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에서 출발해 따듯함에서 멈추다, '더 픽션'
[리뷰] 뮤지컬 <더 픽션>
▲ 뮤지컬 <더 픽션> 포스터 ⓒ HJ컬쳐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살인마 블랙. 어둠 속에 숨은 살인마를 다룬 소설 속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HJ컬쳐의 뮤지컬 <더 픽션>은 이러한 큰 줄기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7년 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지원작으로 첫공연을 올린 후 2018년 첫 서울 장기공연에 이어 2019년 공연으로 대학로에 입성했다.
▲ 뮤지컬 <더 픽션> 공연 사진 ⓒ HJ컬쳐
하지만 이 뮤지컬은 앞서 언급한 시놉시스와 별개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사실 살인사건은 극의 설정에 가까우며 <더 픽션>은 관객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레이(grey)와 와이트(white), 소설 속 살인마 블랙(black)을 두고 벌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와도 같다. 생명의 무게를 놓고 생기는 대립은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주제다. <더 픽션>은 이것을 누군가에게는 숫자로, 통계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점으로 풀어낸다.
극 중반에 이르러 미스터리 플롯은 금세 해소되지만 <더 픽션>의 장점은 거기에서부터 발휘된다. 플롯이 아닌 인물의 심리를 관객에게 투영시키기 때문에 극의 개연성보다도 더 강한 전달력을 지닌다. <더 픽션> 속 이야기를 따라가면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이야기로 남길 원한다'는 작품 속 대사처럼 관객들 역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을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다.
▲ 뮤지컬 <더 픽션> 공연사진 ⓒ HJ컬쳐
또 뮤지컬 <더 픽션>은 또 단순히 극의 내용 외에도 관객친화적인 면이 돋보인다. 살인 등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에서 자극적인 묘사 등이 우려됐던 것과 달리 <더 픽션>은 손쉽게 호기심을 끌 수 있는 그런 묘사를 최대한 배제했다.
총기 사용도 무대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등 관객의 편안한 관람을 유도한 <더 픽션>은 극단 '섬으로 간 나비'에서 공연했던 <무인도 이야기>, <히킥고모리>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윤상원 연출, 관객 분석과 피드백에 능한 HJ컬쳐가 합작해낸 것이 아닐까.
물론 <더 픽션>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7년 DIMF 창작지원작에 선정된 당시해도 정말 미스터리, 스릴러 쪽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4년여의 시간을 들이며 꾸준히 개발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틀고, 완성도를 높여가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1회성 지원, 초연 후 관리를 돕지 않는 현재의 많은 뮤지컬 제작 시스템이 본받아야 할 모습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