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사 무한반복... 그때 생긴 취미가 업이 됐네요"
[인터뷰] 가죽공예 공방 '반다' 나옥연·조재영 작가
▲ 반다레더 스튜디오에서 나옥연 작가(왼쪽), 조재영 작가(오른쪽)/ 사진 제공 류봉열 ⓒ 김희정
내 책상 서랍 안에는 오래된 물건이 있다. 연갈색 가죽지갑이다. 친구한테 생일 선물로 받은 그 지갑은 유행이 지난데다 여기저기 헤지고 낡았다. 그럼에도 30년이 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지갑을 만지작거리면 오래전 친구하고의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은 추억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물이 한 사람 손에 들어와 또 다른 사람과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오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도 녹아있다. 그 가운데 가죽 제품이 제작되는 현장, '반다 레더 스튜디오'((BANDA leather studio. 아래 반다)를 찾아가 봤다.
반다는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에 위치한 가죽공예 공방이다. 가방, 지갑, 벨트는 물론, 휴대폰케이스, 파우치, 다이어리 등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죽작품을 만든다. 디자인하여 재단하고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하는 등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나옥연(58), 조재영(33)작가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7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두 작가는 7년째 협업하고 있다. 공방 이름 반다(BANDA)도 나옥연 작가의 블로그 아그리나(Agrina)와 조재영 작가 블로그 엉클비(Uncle B)에서 한글자씩 따온 합성어다. 초기에는 '비 앤 에이'라고 했는데 손님들이 '반다'라고 부르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방 이름이 됐다. 반다 로고 디자인은 사슴뿔이다. 귀족이나 왕을 상징한 사슴뿔에 착안하여 가죽의 왕관을 쓰자는 의미를 담아 두 작가가 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취미로 시작한 가죽공예가 지금에 이른 것도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분당에서 살던 나옥연 작가는 이십여 년 전 이천으로 이사 왔다. 자녀들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작가는 이천의 시골 정서와 흙냄새 풀냄새 나무냄새가 좋았다. 아울러 그녀의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시골 정서와 자연을 누리며 성장하기를 바랐다. 시골에서 생활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것에 역행한 셈이다. 나 작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취미로 다양한 것을 접했다. 그림카드, 도자기, 은공예, 지점토, 가죽공예 등을 배웠다.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죠. 근데 저는 여러 우물을 파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우물을 파보면 그 가운데 어떤 우물이 맛있는지, 좋은 우물인지, 자신한테 맞는 우물인지 분별할 수 있지요. 한 가지를 선택한 이후부터는 깊게 파면 되고요. 저는 가죽공예가 가장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어요. 제 적성에 맞았죠. 제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아 하다보니 힘든 줄 모르고 했고요. 밤늦도록 작업하는데도 재미있었어요. 즐거웠죠. 작품을 완성하여 선물로 드리면 받는 분들이 고급선물이라며 좋아하셔서 뿌듯했고요."
▲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반다레더 스튜디오에서는 가죽공예 작가들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하여 가죽 작품을 만들고 있다./사진 제공 류봉열 ⓒ 김희정
그녀가 가죽공예를 처음 배울 때는 이천에서 서울로 다녔다. 공방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이천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소요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죽공예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가죽은 물론 손바느질, 재봉틀 사용, 부자재까지 가죽공예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섭렵했다. 나 작가는 공예기술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이 늦도록 연습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전문적인 일을 찾아 열심히 사는 그녀를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녀 자신의 성장은 물론 그와 더불어 이천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가죽공예 기술을 나누고 싶은 꿈도 꿨다. 지방에서 가죽공예를 가르치면 그녀가 이천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고생한 길을 다음 세대는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였다. 우리나라에 가죽공예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당시 많은 전문 기술이 서울에 집중해 있었다.
소비자가 알아본 남다른 미적감각
십년 전, 나옥연 작가는 이천시 이천고등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가죽공예 공방을 열었다. 공방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찾아와 작품을 구입해갔다. 가죽공예도 배우러 왔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지망생이었던 그녀의 손재주와 미적 감각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공예 수업에 이어 가죽공예에 쏟은 열정과 수고의 시간, 어느 것 하나 헛되지 않았다. 수강생이 늘어나자 그녀는 예스파크(이천도자예술마을)로 공방을 이전했다.
"예스파크는 도예인은 물론 다양한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어요. 자연이 어우러진 쾌적한 환경에서 다른 분야의 작가와 소통하면서 배울 점이 많아요. 도전도 받고요. 다른 분야와 콜라보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요."
그녀는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가죽공예가 수강생들의 취미 생활에 그치지 않고 수입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올해 예스파크에서 개최한 이천도자기축제 때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수강생으로 인연을 맺어 작가가 된 동료의 작품 몇 개가 판매된 것이다. 반다에서는 평일 저녁과 토요일에 가죽공예 수업도 한다. 수강생은 가정주부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광주, 분당, 여주 등 여러 지역에서 온다.
▲ 반다레더 스튜디오에서/사진 제공 류봉열 ⓒ 김희정
"수강생 가운데 원대한 꿈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처음부터 멋지고 예쁜 작품을 만드리라는. 근데 무슨 일이든 그러하듯 처음부터잘 되는 일은 드물지요. 게다가 가죽공예는 험한 일이에요. 작품은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제 손은 바늘에 찔려서 상처투성이랍니다. 제작 의뢰 받으면 밤새워 일해야 하고요. 공들이는 시간과 수고, 인내심이 필요하죠. 생각대로 안 될 때는 좌절하다가 또 일어서는 연습을 계속 하고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단계에 와 있고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이 나오지요."
무료함에 시작한 취미, 업이되다
조재영 작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IT계열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부터인가 무료함을 느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반복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즈음 대학생 시절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가죽공예가 떠올랐다. 그는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오면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하여 가죽 제품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 작품을 완성하면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가죽공예에 필요한 새로운 도구를 구입하면 그 도구 사용법도 올렸다.
"블로그는 대학생 때부터 해왔던 터라 익숙했어요. 대학생 때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을 많이 했는데 그때 블로그 이용을 자주 했거든요. 작품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나중에는 제가 만든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고요. 가죽공예는 결과물이 눈에 띄고 사람들 반응을 빨리 알 수 있어서 좋았죠. 받으신 분들도 무척 흡족해 하셨고요. 그런데 가죽공예를 독학하다보니 한계를 느꼈어요.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나옥연 작가는 가죽공예를 같이 할 작가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옥연 작가와 조재영 작가는 만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조 작가는 직장을 그만뒀다. 본격적으로 가죽공예를 시작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다.
▲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반다레더 스튜디오에서/사진 제공 류봉열 ⓒ 김희정
"부모님은 처음에 걱정하셨지만 나중엔 믿어주셨어요. 직장은 수입 면에서 안정적인데 IT계열 회사는 직업 수명이 길지 않아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언제 그만두게 될 지 알 수 없거든요. 이 일 역시 제가 시작할 당시에는 수입 면에서 어렵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었죠. 근데 새로운 일을 하려면 좀 더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 게 더 낫겠다 싶었어요. 가죽공예는 정년이 없는 장점도 있고요."
스물다섯 나이 차이, 세대 차이. 7년 간의 협업에 어려움도 있었을 터, 하지만 두 작가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조재영 작가는 저희 큰 아들과 동갑이에요. 만약 우리 나이가 비슷했으면 의견 충돌이 컸을 거예요. 근데 나이 차이가 있다보니 서로 부족한 면이 있어도 배려하고 양보하고 서로의 취약한 점을 채워주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함께 성장하는 것 같고요. 조 작가는 작품 실력은 물론 도구나 컴퓨터 다루는 능력 등이 탁월해요.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을 하는 등 새로운 일에 진취적이죠. 큰 행사가 끝나면 공방 작가들과 가죽공예 여행도 한답니다. 가죽공예로 유명한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놀란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 손재주가 정말 뛰어나다는 거예요."
나옥연, 조재영 작가는 놀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작품 구상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홍보와 판매망을 넓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소비자의 취향과 반응을 살펴 작품에 적용한다. 또 가죽은 물론 지퍼, 장식품 등 부자재까지 정성을 기울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오는데 누군가는 두 작가의 정성이 깃든 작품을 일상에서 사용할 테고 어느 한 사람의 역사 혹은 추억과 함께 하는 물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반다를 다시 찾았다. 여전히 늦은 밤까지 공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두 작가는 재단한 가죽에 바느질을 하고 접착제를 바르고 있었다.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가죽공예의 명품 브랜드를 꿈꾸며 더 넓은 세계 시장(아마존 쇼핑몰 등)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는 현장에 있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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