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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절도죄만 아니면 돼"... '폭력 코치' 재임용한 지자체

인권위, 관련 스포츠 단체에 권고 조치 내려... 접수된 스포츠 진정사건 중 첫 권고

등록|2019.07.04 14:41 수정|2019.07.04 14:41
'2015년 4월, A 코치는 선수의 뺨을 때리고 몸 전체를 구타해 늑골 골절에 이르는 폭행을 했다. 2017년 11월, (그는) 훈련 중 다른 선수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폭언을 했다. 이외에도 평소 선수들에게 술자리에 있도록 강요하고, 모욕적인 발언을 자주 했다'

지난 1월 1일, 선수들에게 폭행, 음주 강요, 폭언 및 모욕적 언사 등을 가한 전력이 있는 ○○시청 운동부 A코치가 재임명됐다. 앞선 진술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결정문에 기재된 피해 선수(진정인)의 진술이다. 피해 선수는 "(A코치가) 회식 때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제한했다"며 "술을 못 마시는 선수들까지도 강제로 술을 먹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폭행 코치 재임용한 지자체
 

▲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자문위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출범식에 참석해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앞서 ○○시청 소속 선수들은 A코치로 인한 피해사실과 함께, "○○시가 이런 행위를 한 A를 다시 코치로 채용해 선수들의 인권이 (또 다시) 침해받고 있다"며 2019년 1월과 3월에 걸쳐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은 자명하다. 4일, 인권위(위원장 최영애)는 보도자료를 통해 선수를 폭행한 A코치도, 해당 지도자를 재 채용한 지자체와 스포츠 공정위 모두 "선수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인권위는 해당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자들에게 권고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A코치는 ○○시청 운동부에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재직한 후, 2018년 코치직 계약이 해지됐다. 15~17년은 피해 선수들의 폭행사건이 있었다고 진술한 기간이다. 이어 그는 2019년 1월 1일 자에 코치로 재임용된 후, 지난 5월 31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피해 선수들이 증언한 A코치의 폭행 및 인권침해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A코치 재임용 과정에서 선수들이 또 다른 인권 침해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먼저 ○○시는 17년 12월 내부 조사를 통해 관련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다시 재 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운동부의 임명권자이자 구단주인 ○○시 시장 또한 관련 사실을 충분히 알았음에도 그의 재임용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은 2017년은 물론, 현재까지도 선수들이 겪은 폭행 및 인권침해와 관련해 어떠한 조치를 취한 바가 없다.

하지만 ○○시장(구단주)은 "코치 임용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과거 형사처벌, 범죄경력 등을 이유로 임용을 제한한다면, 오히려 직권남용으로 A코치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A코치 재임용을 지속적으로 폄훼, 왜곡하는 것은 구단주의 고유하고 정당한 임용권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이자 지휘감독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폭행 코치 재임용, 반발하자 "코치가 싫으면 운동부를 떠나라"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출범식에 참석해 자문위원들과 함께 현판을 공개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행·성폭력 등의 침해에 대한 조사와 피해 구제를 통한 국가 차원의 종합 대책 마련을 위해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을 출범했다. ⓒ 유성호



A코치의 재임용을 반발한 선수 및 감독에게 협박, 모욕, 경고장 발부 등을 가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 선수들의 진술에 따르면, ○○시청 소속 공무원(아래 B과장)은 "살인 절도죄가 아닌 이상 재임용 될 수 있다"거나 "코치가 싫으면 운동부를 떠나라", "벌금 300만원 이하면 코치 임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등의 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B과장은 A코치 재임용을 추진한 실무 부서의 장이며, 운동부 선수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 감독권자다. 하지만 인권위 측 결정문에 따르면 그는 "A의 재임용 결정 전까지 그의 전력을 알지 못했다"며 "선수들에게 협박, 모욕성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말로 선수들의 진술을 모두 부정한 바 있다.

인권위는 피해 선수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A코치의 행위가 지도자로서 일반적인 선수단 관리를 넘은 것으로 봤다. 이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할 선수들의 신체 자유와 사생활, 그리고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까지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의 A코치 재임용 과정 또한 재량을 넘어선 것으로 봤다. B과장의 부당한 발언과 경고장 발부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선수들과 감독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이들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마저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와 ○○도체육회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19년 4월, 스포츠공정위원회는 A코치의 선수 폭행 등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같은 해 5월, 재심사를 담당한 ○○도체육회 또한 선수들이 제기한 인권침해 내용에 대해 대부분 무혐의로 처리했다. 폭력행위에 대해서만 임의로 6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폭력 행위가 있을 경우, 경미한 사안이라도 징계·감경 없이 1년 이상 3년 미만의 출전 또는 자격정지 처분을 해야 한다.

인권위는 앞선 체육단체의 결정과 관련해 "○○도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을 통해 스스로 정한 절차와 재량을 일탈해 판단했다"며 "인권침해 행위로부터 선수와 지도자를 보호해야 할 기본적 의무와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4일, 인권위는 "○○시장에게 단원 채용 시 폭력·성폭력 등 인권 침해 전력이 있는 자에 대한 자격요건을 강화 할 것, 관련 업무 종사자들에게 특별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 그리고 B과장의 행위에 대해 자체조사를 실시해 적절한 인사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 "대한체육회 회장에게도 해당 지역 체육단체들에 대한 감사 실시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한편, 해당 종목의 중앙단체 협회장에게 A코치에 대해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할 것도 권고했다"고 했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를 통해 인권침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지자체 및 체육단체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라며 "관계 기관들의 스포츠 인권인식을 환기시키고 향후 체육관련 단체 운영에 있어 책임성을 강화하는 권고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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