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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지 3년 만에 돌아온 딸, 어머니는 그저 울기만 했다

[리뷰] 세월호 5주기에 보았던 독립영화 <봄이 가도>

등록|2019.05.18 18:52 수정|2019.05.18 18:53
 

▲ 영화 <봄이 가도> 포스터 ⓒ (주)시네마달


2019년 봄. 세상 어딘가에는 오랜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때 단, 하루만이라도 이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기나긴 시간, 한줄기 희망을 건져 올리기 위해 애달픈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망각의 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슬픔들이 있다.

<봄이 가도>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이다. 어느덧 세월호 5주기가 지나가도, 여전히 망각되지 않는 슬픔들이 있다. 또한 그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정치와 이념적 갈등의 경계로 몰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신예 감독 3인방이 제작하여 2018년 9월 개봉한 영화 <봄이 가도>. 지난 4월 27일 군산 금강역사영화제 초대 작품인 이 영화를 관람하였고 관람 후 감독들과의 대화의 시간도 가졌었다. 세월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의 후기를 작성해 본다.

에피소드 1, 실종 3년 만에 돌아온 딸

첫 장면은 향을 피워 놓고 기도를 드리는 여인이 등장하고, 출장을 떠나는 남편은 이제 제발 그만 포기하라며 부인을 꾸짖고 밖으로 나선다.

수학여행을 떠난 딸은 3년째 실종 상태. 어머니(전미선 분)는 딸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녀가 택한 마지막 희망은 무속인을 통해 얻은 처방이다. 그는 실종 상태인 그녀 딸의 이름(향)처럼 매일 아침 향을 피워 놓고 치성을 올린다. 실종 3년째 되는 날에 그의 딸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모정은 비현실적인 무속인의 예언을 맹신하며 실종 3년째의 마지막 날에 이른다. 그리고, 마술처럼 그날 딸이 돌아온다.

하지만 무속인의 예언에 따라 딸과의 만남으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딸이 귀가해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3년간의 오랜 기다림이, 그 고통의 기다림이 그녀에게는 단 하루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절실한 하루였다. 모녀는 그 하루를 함께 보낸다.
 

▲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 시네마달


평상시처럼 웃고 이야기하며 출장을 간 남편에게 휴대폰으로 딸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짧은 시간을 보듬어 안아도 모자랄 그녀들이었지만, 딸이 졸리다면서 낮잠을 청하려 하자, 엄마는 무속인의 예언(딸이 잠들면 다시 사라질 것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라, 낮잠을 자려는 딸을 만류하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고 만다.

화가 난 딸은 밖으로 뛰쳐나가고, 그녀는 딸을 찾아 동네 변두리를 정신없이 찾아 헤매다, 어렸을 때부터 딸이 자주 찾던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있는 딸의 모습을 발견한다. 딸과 나란히 그네에 앉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졸리다는 딸을 재우고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단 하루 동안 주어진 시간 딸과의 이별을 마무리한다.

에피소드 2, 환청-환각에 시달리는 상원 

상원(유재명 분)이 보험사에서 의료비 보험금을 청구하는 장면으로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그는 사고 후유증과 그 트라우마로 오랜 기간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 오고 있으며,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다. 상원에게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와 사고 후 모든 삶이 무너진 그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아내가 있다.

상원은 그 사고 이후 수시로 환각과 환청이 따라오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처방받은 약에 의존해 그 사고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 몸부림친다. 그 기억이란 고통받는 기억의 실체는 조난당한 배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그 자신과, 딸 또래의 소녀가 바닷물에 잠겨가는 배 안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다. 아이는 물이 차오르는 객실 창문을 쉴새 없이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객실 밖에서 상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맨손으로 객실 창문을 부수기 위해 수없이 객실 창을 주먹으로 치는 일뿐이었다.

사고 후 상원은 운전대를 잡지 못하였다. 창과 유리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 물속으로 가라앉던 아이가 두드리던 손바닥이 떠올라 지문이 찍히는 환각과, 창을 두드리는 소리의 환청이 그를 끝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버스를 타고 가던 상원이 또 한 번 환각에 사로잡혀, 중도에 버스를 세우고 뛰쳐나와 구토를 하고, 우연히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발견한 딸은 쫓아가, 혼자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진 아버지에게 원망과 연민의 말들을 쏟아붓는다.

어느 날, 홀로 집에 들어온 상원에게 또다시 찾아온 환각. 그는 삶에 대한 모든 의지를 포기하고 면도기 날로 손목을 긋는다. 희미한 의식 속에 나타나 그를 안아주는, 조난당한 배에서 구하지 못한 그 소녀. 소녀는 모든 삶의 의지를 다 태워버려 재가된 상원을 끌어안고 위로한다. 장면이 바뀌며, 상원의 딸은 아빠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절규한다.

"아빠가 이렇게 힘든 줄 정말 몰랐어."

병실에서 의식을 찾은 상원, 그리고 그의 딸은 사고 당시 상원에게 구조된 다른 소년이, 상원에게 쓴 편지를 들고 와 그에게 읽어준다.

에피소드 3, 아내 레시피로 끓인 김치찌개 먹다 우는 남자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5월 어느 날 한적한 공원, 석호와 그의 아내는 애정 가득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한가로이 산책을 즐긴다.

"오빠 매미는 왜, 밤낮 없이 우는지 알아?"

아내가 석호에게 묻고, 짝을 찾기 위함이라는 현실적인 석호의 대답에, 아내는 매미가 밤낮없이 우는 이유가 밤낮없이 외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석호는 아내가 공원 산책 중에 한 말처럼, 밤낮없이 아내가 떠난 빈자리의 외로움으로 일상이 허물어져 갔다. 언제나 정갈했던 아내의 빈자리, 방 곳곳에 널브러진 맥주캔과 술병, 그녀가 해주던 정성 가득한 밥상 대신 냉장고 문에 도배된 배달 음식점 전단지들을 통해, 그가 살아내는 하루하루의 모습을 엿본다.
  

▲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냉장고 문을 열다가 빼곡히 붙여 놓은 음식점 전단지 사이로 살짝 드러난 메모. 그의 아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적어 두고 간 김치찌개 레시피다.

석호는 늘, 아내가 끓여주던 김치찌개 맛이 제일이라고 그의 아내를 추켜 세워주곤 했다. 석호는 아내에게 자신이 끓이면 왜 그런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면 아내에게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을 떠 올리며, 아내가 메모한 레시피대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정성들여 김치찌개를 끓인다.

밥 한공기 김치찌개 한 그릇이 전부인 밥상을 차려, 찌개 한술을 떠먹는다. 석호의 입가에 아내의 맛이 느껴진 듯 연한 미소가 번지더니, 그것도 잠시 꾸역꾸역 삼키던 외로움이 터져 나오고 정말 서러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 그리고 삶

영화, 특히 독립영화 한 편의 리뷰를 이런 장문으로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봄이 가도>는 영화적인 연출력도 뛰어났다. 또한 과장되지 않은 영화의 감정선이 오히려 더 오랜 슬픔으로 되새김질하게 됐다.

영화는 세월호 유가족을 모티브로 했다. 다만 그분들에 대한 헌정일 수도 있는 이 작품에서 세월호 사건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불현듯 닥칠 수 있는 준비되지 못한 이별과 그리움에 맞닥뜨렸을 때, 또는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일상이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담았다. <봄이 가도>는 비록 무겁지만, 작은 일상의 사소한 터치로 그런 삶의 부분을 그려낸 작품이다.

비록 무거운 주제로 세 편의 에피소드를 엮어내며, 세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부분에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희망이라는 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엔딩 크레디트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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