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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이유로 도망가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함께 보고싶은 그림책] '가부와 메이 이야기' 시리즈가 담아낸 유대감과 적대감

등록|2019.06.28 08:21 수정|2019.06.28 09:38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그림책으로 <폭풍우 치는 밤에> <나들이> <살랑살랑 고개의 약속> <염소 사냥> <다북쑥 언덕의 위험> <안녕, 가부> <보름달 뜨는 밤에> 총 7권으로 구성됐다.

'폭풍우 치는 밤에' 우연히 만난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만큼이나, 우리가 생각해볼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가부와 메이가 맺는 둘의 관계와 가부와 메이를 둘러싼 주변의 관계들은 개인적인 관계나 사회적인 관계가 발생 혹은 유지될 때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떠오르게 한다.

둘 이상의 관계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주는 이점만큼이나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를 가져온다. 이 문제는 정답도 없을 뿐더러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 또한 편치 않다.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처럼 사회적으로 쉽게 수용되지 못하는 관계일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환영받지 못하는 관계를 그리는 '가부와 메이 이야기' 전 편에 흐르는 두드러진 정서는 꿋꿋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가부와 메이의 유대감과 둘의 관계를 향한 '적대감'이다. 관계를 맺으며 유대감과 적대감이 형성되는 과정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가부와 메이 이야기>> 전권 표지<<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아이세움


우리가 누군가에게 정서적인 공감대를 느낄 때 수반되는 것은 동질감이다. 상대가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상대는 '내 편'이 된다. 가부와 메이는 비슷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누고, 똑같이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 한다는 걸 확인하며 친해진다.

처음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한 가부와 메이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타인'을 발견한다. 그러나, 다름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가부와 메이의 유대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가부와 메이를 향한 시선들은 두 존재가 맺는 관계의 특이성, '다름'에 집중한다. 통상적으로 맺어지지 않았던 관계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싸늘하다. 숲 전체의 동물들이 이상스럽게 바라볼 뿐 아니라 가부나 메이와 가까웠던 무리들까지도 둘의 관계에 냉혹하다. 가부와 메이의 주변은 이질적인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이러한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솔직하게 조망한다. 그림책을 보노라면 고군분투하는 가부와 메이의 끈끈하고 고달픈 유대를 향한 연민이 용솟음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들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무리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부와 메이가 특별히 착해서 유대를 맺는 것이 아니듯, 주변의 무리가 특별히 나빠서 둘을 적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부가 '폭풍우 치는 밤에'에 다른 염소 타푸를 만났다면 메이는 가부를 적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 도망치는 가부와 메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을 적대하는 공격적인 타인이 될 수도 있다. 배척당하는 주인공의 스토리는 연민을 자아내지만 배척하는 주변인들은 악한이라기 보다는 그저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보통의 누군가이다.

두려움 속에서 다른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혐오'라는 정서가,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그림책은 보름달을 함께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가부와 메이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행복은 해치려는 무리로부터 도망친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 해피엔딩은 역경을 이겨낸 존재에 대한 감동과 세상과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인지 되묻는 슬픔을 동반한다.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처럼 너무나 다른 우리들은 가부와 메이처럼, 한편 너무나 비슷하기도 하다. 무조건 적대하는 혐오라는 정서 자체가 사라지긴 어렵겠지만, '다름'에 대한 태도를 좀더 유연하게 바꿔 나갈 수는 있다. 최소한 우리는 적대감과 유대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들의 유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특수한 관계나 존재에 선을 그으며 적대감을 분출할 권리가 없다. 그들의 관계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호의를 표하거나 친분을 맺지 않아도 된다.

다만, 부러 냉대하지 않는 것이 조금더 성숙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어주기는 할 것이다. 다르다 하여 배척하는 것은 존엄한 존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보통과 다른 선택도 존중받는 사회는 조금 더 평화로울 수 있다.

혹자는 둘의 관계가 자유이듯 배척하는 것도 자유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적개심을 드러내며 공격하는 것은 타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는 보장될 수 없다.

가부와 메이의 무리는 늑대와 염소가 친해질 경우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 한다. 그러나, 변화의 결과에 대한 예상은 예상일 뿐이다. 부정적인 결말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가 세력이 약한 소수를 향한 공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증오와 그에 따른 공격은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해 부정적으로 예상했던 상황을 실제로 현실화하거나 강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변화가 가져올 다양한 상황들을 예상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 상황들에 맞는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유연해질 수 있다. 안 된다며 거부하고 집단적으로 배척하기 이전에, 어떤 방향으로 수용하고 허용할 것인지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부와 메이가 도망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해도 집단적으로 해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보름달을 바라보는 가부와 메이와 함께 그려본다.
 
쑥 떠오른 보름달에 둘의 그림자가 겹쳤습니다. 달 속에 비친 두 그림자는 염소도 늑대도 아닌, 두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 가부와 메이 이야기 일곱 <보름달 뜨는 밤에> 중에서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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