거해 1년여의 환경적, 기술적 검토를 거쳐 봉화군 포함 8개 예비후보지를 선정, 2월 초에 발표했으며, 이들 중 5월 말까지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유치신청을 낸 지자체 중에서 올 상반기에 3곳을 최종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방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능선 바로 너머로 수백 만 톤의 물을 담은 상부댐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그곳에. 산림청이 공들여 가꾸는 장군봉 선도 산림경영단지가 있고, 다양한 토종 식물과 봉화 송이가 나며, 수달과 담비, 황조롱이가 넘나드는 이곳에. 봉화군과 이웃한 4개 군이 함께 조성한 외씨버선길과 오지탐방을 즐기는 이들이 숨겨놓은 보물처럼 아끼는 낙동정맥의 주요 트레일이 만나는 이 고즈넉한 골짜기에.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황당함은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로 바뀌었다. 1조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준비는 소홀했고 태도는 무례했다. 군은 피해주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이 중대한 사안을 이해당사자에게 알리기도 전에 지방 언론을 통해 적극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 스스로 수소문하여 찾아간 피해지역 주민 설명회에서도 군은 "신규양수발전소 건설사업을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문구가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다.

반대를 표명하는 주민들의 발언권을 제한하기도 했다. 참담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또한 이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노력 대신, 경제적 효과와 지원사업 등 시행처에서 나온 일방적인 정보를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주민들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시행처의 행정절차 또한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이다. 4개월이라는 유치 신청기한은 지자체에서 사안을 검토하고 환경과 주민에 대한 피해를 조사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또한 한수원은 설명회에서 봉화군이 선정된 기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보를 요구하자 언론에 보도된 자료 정도를 보내온 것에 그쳤고,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한 정보공개 요구도 거부했다.

이 같은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표면적으로 주민자율유치라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지자체와 그 주민에게 떠넘기고 있다. 3개 지점 선정 후에도 3년여에 걸친 수용성 확보와 환경영향 평가 후 사업 시행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하니, 주민자율유치라는 미명 아래 지자체와 주민을 연속적인 갈등 구조로 몰아가는 절차이다.

수몰지역과 이주민, 그리고 수백만 톤의 물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이 사업은 지자체의 유치 신청 여부, 그리고 시행처의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갈등구조를 일으키게 되어있다. 피해주민, 그리고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는 지자체와 지역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피해주민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갈등이 일어난다.

이 아픔과 갈등을 누가 어루만져줄 것이며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시행처와 군이 내세우는 각종 지원책에서 오는 갈등이 양수발전소의 건설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깊어져 주민들 사이에 영원히 봉합할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는 것이다.

기왕에 지어진 7개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이 한 자리수라고 한다. 신규 양수발전소의 목적이 재생에너지 출력변동성 대응이라니 기존 양수발전소를 가변속 양수발전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과거 정부에서 많은 공을 들인 에너지 저장 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도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인간과 동식물의 주거환경, 그리고 자연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또 다시 벌여야만 하는가? 에너지 전문가들은 부디 모두를 아우르는 미래를 고민하시라. 그래도 양수발전소가 꼭 필요하다면 시행처는 부디 사람이 살지 않고 최소의 환경파괴가 일어날 곳을 찾으시라. 지자체는 부디 피해주민의 말을 경청하시라. 그리고, 나는 때아닌 에너지 공부를 한다며 수선을 떠는 대신 사과나무를 돌보리라.
덧붙이는 글 한겨레 3월 26일자 "왜냐면" 지면에 "누구를 위한 양수발전소인가?" 로 같은 주제의 기고문 게재.
사업 내용과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과 결어에 비슷한 내용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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