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입고 출근한 남자 선생님, '페미니즘'을 말하다
[인터뷰]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이우혁 교사
▲ 이우혁 교사가 일상에서 치마를 입은 사진이다. ⓒ 이우혁
치마를 입고 출근했던 선생님이 있다. 출근 첫째 날엔 교감 선생님에게, 둘째 날은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강원도 원주시 D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우혁 교사의 일화다.
그는 남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강원지부 여성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오늘의 여성대상 범죄'에서 목요일 게시자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삶은 교육한 바와 일치해야
- 치마를 입고 출근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8년 겨울에 치마를 입고 출근했습니다. 여자와 남자라는 이분법 구조로 한 개인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며, 성 역할은 사회가 만드는 것입니다. 2년 동안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말만 한 것 같았죠. 그래서 말과 교육이 일치한 삶을 살고자, 치마를 입고 등교했습니다. 교사의 삶은 교사 마음이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삶은 교육과 일치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주변 반응은 어땠습니까.
"두 번 입고 출근했습니다. 첫째 날은 교감 선생님에게 불려갔고, 둘째 날은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갔어요. 둘째 날부턴 다른 선생님들도 안 좋게 보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로 치마를 입고 출근하진 않습니다. 옷을 입는 자유, '인권'이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 같아 좌절하기도 했어요"
-학생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창피하지 않냐고 묻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친구를 보고 '남자는 치마 입으면 안 되냐?'라고 반문하는 학생도 있었어요. '립스틱 발라 보세요, 머리도 길러 보세요' 하는 친구들도 기억에 남아요. 반은 왔고 반은 멀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학생들에게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라는 편견이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었어요."
-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부끄럽지만 과거 저는 여성 혐오를 모른 척하는 사람이었어요. '의도적인 무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동안 당연하게 해온 이야기들이 제 애인이나 가족이 듣는 말이면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아요.
주변에 굉장히 정의로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어느 날부터 여성 관련 주제만 나오면 다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2017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공부했죠. 세상이 평등하다고 배워왔는데, 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학생들에겐 페미니즘 교육자가 필요해
▲ 수업하는 이우혁 선생님 ⓒ 이우혁
- 페미니즘 수업은 왜 필요한가요.
"학생들은 무엇이든 흡수가 빠릅니다.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유튜브에선 성별 갈등을 일으키는 혐오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그걸 그대로 흡수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겐 교육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를 망치는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버리니까요."
- 페미니즘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요. 제가 가르친 학생들만큼은 스스로에 대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사회가 규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들은 일 대신 가사를 선택할 수 있고, 여자아이들은 가사 대신 일을 선택할 수 있어야죠. 그건 사회가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해야 해요. 학생들이 고정관념에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 교육 후 변화가 있나요.
"학생들이 성별의 차이를 개인의 차이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애들이요, 여자애들이요" 이런 표현조차 안 쓰려고 해요. 또 학생들이 어떤 관습에 대해 먼저 반응을 보입니다. 왜 결혼식에서 아버지가 신부 손을 신랑에게 전해주는지, 학부모 공개수업에 왜 엄마만 오는지 등 제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묻곤 해요."
- 한겨레21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10대 남학생 비율이 82%나 됩니다. 수업이 싫다는 학생은 없었나요.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남자만 나쁘게 말하는 것 같아서 공격받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네 안의 관념처럼 새긴 남성성을 너무 인식해서 불편한 것이다. 남자로서 느끼는 억압에서 벗어나 너 자신으로 살아가면 된다'라고 말했어요. 설득될까, 자신이 없었는데 그 학생도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 1년 동안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부정적인 일보단 긍정적인 일이 더 많아요. 한 학생은 '우리 반에선 나를 인격체로 존중해 준다'라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이 눈물을 보였는데 저도 따라 많이 울었어요."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는 말, 채찍으로 받아들였으면
- 페미니즘을 실천한 이후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놈'이 돼 있었어요. 그런 소문이 났더라고요. '여자를 좋아해서 관심받으려고, 이상한 거에 빠졌다' 직접 그 친구들을 만나서 오해를 풀었어요."
-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남성 페미니스트는 스스로 여성이 주류인 사회에 들어간 사람이에요. 저는 이것을 '소수자를 자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처했기에 언제든 여기서 나와 다시 남성연대로 들어갈 수도 있고, 어디든 소속되지 않을 수도 있죠. 저는 소수자임을 자처했다는 생각에 '그래봤자 한남',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는 말에 권력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렇지만 제가 여성주의자가 된다고 해서 월경, 임신, 출산의 불편함과 고통을 알게 된다거나 모임에서 사물로 비유된다거나, 유리천장과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되거나, 누군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공포에 떨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페미니스트가 된다 해도 기득권은 여전히 남성에게 있어요.
그래서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성평등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남성이 젠더감수성을 공부하고 지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할 거면 피해 끼치지 말고 제대로 해라'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페미니스트로서 겪는 고충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끄러움과 고립감입니다. 먼저 활동을 하면 할수록 부끄럽습니다. 저는 남성연대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여성 혐오들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인가' 되묻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그런 행동을 해왔으니까. 제 과거를 숨기며 활동하는 게 비겁하다고 느껴지는데, 과거를 드러내자니 여성분들이 받았던 피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2차 가해행위가 될까 두렵습니다.
또 어쩔 수 없이 고립감을 느낍니다. 제가 남성이기 때문에 불편해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안에서 소속될 수 있을까?' 하는 고립감이 들곤 해요. 그런데 소속감을 가질 수 없는 점에 대해서 누구를 탓할 순 없어요. 저는 마음만 먹으면 남성연대로 돌아갈 수 있는 권력이 있잖아요. 외로움은 제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 일상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나.
"여러 번 입었죠. 출근할 때보다 더 많이 입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남자 옷을 입고 있을 땐 당하지 않는 성추행을 당했고 모욕적인 시선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치마를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 신체가 허용된 느낌이었습니다.
치마엔 두 가지 차별이 존재합니다. 치마 입은 남성을 비웃는 건 남성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에요. 또 '치마는 여자나 입는 거지'라고 내뱉는 건 여성 혐오적 시각을 가진 것이고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 많아요. 남자도 살기 힘드니, 여성들의 입을 막았으면 하는 거죠. 그러나 모두가 불행한 건 진짜 평등한 게 아닙니다. 남성이 힘든 것도 성별 이분법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기서 해방될 자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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