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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가 '잠재적 범죄자' 만든다? 무슨 소리인가

[주장] 수술실CCTV설치법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 그 모순점들

등록|2019.06.05 08:13 수정|2019.06.05 08:13

▲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이슈가 됐다. ⓒ 오마이뉴스/pexels


한동안 잠잠했던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5월 14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동대문구갑)이 수술실 CCTV 설치·운영과 촬영한 영상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공동 발의자 10명 중 5명이 하루 만에 변심해 법안이 폐기되는 수난을 당했다. 당황한 안규백 의원은 법안 폐기 6일 만에(5월 21일) 공동발의자 15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대표발의했다. 
 

국회에서 '롤러코스터 입법'이 연출된 것이다. 5월 28일에는 수술실CCTV설치법 개정운동(일명 권대희법)을 촉발시킨 (故)권대희 군 유가족이 의료진 3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의료과실 80%에 해당하는 4억3000여만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선고했다. 
 

수술실CCTV 국회토론회국회의원 20명이 공동 주최하고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주관한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 주제의 국회토론회가 2019년 5월 3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 안기종


5월 31일에는 국회의원 20명이 공동 주최하고 현재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공공병원에서 수술실 CCTV를 설치·운영 중인 경기도(도지사 이재명)가 주관한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라는 국회 토론회까지 열렸다. 특히, 이번 국회토론회에는 대한의사협회도 참석했다. 지금까지 수술실 CCTV 설치 논의에 반대 목소리만 내고 사회적 공론화 자리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전 모습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민의(民意)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일부 의사와 의사단체의 회유와 압박에 굴복해 하룻밤 새 발의를 철회해 법안을 폐기시킨 '입법 테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최동익 전 의원이 처음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대표발의한 후 의료계의 반발과 법안 폐기과정을 고려하면 의료계의 조직적이고 강력한 반발이 예측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규백 의원이 법안 발의 최소기준인 국회의원 10명의 서명만 받아 발의했다. 처음부터 벼랑 끝에 선 위태로운 입법이었다. 1명만 발의를 철회해도 폐기되는 법안인데 하룻밤 사이 공동발의자 10명 중 5명이 발의를 철회했다.

 

법안 주인이 바뀐 의안번호 2023437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2019년 5월 14일 대표 발의해 국회사무처에서 ‘의안번호 2020437’로 발급받은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은 하룻밤 새 공동발의자 10명 중 5명이 발의를 철회해 폐기되었다. 그래서 ‘의안번호 2023437’은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에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으로 바뀌게 되었다. ⓒ 안기종


철회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의원과 상관 없이 보좌관이 서명했다" "전문지식이 없어서 검토가 필요해 철회했다" 등의 해명을 내놨다.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법안 발의를 철회한 국회의원들에 대해 기자회견을 개최해 규탄했지만, 계속적으로 비난하지 않았고 비난할 수도 없었다. 철회 국회의원들이 헌법상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법안 발의에 아예 서명조차 하지 않았거나 법안 발의 자체를 반대한 다른 국회의원보다는 법안에 관심을 가져준 측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국회의원의 입법권 행사에 있어서 의사 권력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전 국민들에게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의료계의 압박이 무서워 재발의 법안에 서명할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듯 폐기된 법안보다 5명이 더 많은 15명이 안규백 의원의 수술실 CCTV 설치법에 재발의에 서명했다. 되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


수술실 CCTV 설치법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주장은 타당한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가 내놓는 '수술실 CCTV 설치법' 반대 이유는 다양하다. 이를 압축·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뜨린다. 둘째, 의료분쟁 증거로 사용될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할 것이다. 셋째,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촬영 영상 유출로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단체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먼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뜨린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으려면 전국에 CCTV가 설치된 장소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고 감시당한다'고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범죄 예방이나 인권 보호를 위해 용인하고 있다. 어린이집 CCTV 설치 논쟁 때도 보육교사들이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국 어린이 안전과 인권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수용했다.

다음으로 의료분쟁 증거로 사용될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할 것이라는 주장은 의료법에 신설돼 2016년 12월 2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수술 설명의무'와 '수술동의서 작성의무' 관련 내용을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오해다.

의료법에는 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을 하는 경우, '진단명, 수술의 필요성·방법·내용, 수술의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만일 여기에 수술실 CCTV 영상까지 있다면 고위험 수술 후 환자가 의료사고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신속한 확인을 통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수술실 CCTV는 오히려 고위험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들이 불필요한 의료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술실CCTV설치법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작년 11월 22일부터 올해 4월 18일까지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과 수술실 안전·인권 보호를 위해 수술실에 CCTV를 설치·운영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발의해 달라며 국회 앞에서 100일 동안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했다. ⓒ 안기종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촬영 영상 유출로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의료현장에서 의사나 직원들이 의료기관 내 CCTV 영상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보호하는지 양심 고백을 하거나 내부 제보를 한 것과 다름없다.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노출은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 응급실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게다가 촬영 영상의 유출 우려는 응급실에서도 동일하다. 그런데도 최근 의료계는 응급실 CCTV 설치 확대와 그 비용까지 국가에서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한 CCTV 설치가 응급실에서는 허용되지만 수술실에는 안 된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이유는 모든 범죄행위와 인권침해를 100% 예방하거나 사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자격자가 불법수술을 하거나 의료진들이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의 핵심은 설치가 아닌 '촬영 영상 보호' 


수술실 CCTV 설치의 범죄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최근 의료기관에서도 의료인 보호를 위해 모든 응급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백화점·음식점·영화관·횡단보도뿐만 아니라 도로 곳곳마다 범죄 예방을 위한 CCTV 수가 늘고 있다. 'CCTV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술실 CCTV 설치는 필연적으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따른다. 그렇다면 CCTV로 촬영된 영상 유출로 인한 의사나 환자의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가 수술실 CCTV 설치법의 핵심이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규정된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운영에 관한 엄격한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면서 의료법에 더욱 엄격한 관리·보호 규정을 신설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의사나 직원들이 어렵지 않게 촬영된 CCTV 영상을 볼 수 있다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 의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의 반대 근거로 영상 유출로 인한 환자의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술실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은 현재와 같이 의료기관의 의사나 직원들이 임의로 볼 수 있도록 해선 안 된다. 수사·재판·조정·중재 등과 같이 의료법에 규정된 일정한 목적으로만 열람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해야 하고, 그 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중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수술실CCTV설치법,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가 아니라 전 세계 최초로 만들자
 
 

수술실CCTV설치법 법제화 운동의료계에서 수술실CCTV설치법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 우리나라 수술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환자 인권이 보호되는 수술실로 평가받도록 하는 해야 한다. ⓒ 안기종


의료계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를 법률로 강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수술실에 CCTV 설치·운영을 위한 입법 활동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그때마다 미국의사협회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됐다.

그런데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무자격자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료사고의 입증 필요성 때문에 논란이 됐다. 만일 우리나라에서처럼 무자격자 대리수술, 유령수술, 수술실에서의 성폭행·성추행·생일파티·인증사진 촬영·집도의사 무단이탈·의료사고 조직적 은폐 등의 범죄행위와 인권침해 때문에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이슈가 됐다면, 미국의사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법화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술실에서의 환자 안전과 인권 침해 상황이 심각하고 의사 면허의 권위를 추락시켜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을 가중시킨다.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 우리나라 수술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환자 인권이 보호되는 수술실로 평가받도록 하자'는 역발상(逆發想)을 하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안기종 시민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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