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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아픈 건 다 엄마에게 넘겨주렴

[육아, 너와 내가 자라는 시간 ⑪] 돌발진이 오다

등록|2019.06.19 10:10 수정|2019.06.19 10:22
예고도 징후도 없이 갑자기 아이의 고열이 시작됐습니다.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리거나, 목이 쉰 것도 아니었습니다. 숨소리가 이상하거나, 어딘가 아파하는 내색도 없었습니다. 오전부터 이상하게 평소보다 피곤해 하기는 했지만 동네 한 바퀴 돌고와서 긴 낮잠을 뒤척임 없이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날씨가 변덕이 심해 실외놀이가 더 좋겠다 싶어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려고 나갔다가 주차장이 꽉 막혀 되돌아 왔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엄마 품에 앉아 TV를 보는 아이에게서 뜨거운 체온이 느껴져 체온을 재보니 38.5도였습니다.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목이 심하게 부어있다면서 해열진통소염제와 함께 기침, 가래, 알레르기에 쓰는 약 몇 가지를 처방해줬습니다. 혹시 약을 먹이고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다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고열은 꼬박 사흘간 지속됐습니다. 해열제 복용 후 한 시간 경과하면 체온이 1도쯤 떨어졌다가 또 1시간 지나면 다시 올라갔습니다. 둘째날 저녁에는 39.5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기침을 하거나 추가적인 증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낮에도 밤에도 아이는 잠을 잘 못 자고 끙끙 신음소리를 내고 울었습니다. 한밤중에도 몇 번이고 자다 깨서 울면 목이 타서 물을 한 컵 가득 다 비웠습니다. 아예 잠자리에 아기 물병을 두고 깰 때마다 수시로 먹였습니다.

하루는 새벽부터 내린 비가 그칠 줄을 모르는데, 해열제도 듣지 않는 고열 상태가 근심이 되어 비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바람막이와 방수커버까지 씌운 후 빗길을 달렸습니다. 우산 쓰기는 포기했습니다. 아이만 젖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다행히 바람은 잠잠해졌습니다.

항생제를 추가로 처방받아 먹였습니다. 담당의는 의심되는 질환이나 진단명 등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이의 고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고, 인후염이나 감기 증세 등 호흡기질환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독감이나 폐렴 등 더 위험한 질환도 있지만, 의사도 특별히 추가 검사를 권하지 않으니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짐했습니다. 이제 세균감염증에 사용하는 항생제를 먹기 시작했으니 하루 이틀 지나면 약효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 아이의 체온은 결국?사흘을 꼬박 지나고 나서야 정상화됐습니다. ⓒ flickr


아이의 체온은 결국 사흘을 꼬박 지나고 나서야 정상화됐습니다. 떨어질 듯하며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던 열이 뚝 떨어지는 데도 예고가 없었습니다. 서서히 증세가 악화되거나 서서히 호전되지 않고 급격히 나타났다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날밤도 잠을 못 자고 끙끙 앓았습니다. 기운 없이 집에서 장난감만 가지고 꼼지락거리는 아이가 너무도 애처로워, 이것저것 먹여보려 애썼지만 평소에 좋아하는 요거트와 치즈, 바나나 같은 것만 먹고 밥은 거부했습니다. 그나마도 먹어주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픈 날도 지나간다

이렇게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가 낫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얼굴과 목 둘레에 붉은 두드러기가 좁쌀처럼 번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언가 잘못 먹였나 먹인 음식의 식재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알레르기 때문이라면 심해졌다가 점차 가라앉을 텐데, 아이의 발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 온 몸통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열이 떨어진 것에 안심하며, 두드러기는 시간이 지나면 금새 가라앉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처방약이 대폭 줄어 항생제도 해열제도 빠지고, 기관지 약과 두드러기 약만 받아 먹였습니다. 금방 가라앉는다는 '금방'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도 의사의 말에 안심은 했는데, 아이는 기분이 안 좋은지 계속해서 칭얼댔습니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은 업어주기 외에 특효약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등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잤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가 뻐근하고 손목, 발목도 시큰거렸지만, 제일 힘든 것은 괴로워하는 아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주어야 아이가 덜 괴로울지 몰라 그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말고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괴로운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고 위로해주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었습니다.

"사랑해요", "아이, 착해", "아이, 예뻐", "얼마나 괴로워요?", "아야 해서 많이 힘들어요?", "아야 하지 말고 빨리 낫자" 하고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도 불러 주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힘든 것은 다 잊었습니다. 아이가 잠시라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 엄마 등에 폭 기대어 편히 눈을 감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언제까지 아파야 하나, 언제쯤 나으려나, 애타는 마음은 엄마 스스로 달래고 이겨내야 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업고 위로하며, 아이는 엄마의 등에서 병과 싸우며 인내하기를 6박 7일이 지나자 기적처럼 아이의 붉은 반점이 얼굴에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점차 몸통과 팔 다리도 깨끗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뒷목까지 진정되고 나니 아이의 뽀얗고 하얀 피부로 되돌아 왔습니다. 전형적인 '돌발진' 증세였습니다. 붉은 발진이 온몸을 뒤덮는다 해서 '장미진'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길어지는 간호에 지쳐갈 무렵, 아이는 언제 그러했냐는 듯이 갑자기 회복됐습니다. 아픈 동안 내내 웃지 않던 아이는 몸이 가벼워지자 저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나 봅니다. 웃음보가 터진 듯 시종 웃기 시작했고, 바깥에 나가자고 졸라댔습니다.

그때부터 며칠동안은 날마다 밖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와도 다시 나가자, 놀이터에서 한 시간 넘게 놀다왔어도 다시 나가자 했습니다. 붕붕카를 타고 전력질주를 하여 놀이터로 향했고, 하루에도 대여섯 번의 외출을 감행하며 지칠 줄 몰랐습니다.

깔깔깔 깔깔깔. 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입맛도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웃는 아이를 보니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붕붕카를 타고 전력질주하는 아이를 보며 저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채 꾹꾹 눌러담고 사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지난날이 안쓰러웠습니다. 감기라도 걸릴까봐 걱정하면서도, 바깥세상 구경과 야외놀이에 신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 소박한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아픈 날도 결국은 지나갑니다. 지난 일은 옛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 아픈 날이 너무 쉽게 자주 빨리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대신 아파주지 못해 괴롭습니다. 아프지 않도록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가, 아픈 것은 다 엄마에게 넘겨주고 너만은 항상 건강해주기를. 이것이 엄마의 소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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