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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를 사랑한, 여성 둘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등록|2019.06.03 18:50 수정|2020.10.21 17:02

▲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포스터. ⓒ 넷플릭스


시어도어 로버트 번디는 일명 '테드 번디'로 알려진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마다. 그는 요즘 말로 '엄친아'에 해당하는 인물로, 잘생긴 외모와 똑똑한 머리와 화려한 언변과 출중한 매너를 갖췄다. 그야말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겉모습을 자랑했다.

그러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똑똑한 법대생이었음에도 학업성취도가 그에 맞게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삐뚤어진 자부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만 했다. 그의 영혼은 매력 있는 외면으로 철저히 감춰야 했던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테드 번디는 6개 주에서 젊은 여성 30명을 넘게 살해했는데, 항간에는 피해자가 세 자릿수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 대부분이 그가 워싱턴대학교에 편입하여 사귄 첫사랑 다이앤과 막연하게 닮았다고 하는데, 그녀와의 실연이 준 상처가 범행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결국 잡혀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는데, 집행 연기를 시도하는 일환으로 <뉴스위크> 기자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독점 출판하려 한다. 이 내용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를 통해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다큐를 연출한 조 벌링거 감독은 테디 번디를 주제로 한 영화도 연출했는데, 그것이 바로 넷플릭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이다.

살인용의자와 사랑에 빠진 싱글맘

싱글맘 엘리자베스 리즈 클로퍼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테드 번디와 사랑에 빠진다. 테드는 그녀가 싱글맘인 걸 알고 나서도 개의치 않는다. 그는 젠틀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리즈와 그녀의 아이를 대한다. 리즈는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고 그를 대한다.

하지만 그들의 평화로운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테드의 이름과 얼굴과 행각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오기 시작했고, 테드는 결국 납치와 살인 혐의로 체포돼 재판정에 선다. 그는 당연히 일체의 혐의를 부정한다.

재판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자 테드는 탈옥을 시도해 성공하기도 한다. 곧 잡혀서 혐의만 늘어나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테드는 언제나 리즈를 찾는다. 워싱턴주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 연쇄살인은 유타주, 콜로라도주, 플로리다주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은 모두 테드와 연관돼 있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이들이 테드에게 연쇄살인 혐의를 입혀도, 리즈는 테드 본인과 함께 그의 무죄를 믿고 또 주장한다. '사랑'은 정녕 위대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은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것인가.

왜 테드 번디를 믿고 사랑했는가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테드 번디'라는 인물로 사회와 개인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행한 조 벌링거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주지했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로 197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았고, 이 작품으로는 개인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테드 번디와 관련된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책 할 것 없이 그동안 많이 나왔다. 물론 대부분 테드 번디의 살인 행각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이 영화는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와 동거를 했던 리즈와 테드와 결혼하고 딸도 낳았던 캐롤 앤 분이 그들이다.

영화는 '테드 번디는 왜 젊은 여성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가'가 아닌 '리즈와 분은 왜 테드 번디를 믿었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인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하이웨이맨>이 연상된다. 1930년대 미국의 연쇄 살인마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은 텍사스 레인저스 출신 해머와 골트 이야기.

<하이웨이맨>이 해머와 골트를 보니와 클라이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격상(?)시켜 나름의 의미를 도출해내려 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의 리즈와 분은 테드 번디의 아성(?)을 넘기는커녕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한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그려질 뿐 그녀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테드 번디의 여인들 아닌, 테드 번디에 대해서  

테드의 무죄를 믿었다가 점차 그 믿음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걸 알게 되면서 그만큼 힘들어 하는 리즈나, 그런 테드와 리즈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테드의 무죄를 굳건히 믿으며 재판을 받는 도중 결혼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 분 모두 명백한 피해자이다. 테드 번디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지배 당하고 빼앗긴.

그런 면모를 보다 부각시켰으면 다채롭고 다층적이었을 텐데, 막상 영화는 살인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았을 뿐 테드를 중심에 두었다. 특히, 테드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재판 과정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원작이 다름 아닌 실제 인물 리즈가 쓴 전기임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테드 번디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전해주려 한 조 벌링거 감독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기름기 하나 없는 닭 가슴살이 연상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논쟁의 소지도 없다 하겠다. 영화에 어떤 주관적인 해석이나 사실 아닌 진실에 대한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재미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쉬울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마도 눈에 익은 스타들이 화면을 채워주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 덕분에 자연스레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감정이입에 도움을 준다.

결코 킬링타임용이라고 할 순 없고 소장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4부작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와 세트로 보길 권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중 한 명인 테드 번디에 대해 안팎으로 속속들이 알게될 것이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그 정도에 의미를 두는 게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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