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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일해도 최저임금, 이젠 해고? 톨게이트 노동자들 절규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 요구한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 7월 1일 해고 위기

등록|2019.06.28 18:26 수정|2019.06.28 18:26
 

▲ 서울톨게이트 전경. ⓒ 유지영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버스가 굉음을 내면서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 반드시 마주치기 마련인 톨게이트는 요금 수납원들의 일터다. 이들은 왕복 10분이 걸리는 지하 통로를 거쳐, 차들이 치고 지나가는 통에 깨진 콘크리트 턱과 유리조각들을 지나, 1평짜리 부스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이곳에서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서울톨게이트. 여기에서 일하는 요금 수납원들은 하루 1300대씩의 차량과 만난다. 요즘은 차량이 통과하면 자동적으로 요금이 부과되는 하이패스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동으로 요금을 내는 차량은 많았다.

흔히들 하이패스 구간에는 요금 수납원이 없다고 오해하지만, 이 구간에도 요금 수납원들이 있다. 차량 정보 조회를 통해 미납 차량을 잡고, 입구에서 차량번호가 잘못 인식될 경우 육안으로 판독해 차량 번호를 알려주는 일 등을 한다.

1500여 명 요금수납원, 7월 1일 해고 위기
 

▲ 서울톨게이트에 차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요금 수납원들은 이곳에서 하루에 평균 1300대의 차량을 만난다. ⓒ 유지영

    
"아무래도 7월 1일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걱정되죠."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조합 위원장 박선복)

톨게이트를 지나가는 운전자들은 요금 수납원 1500여 명을 7월 1일부터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1일부터 도로공사는 요금 수납업무를 기존의 외주업체에서 새로 설립한 자회사로 이관한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는 용역회사 소속이었던 요금 수납원들에게 자회사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요금 수납원 6500여 명 중 150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회사 동의서에 사인했지만 1500명은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서명에 응하지 않았다.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2심(2017년)까지 승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2심까지 판결이 나서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이 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어요." (요금 수납원 A)

25일 오전 서울톨게이트 옆 도로공사 서울영업소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을 찾았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이쯤 나오는 7월 일정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톨게이트 노동조합 박선복 위원장의 얼굴은 유난히 더 어두웠다.
 

▲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조합 조합원들. ⓒ 유지영


2008년 말, 서울영업소를 포함한 9개 관문영업소에 직접고용된 요금 수납원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라는 명목 아래 외주화가 실시되자 용역업체로 밀려났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자회사로 옮기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또 다른 용역업체에 불과한' 자회사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자회사가 용역회사처럼 운영되거나 비용 효율성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던 사례가 많기 때문"(한국노동연구원 고용·노동브리프 제83호)이다.

"처음에 저는 도로공사 직원이 된 줄 알았어요. 여길 제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려고 했죠. 그런데 4년마다 한 번씩 직장이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톨게이트노동조합 총무부장 한종숙)
 

▲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2층.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직접 고용을 주장하면서 건물 이곳 저곳에 구호문을 붙였다. '10년을 속았다 또 속냐!'에서 10년은 요금 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직접 고용이 아닌 외주 업체로 고용됐던 시간을 뜻한다. ⓒ 유지영


지난 10년, 요금 수납원들의 소속회사는 4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이들은 회사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회사와 재계약을 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장소에서 하지만 계약을 할 때마다 이들은 신입사원이 된다. 지원되는 상여금이나 교통비도 새로 계약하는 회사마다 제각각이었다.

"그 불안감이 대단한 거죠. 용역업체 관리자에게 협조를 안 해주면 잘릴까봐, 고용 안 해줄까봐 '네네' 하면서 지내요." (톨게이트노동조합 총무부장 한종숙)
 

▲ 17~19년째 같은 곳에서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신입사원이 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2019년 2월 새로 온 용역업체는 연차 사용을 하게 해달라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요청에 연차 사용은 한달 근무를 마친 후 1일치를 쓸 수 있다고 공지했다. ⓒ 유지영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1년을 일하든 20년을 일하든 모두 똑같이 최저임금을 받는다. 도로공사 톨게이트노동조합 박선복 위원장은 톨게이트 요금 수납 업무를 시작한 지 17년이 됐지만 새로 입사한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들의 시급은 8350원이다. 법정 최저임금.

대법원 판결 승소해도 '요금 수납 업무' 맡기 어려울 듯
 

▲ 서울 톨게이트에서 한 요금 수납원이 일을 하고 있다. ⓒ 유지영

  

▲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일하는 공간. 부스는 콘크리트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요금 수납원들은 부스가 사고 시 완충제 역할이나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유지영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다. 도로공사는 요금 수납원들에게 용역업체가 아닌 자회사를 통해 고용한다고 밝혔다. 요금수납원들은 용역회사나 자회사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 고용 원칙'(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도로공사 역시 요금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도로공사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요금 수납원들에게 기간제 근로자 서명을 강요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은 도로공사 관계자들이 자회사로 옮기지 않을 경우 기간제 근로자로서 '고속도로 주변 풀 뽑기나 청소 등 요금 수납과 관련 없는 일을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자회사도 거부하고 기간제에도 서명하지 않으면 해고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

도로공사 측은 요금 수납원들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 판결 전까지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하는데, 기간제 근로자가 하는 것은 고속도로 유지 보수 관리 업무나 청소 업무"라며 "수납원들이 조경 관리 업무를 두고 풀 뽑기라고 오해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하더라도 1500여 명의 요금 수납원들은 지금과 같은 업무를 맡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도로공사가 요금 수납 업무는 자회사로 이관하기 때문에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요금 수납원들은 요금 징수를 제외한 유지 관리 보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도로공사는 자회사 입사를 거부하는 요금 수납원들을 대신해 7월 1일부터 대체 근무를 할 인력 확충을 하고 있다. 정년을 채운 뒤 퇴직한 몇몇 요금 수납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 수납 업무 지원자들이 수납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갔다는 말도 들려온다.
 

▲ 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이 25일 서울 대법원 앞 집회에 참여해 직접 고용을 주장하고 있다. ⓒ 유지영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이미 해고된 요금수납원들도 있다.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약속한 자회사 전환을 도로공사는 '시범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5월 31일경 31개 영업소에 한해 미리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직접 고용을 주장하던 수납원 92명이 해고됐다. 또 6월 15일에는 26명이 해고됐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노사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서 결정된 사항이다"라며 "고속도로 수납 업무는 단순 반복 업무로 간주해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조합은 "탄핵된 이전 위원장을 데려와 서명하게 해서 파행된 노사협의를 완료했다고 주장한다"고 반박했다.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요금 수납원들은 7월 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농성 투쟁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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