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하러 온 동생, 내 품에서 하늘나라로 보내"
[인터뷰] 고성·속초 산불 희생자 유족들 "어떻게 착한 사람들만 이렇게..."
지난 16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영랑동의 한 아파트.
"얼마나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였는데... 그 날도 위험하다고 애들이랑 나가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시뻘겋게 불 난 난리통에 누님 보러 가야 한다고 끝끝내 가더니... 이게 뭐예요, 이게... 흑흑흑..."
김아무개(48, 여)씨가 남편 고 김영갑(60, 남)씨의 영정사진을 문지르며 하염없이 울었다. 영정사진 아래엔 남편이 쓰던 낡은 전자시계와 오래된 폴더폰, 해진 지갑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영정사진은 사고가 나기 불과 며칠 전 남편이 찍어놓은 셀카를 합성해 만든 거라고 했다.
"이렇게 콱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애들도 아직 중학생인데... 사람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다른 거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흑흑..."
고인은 지난 4월 4일 강원 산불로 발생한 사망자 2명 중 한 명이다. 산불이 나던 당시 고성군 토성면에 홀로 거주하고 있던 누나 김아무개(68, 여)씨를 살펴보러 나갔던 고인은 불길에 휩싸여 질식사했다.
멈추지 않은 울음
- 어떻게 지냈나.
"그냥 이렇게 살아있어요. 벌써 한달... 아니 40일이 넘게 지났는데 안 울려고 해도 아직 눈물이 그냥 나요(눈물). 우리 딸이 중3이고 아들이 중1인데 애들이 아침에 학교 가면 저도 밖에 나가요. 혼자 집에 못 있으니까... 집에 있으면 애 아빠 생각이 너무 나서... 집이 이렇게 좁고 해도 애 아빠가 있을 땐 사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애 아빠가 없으니까 하루 하루가 너무 너무 힘들어요..."
방 3개가 옹기종기 붙은 17평 짜리 아파트 구석구석엔 남편의 흔적이 가득했다. 목공예 일을 했던 남편이 직접 만든 테이블, 남편이 누워있던 장판,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배우며 뒹굴거리던 방바닥, 그리고 햇볕 드는 책상 위에 올려둔 영정사진까지.
"애 아빠 생각 나서 힘들죠(눈물). 애 아빠만 믿고 중국에서 시집 왔는데... 중국에도, 한국에도, 그런 남자 또 없어요. 얼마나 착했다고. 그저 남 위해서, 자기 형제 위해서 다 쏟아붓고 자기는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산불 나던 날도 애들이 위험하다고 아빠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는데, 그쪽에 불 났다고... 우리 애 아빤 못 말려요. 애 아빠 누이가 나이도 있으시고 혼자 사시거든요..."
평소 홀로 사는 누나를 각별하게 챙기던 남편은 그 날도 누나 걱정에 집을 나섰다. 고인의 누나 김아무개(68)씨는 전화 통화에서 "불이 나서 놀라 내가 동생을 불렀는데 내 품에서 하늘나라로 보냈다"라며 "지금 내 심정이 어떻겠나,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흐느꼈다. "누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충격 받아서 얼마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었어요"라고 부인 김씨가 설명했다. 누나의 집은 그 날 다 탔다.
"한국에 온 지는 16년 됐는데 제가 한국을 잘 몰라요. 그저 애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녀서... 애 아빠가 알아서 다 해줬거든요. 애들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는 것도 애 아빠가 다 했고... 저는 그저 애 아빠가 목공예 공장 가면 애 업고 졸졸 따라가고, 애 아빠가 트럭 타고 배달 다니면 옆에 타서 전국을 다 따라가고... 그러고 살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가버리니... 애들이 아직 어린데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떻게 보낼지 눈앞이 캄캄해요(눈물)."
중국 연변 출신인 김씨는 목공예 사업으로 연변을 드나들던 고인을 만나 1년 남짓 연애한 뒤 16년 전 결혼해 한국에 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는 15년 됐다. 김씨는 지난 25일 정부로부터 장례비 1200만원과 구호금 1000만원, 그리고 국민 성금 1억원 등을 받았다. 김씨는 27일 전화통화에서 "이제라도 나왔으니 다행이죠... 고맙습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관련 기사 : 강원 산불 사망자 2명, 43일 지나도록 장례비도 못 받았다)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저것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애들이 기가 죽어서... 우리 딸은 그래도 컸다고 의젓하게 엄마 걱정도 하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덩치만 컸지 아직 마음은 애기거든요... 날 닮아서 겁도 많고 이제 막 사춘기라 아빠가 필요한데...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아직도 계속 불안한지 제가 집에 있는 걸 알면서도 '엄마 거기 있지?' '엄마 어디 안 가는 거지?' 자꾸 확인하더라고요.
그래도 장례식 때 그렇게 의젓하게 아빠 곁 지킨 걸 보면 너무 대단해. 너무 대견해요. 애가 뭘 알겠어요? 딸도 애 아빠를 너무너무 아끼고 좋아했으니까 속으론 충격이 더 클 거고요. 우리 애 아빠가 애들한테도 그렇게 잘했거든요. 말수도 적고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애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아빠였으니까..."
김씨는 아이들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김씨는 딸과의 약속이라며 모든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받을 까봐 안 된다는 거였다. 집에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뭐 하러 여기까지 오냐"며 냉담했던 그였지만 한 시간여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엔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물어봐주니 고맙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얘기할 데도 없어요. 내가 한국에 친척이 있길 하겠어요, 친구가 있길 하겠어요. 그저 마음 답답하면 애 아빠 납골당에 가서 얘기하는 게 전부인데... 주변에선 자꾸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가 버릇하면 마음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다고... 근데 보고 싶은 걸 어떡해. 우리 애 아빠 보고 싶은 걸 어떡해요...(눈물)"
어떤 질문에도 김씨 대답은 결국 남편 얘기로 이어졌다.
-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가.
"다 필요 없어요. 사람들은 돈 얘기도 하지만 우리 애 아빠는 그거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거든요? 우리 애 아빠는 돈 주고 못 사거든요? 그냥 우리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평생 일만 열심히 하고 가족들한테 베풀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우리 애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요..."
"어떻게 다 착한 사람들만..." 또 다른 사망자
이번 강원 산불의 또 다른 사망자는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의 고 박석전(71, 여)씨다. 공교롭게도 두 집안은 아는 사이였다. 김씨는 "우리 딸하고 그 할머니 손주하고 초등학교 동창이어서 그 집을 잘 알죠. 그 할머니도 참... 자신도 나이가 많은데 아흔 넘은 친정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있었거든요. 너무 너무 좋은 분이었어요. 사망자가 딱 둘인데 어떻게 다들 이렇게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만 그리 됐는지... 기가 막혀요"라고 했다.
지난 15일, 고인의 아들 안용순(47, 남)씨를 그가 일하는 고성의 한 카센터에서 만났다. 그가 15년 동안 일해왔다는 카센터도 이번 산불로 인해 모두 탔다.
"사장이랑 둘이서 오랫동안 일한 카센터인데... 너무 허무하죠... 앞길도 막막하고... 어머니도 갑자기 그렇게 가시고, 참..."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안씨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4월 4일 산불 안내 방송을 듣고 집을 나섰다가 강풍에 날아온 지붕을 맞고 사망한 고인은 사고 발생 당시 산불 피해 사망자로 집계됐다가 이튿날 다시 화재가 아닌 강풍에 의해 사망했다며 정부의 피해자 집계에서 빠진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언론을 통해 박씨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4월 11일 산불 피해자로 최종 포함됐다.
- 산불 피해자로 인정되는 것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실 처음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사촌 동생이나 조카들이 우리 어머니 너무 억울하다고,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해서 저도 문제 제기를 시작한 거죠... 그게 자식으로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도리인 것 같더라고요... 어머닌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제가 중2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진짜 악착 같이 농사짓고 버섯 따고 하면서 자식들 키우셨거든요. 자식들 출가하고 나선 지금 94세 되신 노모까지 혼자 모시고 사셨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직도 안 믿겨요..."
안씨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 40일이 넘게 지났다.
"생생하죠... 그 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어요. 저는 속초에 사는데, 그 날도 걱정이 돼서 저녁 6시쯤 고성에 있는 어머니 집에 갔어요. '엄마, 바람이 너무 심하니까 나오시면 안 된다'고 단도리 하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애들 챙기고 있었는데 테레비에 딱 불났다고 나오더라고요. 8시까진 엄마랑 통화가 됐어요. 근데 8시 반부턴가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걱정은 되는데 불이 너무 심해서 도로는 다 막혀있고... 급한 대로 동네에 아는 분들한테 우리 집 좀 가봐 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길가에 쓰러져 계셨다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어떻게든 동생이랑 차를 타고 가는데... 평소엔 20분이면 갈 곳을 밤 11시가 돼서야 도착했어요. 엄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죠... 산불 방송 듣고 나오셨다가 강풍에 날아다닌 지붕에 맞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도 계시니 더 불안하셨을 거고...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 얼굴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피가 막 나는데 그걸 보니까 마음이... 에휴..."
"오밤중에 온 남매가 엄마를 붙잡고 너무 슬프게 울더라", 어머니가 살았던 삼포리 주민들은 그 날 밤 도착한 안씨 남매의 울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평소 안씨 남매가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아오고 전동차를 사다 주는 등 효자 효녀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바라는 것
힘겹게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던 박씨의 가족들 역시 지난 23일 장례비와 국민 성금을 받았다.
"장례 치른 지도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네요... 발인을 4월 6일 했는데 그 날이 하필 또 어머니 생신이었어요. 세상 일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는지... 아이들도 할머니 보고 싶다고 다 울고... 어머니는 그전에도 산불 피해를 겪으셨었거든요. 1996년에 불났을 땐 우사가 타고 소도 한 네다섯 마리가 죽었고, 2000년도엔 우리 집 포함해서 동네 집이 많이 탔어요. 새로 집 짓고 힘들게 사셨는데 이번엔 결국 어머니가..."
어머니 생각이 힘에 겨운지 안씨가 이제 그만 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그는 주변의 다른 이재민들을 걱정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여기 농민들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빨리 산불 피해 본 거 해결해줘야죠... 시골에서 다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다들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얼마나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였는데... 그 날도 위험하다고 애들이랑 나가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시뻘겋게 불 난 난리통에 누님 보러 가야 한다고 끝끝내 가더니... 이게 뭐예요, 이게... 흑흑흑..."
"이렇게 콱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애들도 아직 중학생인데... 사람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다른 거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흑흑..."
고인은 지난 4월 4일 강원 산불로 발생한 사망자 2명 중 한 명이다. 산불이 나던 당시 고성군 토성면에 홀로 거주하고 있던 누나 김아무개(68, 여)씨를 살펴보러 나갔던 고인은 불길에 휩싸여 질식사했다.
멈추지 않은 울음
▲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 산불 사망자 2명 중 한 명인 고 김영갑(60)씨 부인 김아무개(48)씨를 16일 속초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 ⓒ 김성욱
- 어떻게 지냈나.
"그냥 이렇게 살아있어요. 벌써 한달... 아니 40일이 넘게 지났는데 안 울려고 해도 아직 눈물이 그냥 나요(눈물). 우리 딸이 중3이고 아들이 중1인데 애들이 아침에 학교 가면 저도 밖에 나가요. 혼자 집에 못 있으니까... 집에 있으면 애 아빠 생각이 너무 나서... 집이 이렇게 좁고 해도 애 아빠가 있을 땐 사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애 아빠가 없으니까 하루 하루가 너무 너무 힘들어요..."
방 3개가 옹기종기 붙은 17평 짜리 아파트 구석구석엔 남편의 흔적이 가득했다. 목공예 일을 했던 남편이 직접 만든 테이블, 남편이 누워있던 장판,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배우며 뒹굴거리던 방바닥, 그리고 햇볕 드는 책상 위에 올려둔 영정사진까지.
"애 아빠 생각 나서 힘들죠(눈물). 애 아빠만 믿고 중국에서 시집 왔는데... 중국에도, 한국에도, 그런 남자 또 없어요. 얼마나 착했다고. 그저 남 위해서, 자기 형제 위해서 다 쏟아붓고 자기는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산불 나던 날도 애들이 위험하다고 아빠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는데, 그쪽에 불 났다고... 우리 애 아빤 못 말려요. 애 아빠 누이가 나이도 있으시고 혼자 사시거든요..."
평소 홀로 사는 누나를 각별하게 챙기던 남편은 그 날도 누나 걱정에 집을 나섰다. 고인의 누나 김아무개(68)씨는 전화 통화에서 "불이 나서 놀라 내가 동생을 불렀는데 내 품에서 하늘나라로 보냈다"라며 "지금 내 심정이 어떻겠나,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흐느꼈다. "누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충격 받아서 얼마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었어요"라고 부인 김씨가 설명했다. 누나의 집은 그 날 다 탔다.
"한국에 온 지는 16년 됐는데 제가 한국을 잘 몰라요. 그저 애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녀서... 애 아빠가 알아서 다 해줬거든요. 애들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는 것도 애 아빠가 다 했고... 저는 그저 애 아빠가 목공예 공장 가면 애 업고 졸졸 따라가고, 애 아빠가 트럭 타고 배달 다니면 옆에 타서 전국을 다 따라가고... 그러고 살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가버리니... 애들이 아직 어린데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떻게 보낼지 눈앞이 캄캄해요(눈물)."
중국 연변 출신인 김씨는 목공예 사업으로 연변을 드나들던 고인을 만나 1년 남짓 연애한 뒤 16년 전 결혼해 한국에 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는 15년 됐다. 김씨는 지난 25일 정부로부터 장례비 1200만원과 구호금 1000만원, 그리고 국민 성금 1억원 등을 받았다. 김씨는 27일 전화통화에서 "이제라도 나왔으니 다행이죠... 고맙습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관련 기사 : 강원 산불 사망자 2명, 43일 지나도록 장례비도 못 받았다)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 지난 4월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야산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임야를 태우고 있다. ⓒ 이희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저것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애들이 기가 죽어서... 우리 딸은 그래도 컸다고 의젓하게 엄마 걱정도 하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덩치만 컸지 아직 마음은 애기거든요... 날 닮아서 겁도 많고 이제 막 사춘기라 아빠가 필요한데...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아직도 계속 불안한지 제가 집에 있는 걸 알면서도 '엄마 거기 있지?' '엄마 어디 안 가는 거지?' 자꾸 확인하더라고요.
그래도 장례식 때 그렇게 의젓하게 아빠 곁 지킨 걸 보면 너무 대단해. 너무 대견해요. 애가 뭘 알겠어요? 딸도 애 아빠를 너무너무 아끼고 좋아했으니까 속으론 충격이 더 클 거고요. 우리 애 아빠가 애들한테도 그렇게 잘했거든요. 말수도 적고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애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아빠였으니까..."
김씨는 아이들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김씨는 딸과의 약속이라며 모든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받을 까봐 안 된다는 거였다. 집에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뭐 하러 여기까지 오냐"며 냉담했던 그였지만 한 시간여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엔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물어봐주니 고맙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얘기할 데도 없어요. 내가 한국에 친척이 있길 하겠어요, 친구가 있길 하겠어요. 그저 마음 답답하면 애 아빠 납골당에 가서 얘기하는 게 전부인데... 주변에선 자꾸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가 버릇하면 마음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다고... 근데 보고 싶은 걸 어떡해. 우리 애 아빠 보고 싶은 걸 어떡해요...(눈물)"
어떤 질문에도 김씨 대답은 결국 남편 얘기로 이어졌다.
-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가.
"다 필요 없어요. 사람들은 돈 얘기도 하지만 우리 애 아빠는 그거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거든요? 우리 애 아빠는 돈 주고 못 사거든요? 그냥 우리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평생 일만 열심히 하고 가족들한테 베풀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우리 애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요..."
"어떻게 다 착한 사람들만..." 또 다른 사망자
▲ 지난 4월 4일 강원 산불로 사망한 고 박석전(71, 여)씨 아들 안용순(47)씨가 15일 그가 일하는 고성의 한 카센터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이번 강원 산불의 또 다른 사망자는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의 고 박석전(71, 여)씨다. 공교롭게도 두 집안은 아는 사이였다. 김씨는 "우리 딸하고 그 할머니 손주하고 초등학교 동창이어서 그 집을 잘 알죠. 그 할머니도 참... 자신도 나이가 많은데 아흔 넘은 친정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있었거든요. 너무 너무 좋은 분이었어요. 사망자가 딱 둘인데 어떻게 다들 이렇게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만 그리 됐는지... 기가 막혀요"라고 했다.
지난 15일, 고인의 아들 안용순(47, 남)씨를 그가 일하는 고성의 한 카센터에서 만났다. 그가 15년 동안 일해왔다는 카센터도 이번 산불로 인해 모두 탔다.
"사장이랑 둘이서 오랫동안 일한 카센터인데... 너무 허무하죠... 앞길도 막막하고... 어머니도 갑자기 그렇게 가시고, 참..."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안씨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4월 4일 산불 안내 방송을 듣고 집을 나섰다가 강풍에 날아온 지붕을 맞고 사망한 고인은 사고 발생 당시 산불 피해 사망자로 집계됐다가 이튿날 다시 화재가 아닌 강풍에 의해 사망했다며 정부의 피해자 집계에서 빠진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언론을 통해 박씨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4월 11일 산불 피해자로 최종 포함됐다.
- 산불 피해자로 인정되는 것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실 처음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사촌 동생이나 조카들이 우리 어머니 너무 억울하다고,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해서 저도 문제 제기를 시작한 거죠... 그게 자식으로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도리인 것 같더라고요... 어머닌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제가 중2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진짜 악착 같이 농사짓고 버섯 따고 하면서 자식들 키우셨거든요. 자식들 출가하고 나선 지금 94세 되신 노모까지 혼자 모시고 사셨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직도 안 믿겨요..."
안씨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 40일이 넘게 지났다.
"생생하죠... 그 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어요. 저는 속초에 사는데, 그 날도 걱정이 돼서 저녁 6시쯤 고성에 있는 어머니 집에 갔어요. '엄마, 바람이 너무 심하니까 나오시면 안 된다'고 단도리 하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애들 챙기고 있었는데 테레비에 딱 불났다고 나오더라고요. 8시까진 엄마랑 통화가 됐어요. 근데 8시 반부턴가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걱정은 되는데 불이 너무 심해서 도로는 다 막혀있고... 급한 대로 동네에 아는 분들한테 우리 집 좀 가봐 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길가에 쓰러져 계셨다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어떻게든 동생이랑 차를 타고 가는데... 평소엔 20분이면 갈 곳을 밤 11시가 돼서야 도착했어요. 엄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죠... 산불 방송 듣고 나오셨다가 강풍에 날아다닌 지붕에 맞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도 계시니 더 불안하셨을 거고...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 얼굴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피가 막 나는데 그걸 보니까 마음이... 에휴..."
"오밤중에 온 남매가 엄마를 붙잡고 너무 슬프게 울더라", 어머니가 살았던 삼포리 주민들은 그 날 밤 도착한 안씨 남매의 울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평소 안씨 남매가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아오고 전동차를 사다 주는 등 효자 효녀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바라는 것
▲ 그는 다른 이재민들을 걱정했다. ⓒ 김성욱
힘겹게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던 박씨의 가족들 역시 지난 23일 장례비와 국민 성금을 받았다.
"장례 치른 지도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네요... 발인을 4월 6일 했는데 그 날이 하필 또 어머니 생신이었어요. 세상 일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는지... 아이들도 할머니 보고 싶다고 다 울고... 어머니는 그전에도 산불 피해를 겪으셨었거든요. 1996년에 불났을 땐 우사가 타고 소도 한 네다섯 마리가 죽었고, 2000년도엔 우리 집 포함해서 동네 집이 많이 탔어요. 새로 집 짓고 힘들게 사셨는데 이번엔 결국 어머니가..."
어머니 생각이 힘에 겨운지 안씨가 이제 그만 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그는 주변의 다른 이재민들을 걱정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여기 농민들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빨리 산불 피해 본 거 해결해줘야죠... 시골에서 다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다들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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