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 기자회견' 진행하고 전과자 된 대학생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④] 집회 사전신고제 헌법소원 사건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 기자 주
흔한 고정관념이 있다. 집회를 하려면 경찰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를 하지 않고 집회를 하면 불법집회가 된다는 것이다. 헌법 제21조가 "모든 국민은…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왜 집회신고를 미리 해야 할까?
차도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일 경우 길이 막힐 수 있으니 미리 우회로를 안내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 하는 소규모 집회도 미리 신고해야 할까? 기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밝히는 기자회견도 집회라서 미리 신고해야 할까? 여기 '집회는 미리 신고해야 합법'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고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찾았으나 결국 전과자가 된 대학생 김아무개씨가 있다.
기자회견 사회자, 전과자가 되다
2014년 4월 24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TPP 추진과 군사적 한미동맹 강화목적의 오바마 방한 반대 청년·학생 기자회견'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오바마 방한 반대한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여느 기자회견처럼 소형 앰프 한 개를 사용했다. 김씨는 기자회견의 사회자였다.
이후 김씨는 "기자회견을 빙자하여 피켓과 방송 장비를 이용한 미신고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약식기소되어 2015년 5월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이은명 판사는 당시 기자회견이 신고의무의 대상인 옥외집회에 해당한다며 벌금 7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사가 기자회견을 옥외집회로 본 이유는 이렇다.
1) 김씨를 포함한 약 15명이 기자회견 제목이 기재된 플래카드를 참가자들 앞에 세워 놓았고 일부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취지가 기재된 피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2) 기자회견 사회를 본 김씨가 여러 번 구호(군사패권 주장하는 오바마 방한 반대한다 등)를 선창하면 참가자들이 피켓을 흔들면서 구호를 제창했다.
3)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1차 자진해산 요청을 했고 구호제창 등을 한 경우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경고했으나 다시 구호를 제창했다.
김씨는 항소·상고했으나 2017년 7월과 9월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종문)와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잇달아 기각했다. 오전 11시 5분경부터 30분경까지 25분 동안 열린 기자회견에 사회자로 나섰다는 이유로 김씨는 전과자가 된 것이다.
기자회견도 집회라면, 집회란 무엇인가?
집시법 제6조 제1항은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신고서를 옥외집회나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고서에는 집회의 목적 ▲ 일시 ▲ 장소 ▲ 주최자(주소, 성명, 직업, 연락처) ▲ 참가 예정인 단체와 인원 ▲ 시위의 경우 그 방법(진로와 약도 포함)을 기재해야 한다. 신고사항이 누락되면 경찰이 보완 통고를 하게 되는데, 주최자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집회 금지 통고를 받을 수 있다.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회를 주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제22조 제2항)에 처해진다.
그러나 집시법은 '옥외집회'의 개념을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에서 여는 집회'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정작 '집회'의 정의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집회'의 정의는 판례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대법원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특정한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고 그 모이는 장소나 사람의 다과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대법원 1983. 11. 22. 선고 83도2528 판결)고 판시함으로써 아무런 규범적인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 사건처럼 기자와 취재원이 만나는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인터넷 등을 매개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플래시 몹'도 법원은 '집회'로 판단한다. 일정 간격을 두고 진행하는 1인시위도 '변형된 집회'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2인 이상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옥외에서 모이기만 하면 타인의 법익이나 사회질서를 해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더라도 신고의무가 부과되고 이를 어기면, 즉 48시간 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사전신고제, 헌법재판소로 가다
김씨는 항소심 계류 중 사전신고제를 규정한 집시법 제6조 제1항 및 그 처벌 조항인 제22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7년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김씨는 ▲ 집회의 정의 규정이 없어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 이에 따라 기자회견과 같이 신고할 필요가 없는 집회까지 신고의무가 너무 광범위하게 부과되며 ▲ 신고의무를 어겼다고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고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와 마찬가지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합헌):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놨다. 헌법재판소는 "신고사항은 여러 옥외집회·시위가 경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고, 질서유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정보"라며 "옥외집회·시위에 대한 사전신고 이후 기재사항의 보완, 금지통고 및 이의절차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하여 늦어도 집회가 개최되기 48시간 전까지 사전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사전신고제가 집시법의 다른 조항과 결합하여 집회 허가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애써 무시한 것이다. 집시법상 신고를 하더라도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거나(제12조) 주거·학교·군사시설(제8조 제5항) 주변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할 수 있다. 그 외에도 ▲ 절대적 금지집회(제5조 제1항) ▲ 금지 시간(제10조) ▲ 금지 장소(제11조) 등의 이유로 집회를 금지당할 수 있다. 게다가 금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관할 경찰관서장이어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 경찰은 사전신고된 집회의 주제를 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회는 금지하고 입맛에 맞는 집회는 금지하지 않을 수 있다.
신고의무 위반에 과태료가 아니라 형벌?
헌법재판소는 "미신고 옥외집회의 주최는 신고제의 행정목적을 침해하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하여 행정형벌을 과하도록 한 심판대상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 그 법정형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과중한 처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과잉형벌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판단했다.
형벌 특히 징역형은 각종 자격의 제한이 따르고 인신의 자유를 박탈한다. 다른 어떤 기본권의 제한 수단보다도 처벌되는 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며 집행 후에도 인격적 가치나 사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헌법재판소가 "형벌의 일반예방적 효과를 맹신한 나머지 의무이행의 확보가 문제되는 경우마다 형사처벌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법치국가원리에 반하는 행정편의적 발상으로서 그 헌법적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법치국가원리는 헌법 제10조, 헌법 제37조 제2항의 규정을 매개로 하여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형벌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2005. 9. 29. 선고 2003헌바52 결정)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전신고는 행정절차적 협조의무에 불과하므로 그 이행은 과태료 등 행정상 제재로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미신고집회라 하더라도 ▲ 우발적 혹은 소규모 집회이거나 ▲ 비교적 단시간의 집회로서 평화롭게 집회를 마치는 경우나 ▲ 집회 중에 경찰과 주최 측이 협의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집회를 하는 경우 등 공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때에도 사전신고를 예외 없이 관철시키기 위해 형벌로 제재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전체적으로 위축시킨다. 때문에 사전신고제가 그 본래 취지에 반하여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에 준하게 운용되는 것이다.
법원 역시 모든 미신고집회가 처벌 대상이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법원은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판단했다.
같은 판례에서 대법원은 미신고집회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을 긍정하기는 했지만 해산명령 불응죄에 대해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위 조항에 기하여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집시법 제24조 제5호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떤 기자회견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어서 참가자를 형사처벌할 필요가 없다면, 해당 기자회견의 주최자를 형사처벌할 필요는 무엇인지에 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에 경찰이 먼저 관행을 바꿨다. 2017년 9월 경찰개혁위원회는 "'기자회견'은 집시법상의 집회·시위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경찰은 그 평화적 진행을 최대한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 구호제창 여부, 플래카드 사용 여부, 확성장치 사용 여부 등의 기준을 형식적으로 적용해 기자회견을 집회·시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 기자회견이 집회·시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이 어려울 경우 현장에서는 진행을 보장하고, 추후 집회·시위 여부를 판단한다 ▲ 기자회견을 집회·시위라고 판단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진행될 경우 방송차를 이용해 자진해산요청이나 해산명령을 하는 방식으로 기자회견 진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지침을 내놨다.
경찰청은 위원회의 모든 권고사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경찰청 스스로 기자회견을 일률적으로 집회로 간주하여 형사처벌하던 관행을 버렸는데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고집한 것이다.
재판관 4인의 위헌 의견… 미래의 다수의견이 될 소수의견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과 동일한 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집회신고제가 사전허가 금지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하며, 과잉형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9. 5. 28. 선고 2007헌바22 결정; 헌법재판소 2014. 1. 28. 선고 2011헌바174등 결정).
그러나 2009년 결정에서는 "사회질서를 해칠 개연성이 있는지를 묻지 않고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또한 집회 여부를 48시간 전에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집회나 긴급한 집회에 대하여 신고를 요구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 "사전신고의무는 궁극적으로 집회의 자유의 보장 및 관련법익의 조화를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점에서 예외 없는 관철이 절실히 요구되는 성질의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관 8인 중 2인(조대현·김종대)이 위헌 의견을 냈다.
2014년 결정에서는 "집회에 대한 신고의무는 단순한 행정절차적 협조의무에 불과하고, 그러한 협조의무의 이행은 과태료 등 행정상 제재로도 충분히 확보 가능함에도 심판대상조항이 징역형이 있는 형벌의 제재로 신고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전체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는 신고제도의 본래적 취지에 반하여 허가제에 준하는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재판관 9인 중 4인(이정미·김이수·이진성·강일원)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위헌 의견을 내는 재판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번 2018년 결정에서도 재판관 9인 중 4인(이진성·김이수·강일원·이선애)이 비슷한 취지의 위헌 의견을 냈다. 필자는 소수의견이 늘어나 결국 다수의견이 되었던 다른 사건처럼 이 사건의 소수의견이야말로 미래의 다수의견이 되리라 믿는다.
기본권 행사는 범죄일 수 없다
"검찰은 기자회견 당시 참가자들이 옥외에서 다수가 모여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집회로 볼 수 있고, 이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집시법상 신고의 대상이 아닌 기자회견인데 사전에 경찰에게 가서 이게 집회인지 기자회견인지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또한 기자회견장 주변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바람에 마이크로 진행한 우리 기자회견 내용을 그들이 듣게 됐다 한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판사님, 구글 동영상에 기자회견 영상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저는 구호를 외치지 않는 기자회견을 본 적이 없습니다. (…) 판사님, 도대체 저에게 어떤 죄가 있습니까?" (김씨의 1심 최후진술 일부)
김씨가 1심 최후진술을 통해 판사에게 했던 질문이다. 결국 김씨는 이 사건에서 패소했지만, 필자는 김씨의 질문에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본다. 집회·시위는 다른 범죄를 수반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범죄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정되어서는 안 되는 기본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기자회견마저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며 사전신고 대상으로 삼고 미신고 형사처벌에 정당성을 부여한 이 사건 헌법재판소 결정은 거리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획 /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① 브래지어 강제로 벗으라는 경찰들, 속셈은 따로 있었다 (http://omn.kr/1j3li)
② '임신한 아내' 진료기록 가져간 경찰, 어이없다 (http://omn.kr/1jfg8)
③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성기 성형수술' 꼭 필요한가 (http://omn.kr/1ji47)
흔한 고정관념이 있다. 집회를 하려면 경찰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를 하지 않고 집회를 하면 불법집회가 된다는 것이다. 헌법 제21조가 "모든 국민은…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왜 집회신고를 미리 해야 할까?
기자회견 사회자, 전과자가 되다
▲ 기자회견 사회자였던 김아무개(당시 대학생)씨, 그는 왜 전과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 pxhere
이후 김씨는 "기자회견을 빙자하여 피켓과 방송 장비를 이용한 미신고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약식기소되어 2015년 5월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이은명 판사는 당시 기자회견이 신고의무의 대상인 옥외집회에 해당한다며 벌금 7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사가 기자회견을 옥외집회로 본 이유는 이렇다.
1) 김씨를 포함한 약 15명이 기자회견 제목이 기재된 플래카드를 참가자들 앞에 세워 놓았고 일부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취지가 기재된 피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2) 기자회견 사회를 본 김씨가 여러 번 구호(군사패권 주장하는 오바마 방한 반대한다 등)를 선창하면 참가자들이 피켓을 흔들면서 구호를 제창했다.
3)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1차 자진해산 요청을 했고 구호제창 등을 한 경우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경고했으나 다시 구호를 제창했다.
김씨는 항소·상고했으나 2017년 7월과 9월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종문)와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잇달아 기각했다. 오전 11시 5분경부터 30분경까지 25분 동안 열린 기자회견에 사회자로 나섰다는 이유로 김씨는 전과자가 된 것이다.
기자회견도 집회라면, 집회란 무엇인가?
▲ 2016년 12월 박근혜 정권 퇴진 촉구 8차 촛불집회, 광화문에 60만 시위대가 모였다. ⓒ 유성호
집시법 제6조 제1항은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신고서를 옥외집회나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고서에는 집회의 목적 ▲ 일시 ▲ 장소 ▲ 주최자(주소, 성명, 직업, 연락처) ▲ 참가 예정인 단체와 인원 ▲ 시위의 경우 그 방법(진로와 약도 포함)을 기재해야 한다. 신고사항이 누락되면 경찰이 보완 통고를 하게 되는데, 주최자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집회 금지 통고를 받을 수 있다.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회를 주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제22조 제2항)에 처해진다.
그러나 집시법은 '옥외집회'의 개념을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에서 여는 집회'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정작 '집회'의 정의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집회'의 정의는 판례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대법원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특정한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고 그 모이는 장소나 사람의 다과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대법원 1983. 11. 22. 선고 83도2528 판결)고 판시함으로써 아무런 규범적인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 사건처럼 기자와 취재원이 만나는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인터넷 등을 매개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플래시 몹'도 법원은 '집회'로 판단한다. 일정 간격을 두고 진행하는 1인시위도 '변형된 집회'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2인 이상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옥외에서 모이기만 하면 타인의 법익이나 사회질서를 해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더라도 신고의무가 부과되고 이를 어기면, 즉 48시간 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사전신고제, 헌법재판소로 가다
김씨는 항소심 계류 중 사전신고제를 규정한 집시법 제6조 제1항 및 그 처벌 조항인 제22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7년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김씨는 ▲ 집회의 정의 규정이 없어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 이에 따라 기자회견과 같이 신고할 필요가 없는 집회까지 신고의무가 너무 광범위하게 부과되며 ▲ 신고의무를 어겼다고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고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와 마찬가지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합헌):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놨다. 헌법재판소는 "신고사항은 여러 옥외집회·시위가 경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고, 질서유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정보"라며 "옥외집회·시위에 대한 사전신고 이후 기재사항의 보완, 금지통고 및 이의절차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하여 늦어도 집회가 개최되기 48시간 전까지 사전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사전신고제가 집시법의 다른 조항과 결합하여 집회 허가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애써 무시한 것이다. 집시법상 신고를 하더라도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거나(제12조) 주거·학교·군사시설(제8조 제5항) 주변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할 수 있다. 그 외에도 ▲ 절대적 금지집회(제5조 제1항) ▲ 금지 시간(제10조) ▲ 금지 장소(제11조) 등의 이유로 집회를 금지당할 수 있다. 게다가 금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관할 경찰관서장이어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 경찰은 사전신고된 집회의 주제를 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회는 금지하고 입맛에 맞는 집회는 금지하지 않을 수 있다.
▲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연 모습. 국회 앞에서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에 대해서 헌재는 지난해 5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 신지수
신고의무 위반에 과태료가 아니라 형벌?
헌법재판소는 "미신고 옥외집회의 주최는 신고제의 행정목적을 침해하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하여 행정형벌을 과하도록 한 심판대상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 그 법정형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과중한 처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과잉형벌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판단했다.
형벌 특히 징역형은 각종 자격의 제한이 따르고 인신의 자유를 박탈한다. 다른 어떤 기본권의 제한 수단보다도 처벌되는 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며 집행 후에도 인격적 가치나 사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헌법재판소가 "형벌의 일반예방적 효과를 맹신한 나머지 의무이행의 확보가 문제되는 경우마다 형사처벌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법치국가원리에 반하는 행정편의적 발상으로서 그 헌법적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법치국가원리는 헌법 제10조, 헌법 제37조 제2항의 규정을 매개로 하여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형벌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2005. 9. 29. 선고 2003헌바52 결정)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전신고는 행정절차적 협조의무에 불과하므로 그 이행은 과태료 등 행정상 제재로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미신고집회라 하더라도 ▲ 우발적 혹은 소규모 집회이거나 ▲ 비교적 단시간의 집회로서 평화롭게 집회를 마치는 경우나 ▲ 집회 중에 경찰과 주최 측이 협의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집회를 하는 경우 등 공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때에도 사전신고를 예외 없이 관철시키기 위해 형벌로 제재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전체적으로 위축시킨다. 때문에 사전신고제가 그 본래 취지에 반하여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에 준하게 운용되는 것이다.
법원 역시 모든 미신고집회가 처벌 대상이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법원은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판단했다.
같은 판례에서 대법원은 미신고집회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을 긍정하기는 했지만 해산명령 불응죄에 대해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위 조항에 기하여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집시법 제24조 제5호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떤 기자회견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어서 참가자를 형사처벌할 필요가 없다면, 해당 기자회견의 주최자를 형사처벌할 필요는 무엇인지에 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에 경찰이 먼저 관행을 바꿨다. 2017년 9월 경찰개혁위원회는 "'기자회견'은 집시법상의 집회·시위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경찰은 그 평화적 진행을 최대한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 구호제창 여부, 플래카드 사용 여부, 확성장치 사용 여부 등의 기준을 형식적으로 적용해 기자회견을 집회·시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 기자회견이 집회·시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이 어려울 경우 현장에서는 진행을 보장하고, 추후 집회·시위 여부를 판단한다 ▲ 기자회견을 집회·시위라고 판단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진행될 경우 방송차를 이용해 자진해산요청이나 해산명령을 하는 방식으로 기자회견 진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지침을 내놨다.
경찰청은 위원회의 모든 권고사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경찰청 스스로 기자회견을 일률적으로 집회로 간주하여 형사처벌하던 관행을 버렸는데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고집한 것이다.
재판관 4인의 위헌 의견… 미래의 다수의견이 될 소수의견
▲ 헌법재판소, 간통죄 위헌 선고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5년 2월 26일 간통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41조가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내놨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입구의 현판. 2015.2.26 ⓒ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과 동일한 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집회신고제가 사전허가 금지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하며, 과잉형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9. 5. 28. 선고 2007헌바22 결정; 헌법재판소 2014. 1. 28. 선고 2011헌바174등 결정).
그러나 2009년 결정에서는 "사회질서를 해칠 개연성이 있는지를 묻지 않고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또한 집회 여부를 48시간 전에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집회나 긴급한 집회에 대하여 신고를 요구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 "사전신고의무는 궁극적으로 집회의 자유의 보장 및 관련법익의 조화를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점에서 예외 없는 관철이 절실히 요구되는 성질의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관 8인 중 2인(조대현·김종대)이 위헌 의견을 냈다.
2014년 결정에서는 "집회에 대한 신고의무는 단순한 행정절차적 협조의무에 불과하고, 그러한 협조의무의 이행은 과태료 등 행정상 제재로도 충분히 확보 가능함에도 심판대상조항이 징역형이 있는 형벌의 제재로 신고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전체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는 신고제도의 본래적 취지에 반하여 허가제에 준하는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재판관 9인 중 4인(이정미·김이수·이진성·강일원)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위헌 의견을 내는 재판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번 2018년 결정에서도 재판관 9인 중 4인(이진성·김이수·강일원·이선애)이 비슷한 취지의 위헌 의견을 냈다. 필자는 소수의견이 늘어나 결국 다수의견이 되었던 다른 사건처럼 이 사건의 소수의견이야말로 미래의 다수의견이 되리라 믿는다.
기본권 행사는 범죄일 수 없다
"검찰은 기자회견 당시 참가자들이 옥외에서 다수가 모여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집회로 볼 수 있고, 이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집시법상 신고의 대상이 아닌 기자회견인데 사전에 경찰에게 가서 이게 집회인지 기자회견인지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또한 기자회견장 주변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바람에 마이크로 진행한 우리 기자회견 내용을 그들이 듣게 됐다 한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판사님, 구글 동영상에 기자회견 영상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저는 구호를 외치지 않는 기자회견을 본 적이 없습니다. (…) 판사님, 도대체 저에게 어떤 죄가 있습니까?" (김씨의 1심 최후진술 일부)
김씨가 1심 최후진술을 통해 판사에게 했던 질문이다. 결국 김씨는 이 사건에서 패소했지만, 필자는 김씨의 질문에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본다. 집회·시위는 다른 범죄를 수반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범죄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정되어서는 안 되는 기본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기자회견마저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며 사전신고 대상으로 삼고 미신고 형사처벌에 정당성을 부여한 이 사건 헌법재판소 결정은 거리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획 /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① 브래지어 강제로 벗으라는 경찰들, 속셈은 따로 있었다 (http://omn.kr/1j3li)
② '임신한 아내' 진료기록 가져간 경찰, 어이없다 (http://omn.kr/1jfg8)
③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성기 성형수술' 꼭 필요한가 (http://omn.kr/1ji47)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현성 변호사(법무법인 우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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