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산 지 13년, 나는 아내 집으로 휴가 간다
[결혼했는데 따로살아요 ①] 나는 파주, 아내는 서울... 자발적 별거로 얻은 것들
16년 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아내도 함께 파주로 이사했었습니다. 여전히 서울의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의 아내가 오가야 하는 거리는 왕복 120km. 아름다운 전원은 출퇴근의 피로가 누적되어 갈수록 아름답기만한 곳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오지 않자 생겨난 일
▲ 아무리 사랑해도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홀로인 시간을 통해 누군가 나를 대신하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아내가 불쑥 내게로 오면 설렘이 되살아납니다. 그것은 떨어져 지낸 시간의 효험이라 믿습니다. ⓒ 이안수
아내가 오지 않자 내 생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올 때까지 저녁밥을 미루지 않아도 되고, 출근을 위해 새벽에 기상해야 하는 아내의 주기에 맞추어 내 저녁 생활을 조절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웃이나 지인들과의 교류도 더 활발해졌습니다. 대화가 더 길어져도 안절부절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내게 할애되는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습니다.
주중 파주로 서너 번 퇴근하던 아내는 그 횟수가 두어 번으로 바뀌었고, 더 시간이 흐르자 주말에 한 번으로 바뀌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차가 없는 나를 위해 올 필요가 있는 때만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퇴근 후 매일 1천미터씩 달리기를 하고, 등산학교에 입교해 등반을 배우고, 산악인들과 암벽등반을 즐겼습니다. 동기들과 전국산행을 경험한 뒤 홀로 지리산 종주를 해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교해 경전을 배우고 도반들과 수행하는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독서량도 훨씬 늘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식은 가족 단톡방을 통해 공유하지만, 아내가 파주에 올 때면 각자 쌓아둔 얘기를 풀어내느라 대화거리도 풍부해졌습니다.
별거는 배려할 수고를 더는 배려
나는 직업적인 이유로, 혹은 개인적인 욕구로 긴 기간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40대 후반에는 홀로 해외 유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로 따로 떨어져 사는 삶은 우리 부부에게 낯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아내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의 스산함에 대해 알게 되었고, 더불어 아내 없는 시간의 생존을 견디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도 있었습니다.
내 방랑의 시간은 아내에게 짐을 지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육아와 부모을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시쳇말로 독박육아뿐만 아니라 독박부양인 셈이었습니다. 나는 그 시간들에 대해 늘 아내에게 빚진 마음이었습니다.
▲ 아내는 직업상 야근과 장기 출장이 잦은 나의 도움 없이 독박유아를 감당했습니다. ⓒ 이안수
공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배려해야 하는 상태이거나 돌보아야 하는 상태의 지속입니다. 온전히 '자신'인 시간 대신, 누구의 부인이고 며느리이고 엄마이고 학부모인 정체성을 강요받습니다.
세월과 함께 아이들은 자랐고 부모도 모두 떠났습니다. 모든 의무의 시간을 마친 이때야말로 아내에게 자유를 허락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부부가 떨어져 사는 시간은 상대를 배려할 필요조차 필요 없는 시간을 선물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한 셈입니다.
아내는 1년 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가 아내를 볼모로 그랬던 것처럼, 아내도 홀로 세계를 떠돌며 충분히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대한 준비로 아내는 지난해 6개월의 안식월에 강도 높은 훈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미 자전거 여행과 필리핀 어학연수, 그리고 나와의 태국, 라오스 자유여행이었습니다.
▲ 작년 아내는 안식월을 활용해 남미자전거여행에 도전했습니다. 아내는 달리기, 등반, 다이빙, 트레킹 같은 운동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LAT(Living Apart Together)의 삶을 통해 그런 아내를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 이안수
▲ 내년 정년을 앞둔 아내가 퇴직 후 홀로도 자유롭게 세계를 떠돌 수 있도록 나의 독립여행 비법을 전수하기 위해 작년 안식월을 통해 태국과 라오스 자유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 만큼 다양한 체험과 현지인과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숙소, 현지인의 식사, 갖가지 이동 방법을 택했습니다. 숙소는 호텔, 게스트하우스, 에어비앤비 가정 등을 가리지 않았고, 길거리 식사부터 레스토랑까지 장소를 불문했지만 현지식을 고집했습니다. 이동은 열차, 버스, 썽태우, 배, 오토바이, 자전거 등을 두루 활용했습니다. ⓒ 이안수
아내에게 생긴 '자기만의 방'
지난해 아내는 첫째 딸과 함께 지내던 집에서 나와 다시 이사를 했습니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집입니다.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다닌 둘째 딸의 유학비용을 아내가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한 둘째 딸은 그 비용을 매월 엄마에게 상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기대가 없었던 딸의 부채상환에 오히려 빚진 마음이 되어 그 돈을 딸의 몫으로 모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딸은 단호했습니다.
"그 돈은 엄마 돈이야. 제발 엄마의 자유를 위해 사용하세요!"
비로소 아내는 그 돈으로 너무나 한적한, 그래서 개발호재가 없는 곳의 연립주택 반지하 10평짜리 집을 마련했습니다. 아내는 그곳에 책과 책상, 침구 하나를 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내 혼자만의 살림집이지만 독서하고 기도하는 수행공간에 더 가깝습니다.
▲ 서울 아내의 집.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많은 것을 들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확장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LAT의 삶은 결혼 후 가정의 테두리 안에 국한된 사고의 범위를 확장해줍니다. ⓒ 이안수
공간은 시간의 밀도를 바꿉니다. 혼자 온통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을 가졌을 때 온전하게 자기 시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저택보다 아무리 작아도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존엄해지는 것입니다.
아내의 집을 방문한 한 여성작가가 말했습니다.
"'자기만의 방'의 꿈을 이루신 걸 축하드려요! 이 집에 와 보니 저희 엄마가 떠오르네요. 평생 아이들 방, 남편 서재에 밀려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엄마가 생각났어요. 엄마 모시고 또 올게요."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이웃, 친구, 직장동료들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부부와 가족에 집착해 경화되었던 관계들이 복원의 계기를 맞습니다. 이것은 균형의 회복입니다.
나는 간혹 서재 밖의 인기척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그것이 아내의 발걸음인가 싶어서입니다. 그 설렘이 좋습니다.
나는 간혹 아내의 집으로 '휴가'를 갑니다.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그곳에 가면 나도 비로소 기도할 시간이 허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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