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로 시진핑 가슴 후벼 판 트럼프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하나의 중국' 원칙 균열 낸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보고서'
▲ 미국 국방부가 6월 1일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 미국 국방부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중국이 '희토류(희귀 금속원소 17개) 수출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미국 산업을 압박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一个中国) 원칙 깨트리기' 카드로 맞대응하면서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시각으로 6월 1일, 미 국방부는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port)를 발행했다. 여기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표현이 사용됐다. 그간 미국이 '중국의 일부'로 간주했던 타이완(대만)이 국가로 인정된 것이다.
▲ 본문에 인용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의 일부. ⓒ 미국 국방부
지난 1월 28일 하얀 콧수염이 인상적인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은 붉은색, 타이완은 하얀색으로 표기된 세계 지도 앞에 서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중국과 타이완을 별개의 국가로 취급하겠다는 암시였다. 그러더니 6월 1일에는 국방부 보고서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암시가 나타난 것이다.
1949년 건국 이래 중국은 '중국 전체는 하나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전 중국을 합법적으로 대표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변함 없는 대원칙이 돼왔다. 그런 대원칙을, 미국이 타이완을 국가(country)로 표기함으로써 무시해버린 것이다.
중국의 원칙, '하나의 중국'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는 국가와는 일절 수교하지 않았다. 타이완과 국교를 체결한 나라와는 절대로 수교를 맺지 않았다. 1992년 한중수교도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 단절을 전제로 이뤄졌다.
이제까지 그 원칙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었으니, 미국이 보고서 발간에 그치지 않고 정말로 타이완과 수교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 단절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으니, 미국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중국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 이 원칙에 목숨을 걸어온 중국 입장에서는 이번 보고서 발간이 가슴을 후벼 파는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을 법하다.
미국의 행동을 방치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모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그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희토류 수출 금지로 미국 산업이 입을 고통 못지않은 것을 중국도 겪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1979년 미중 수교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상하이 공동성명 채택으로 조만간 성사될 것 같았던 양국 관계정상화가 1979년에 가서야 마무리된 원인도 거기에 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에 하차하는 바람에 지연된 측면도 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에 관한 입장 차이도 국교 체결을 지연시키는 중대 원인이 됐다.
중국은 미국이 이 원칙을 따라줄 것을 요구했다. 타이완과의 국교도 단절하고 동맹관계도 파기하고 미군도 철수시킬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소련의 팽창 정책이 가속화되자, 중국과의 공동 대응 필요성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서둘러 인정하고 수교를 마무리했다.
1960년대 중후반만 해도 중국은 핵개발 문제 때문에 미국의 압박을 받았다. 경제제재는 물론이고 미국·소련·영국의 외교적 압박까지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 때는 미국이 전쟁을 검토하는 일까지 있었다. <미국사연구> 제33권에 실린 김정배의 '케네디 행정부의 중국 정책 그리고 냉전체제'는 케네디 대통령이 "(중국) 핵시설에 대한 예방적 혹은 선제 타격"을 검토했다고 전한다.
그처럼 중국을 압박했던 미국은 베트남전 문제로 곤란에 빠지자 중국의 핵 보유를 공인해주고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1971년에는 타이완을 몰아내고 중국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제재와 압박을 받아온 중국한테는 뜻밖의 대반전이었다. 오랫동안 목 말랐던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생수병'을 건네받는 것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중국은 '생수병'을 덥석 받아들지 않았다. 미국과의 수교를 성급히 결정하지 않았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할 건지 말 건지를 따져물었다. 1972년에 곧 성사될 것 같았던 미중수교가 7년 뒤에야 이뤄진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줘야 생수병을 받겠다면서 시간을 지연시킨 결과였다.
이 정도면 중국이 '하나의 중국'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핵보유를 합법화해주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만들어주는데도, 중국은 이 원칙 하나를 위해 수교를 7년간이나 지연시켰다. 세계 최강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원칙만은 꼭 지키겠다는 중국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에 집착하는 이유
중국은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소수민족들은 인구는 많지 않지만, 이들이 차지한 영역은 상대적으로 넓다. 소수민족이 중국에서 분리되면 그 민족이 차지한 영역까지 분리될 뿐 아니라 여타 소수민족들한테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자칫 중국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역대 중국 왕조들이 소수민족 통합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은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이민족의 중국 침략까지 중국 역사의 일부로 간주하는 데는 그런 고려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중국 왕조들은 거란족(요나라)의 중국 침략 역사를 <요사>라는 공인 역사서로 포용하고, 몽골(원나라)의 중국 침략 역사를 <원사>라는 공인 역사서로 포용했다. 어떤 경로로 중국에 들어왔든 모두 다 중국의 일원으로 인정해줌으로써, 그들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는 중국 한족 지배층의 심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의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것은 비단 타이완뿐 아니라 신장위구르·티베트·내몽골·만주·서남지역 소수민족들을 다독이고 분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같은 문건들이 국제적으로 공론화되면, 중국은 미국이나 타이완뿐 아니라 소수민족 동향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국 지도부의 정신적 역량이 사방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수민족 문제와 별개로, 중국이 '하나의 중국'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그중 결정적인 한 가지는 중국 근현대사 속의 시련과 연관돼 있다.
1912년에 멸망한 청나라는, 자국을 U자 모양으로 둘러싸는 티베트·미얀마·베트남·타이완·오키나와·조선과의 유대관계를 기초로 국가안보를 유지했다. 푸젠성(복건성) 관할인 타이완을 포함해, 이들 U자 라인의 국가 혹은 지역들은 적대 세력으로부터 청나라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U자 라인과의 동맹만 확실히 해두면 라인 너머의 외부세력 침입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청나라는 U자 라인을 행정구역에 편입시키거나 속국으로 두는 정책을 유지했다.
▲ U자 라인. ⓒ 김종성
그런데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으로 서양이 청나라보다 확실한 우위에 선 뒤인 1860년대부터, U자 라인은 서양열강과 일본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됐다. 서양과 일본은 '중국을 둘러싸는 담장인 U자 라인을 무너트리면 중국 침략이 쉬워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이 라인에 대한 집중 공략에 착수했다.
1860년대 이후 영국이 티베트와 미얀마에, 프랑스가 베트남에, 일본이 타이완·오키나와·조선에, 러시아가 조선에 공세적 태도를 취한 것은 그 때문이다. 1866년에 프랑스가 조선을 침공해 병인양요를 일으키고, 1871년에 미국이 조선을 침공해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도 이 전략과 관련이 있다.
U자 라인에 대한 본격적인 위험 신호는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침공이었다. 이 사건은 타이완에 대한 청나라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1879년에 오키나와가 일본 식민지가 되고 1910년에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U자 라인의 한 지점이 위험해지자 다른 지점들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면서 라인 전체적으로 위험성이 증가했다. U자 라인이 서양과 일본에 완전히 넘어간 1910년으로부터 2년 뒤에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진 것은, 이 라인이 중국한테 얼마나 소중한 생명줄인지를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이 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게 근대 중국의 불행을 조장한 원인 중 하나가 됐던 것이다.
중국 안보에 지대한 영향 끼치는 조건들
오늘날에도 이 라인은 중국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은 그간의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이 라인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청나라 전성기의 안보 수준을 회복하자면, 이 라인 전체를 '붉은색'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시도의 결과로, 이 라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복구됐다. 티베트는 이미 중국 영토로 편입돼 있고, 미얀마는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다. 홍콩·마카오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묶여 있다. 남한과는 경제적 유대관계로 묶여 있고, 북한과는 그럭저럭 협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중국 편이 아닌 쪽도 적지 많다. 타이완은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묶여 있지만, 기회만 생기면 중국에서 벗어나려 한다. 베트남은 친미적 성향을 보이고 있고, 오키나와는 미국 영향권에 있다. 한편,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다소 모호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U자 라인에 대해 청나라 때만큼의 영향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이완이 중국에 정면 대항하고 반(反)중국 진영이 타이완을 돕게 되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난지나해)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U자 라인 전체가 동시에 동요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만과의 양안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이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의 동요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타이완 한 곳에서 발생하는 안보 위험이 중국 전체의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타이완을 묶어두지 않을 수 없다. 1974년 일본의 타이완 출병으로 본격화된 U자 라인의 동요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서라도 타이완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이완이 실질적으로는 별개의 국가일지라도, 이 나라를 '하나의 중국'으로 묶어놓으면 제3국이 타이완과 군사동맹을 체결하기가 어려워지고 중국의 안보가 그만큼 제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이 원칙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누구라도 이 원칙을 깨면 설령 그것이 미국일지라도 일단은 강경 대응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상대가 미국이므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는 하겠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는 국가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그간의 입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 단절을 적어도 검토해보는 척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이런 포즈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미중관계가 적지 않게 동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근차근 시진핑을 '건드려온' 트럼프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하나의 중국' 원칙이 그처럼 민감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이를 단번에 깨지 않고 단계적으로 건드리는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1개월도 채 안 된 2016년 12월 2일, 트럼프는 '대통령이든 당선자든 대만 총통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1979년 이래의 불문율을 깨고 차이잉원 타이완 총독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후 그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살짝 살짝 건드리며 점차적으로 수위를 높여 오다가 이번 보고서 발간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번 보고서 발간은 아직은 경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이완과의 공식 수교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협박용이라는 해석이다. 향후 중국이 무역분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타이완 수교가 정말로 실현되면 중국이 단교를 검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도 향후의 행보를 최대한 잘게 세분해서 대응 카드를 단계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층 더 치열해질 미중 양국의 수 싸움을 세계 각국이 지켜보게 되리라 전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한국 기업들과 정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이 자국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좀 더 많이 파괴하는 쪽으로 미국이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압박 효과를 높일 목적으로, 미국이 동맹국 기업과 정부를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례로, 한·미·일 삼각동맹에 타이완을 끌어들여 한중관계를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얼마 전 맥도날드가 대만 국적이 표기된 수험표를 광고 영상에 내보냈다가 곤욕을 치른 것처럼, 한국 기업과 정부도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깨트리기'에 휘말려 사드 사태 때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미중 간에 어떻게 전개될지는 물론, 이 문제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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