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험 낙방, 서울에서 사회의식에 눈 트여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7회] 시험문제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것인데, 뉴스는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 2005년 8월 18일 'X-파일` 녹취록 내용 중 삼성으로부터 소위 '떡값'을 받았던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법사위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시험을 치기 며칠 전에 심한 감기에 걸려 독하게 지은 약의 후유증으로 체육 실기는 물론 필기시험 시간에 정신을 잃다시피 하여 시험을 망친 것이다. 학우들은 평소 노회찬이 자기는 경기고등학교에 갈 거라고 장담해서, 일부러 떨어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 중학교 입학시험 당시 수험표에 붙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어릴 적 사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얼굴은 지금과 달리 갸름하다.중학교 입학시험 당시 수험표에 붙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어릴 적 사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얼굴은 지금과 달리 갸름하다. ⓒ 노회찬 의원실
세상사는 가끔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수하여 부산고등학교에 가기도 쪽팔리는 일이고 하여, 부모는 아들이 서울에 가서 재수하는 데 동의하였다. 공부를 잘했던 누나가 경남중학을 졸업하고 경기여고를 지원할 때에는 한사코 반대했던 부모가 아들의 '감기약' 사건으로 서울행을 허락한 것이다.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거죠.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 아마 부산에 있었으면 이 길에 안 들어섰겠죠. 부산에 있었으면 반항심은 극대화되었을 거 같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이상한 길로 빠졌을 가능성도 매우 높아요. (주석 7)
▲ 노회찬의 신발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진보정당을 지켜낸 故 노회찬의원, 수년전 시청앞 천막농성장에서 무지개빛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 정기석
갈 데가 없고 혼자였으니까 책방에 많이 갔어요. 그때는 교보문고도 없을 때였고, 아, 광화문에 범우사가 있었고, 종로서적은 고1 때부터 갔고요. 학원이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를 많이 안 벗어났어요. 그때 알게 된 책이 『다리』라는 잡지였는데 그걸 매개로 해서 조금 조금씩 넓혀간 거예요. 그거 보니까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0월 유신, 10월 유신이 내가 재수할 때였어요.
너무 놀라서, 그때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국회해산은 안 된다. O냐 X냐, 이런 거. 국회 해산했다고 라디오에서 들리니까 집에 와서 책 찾아보고, 내가 알던 대로라면 국회해산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방송에선 방금 들었고, 그래서 국회로 갔죠.(주석 8)
노회찬이 재수를 하고 있던 1972년 10월 박정희가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한국식 총통제를 만들었다. 학원의 시험문제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것인데, 뉴스는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궁금해진 그는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가서 국회 앞에 탱크가 진주하고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된 실태를 직접 지켜보았다. 충격이었다.
6살 때 겪은 5ㆍ16쿠데타는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이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서 머리에 박힌 '대통령 박정희'는 조선시대의 왕(임금)처럼 인식되었는데, 17살 재수생의 눈에 비친 유신쿠데타는 실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접했던 『다리』,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그리고 얼마 전에 폐간된 『사상계』의 책갈피에서 읽은 지식으로 눈이 트인 것이다.
노회찬의 독서 범위는 날로 넓어졌다. 『서양철학사』를 탐독하고 이어서 각종 사상서를 읽었다. 학원 공부는 뒷전이고, 많은 교양서적을 탐독했다. 그런데도 매달 치른 시험은 1위를 유지하였다.
주석
6> 앞의 책, 42쪽.
7> 앞의 책, 43쪽.
8> 앞의 책, 4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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