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재' 이번엔... 유도신문이란 무엇인가
[양승태 12차 공판] 현직 법관 증인신문 앞두고 검찰-변호인 신경전... 법률·규칙 두고 갑론을박
▲ 서울중앙지방법원(자료사진) ⓒ 연합뉴스
'알아 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재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사소송의 원칙과 이론을 엄격히 다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이번에는 증인신문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의 뜨거운 토론이 이뤄졌다.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12차 공판에서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판조서를 증거로 신청했다. 7월 10일 증인신문을 앞둔 박찬익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현 변호사)이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었다. 검찰은 실물화상기로 화면에 띄우지 않더라도 박 전 심의관 기억을 떠올리는 차원에서 본인에게만 제시하게 해달라고도 했다.
변호인단은 곧바로 반대의견을 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검찰이 '과거 다른 재판에서 이렇게 이렇게 진술한 바 있느냐' 등의 신문을 상정한다면 그 자체로 형사소송법이 금지하는 유도신문에 해당한다"며 이 방식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대법관 변호인 역시 "재판부가 (다른 재판의 공판조서를 활용하기보다는) 증인에게 직접 듣는 게 낫다고 했고, (기존) 증언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검찰이나 변호인 의견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형사소송규칙 75조 2항 4호를 내세워 맞섰다.
제75조(주신문) ②주신문에 있어서는 유도신문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검찰은 "반대신문에서 검찰 진술이나 임종헌 재판 진술 등을 이용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기억의 환기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유도신문의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며 "'지난번 재판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4. 증인이 종전의 진술과 상반되는 진술을 하는 때에 그 종전진술에 관한 신문의 경우
변호인단도 "전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유도신문"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이게 허용되면 수사기관 진술과 재판에서 한 진술이 다를 경우, 그리고 공소사실 입증이 어려울 경우 '증인, 수사기관 진술이 다른데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게 맞는 것 아닌가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며 "이건 유도신문을 넘어서 증인에 대한 압박이고 자유로운 증언을 막는 위험이 있다, 검찰 요청은 불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에 약 30분 가까이 '유도신문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공방을 들은 재판부는 오후 재판을 시작하며 결론을 밝혔다. 박남천 부장판사는 "검찰이 추가로 (증거) 신청한 증인신문 조서를 증인신문할 때 필요한 경우 제시 가능한 걸로 하겠다"며 "주신문사항을 작성할 때 가급적이면 종전에 진술했던 내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당직 때문에, 금요일이라 못나온다는데...
▲ 취재 기자 질문에 답변 거절하는 양승태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손으로 마이크를 밀며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 유성호
한편 5일 재판은 2014~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근무한 시진국 부장판사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6월 26일을 첫 증인신문 기일로 정했으나 시 부장판사의 재판일정을 이유로 한 차례 미뤘다. 그러나 시 부장판사는 '7월 5일 당직근무를 해야 한다'며 또 다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또 다른 주요 증인, 정다주 부장판사(2013~2015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역시 6월 21일 신문예정이었으나 다음날인 토요일 일정과 6월 24~25일 재판 준비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검찰은 지난 3일 재판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식이라면 증인으로 신청된 법관들의 재판 기일, 또 재판 준비에 필요한 기간, 심지어 당직 일정까지 고려해 증인신문 기일을 지정해야 하는데 이러면 재판이 한없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
검찰은 또 "일반사건에서 당직근무 해야 한다고 증인 출석이 어렵다고 하면 합당한 사유로 보는지 의문"이라며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이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시 박남천 부장판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잘 생각해보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틀 뒤 그는 "오늘 신문하기로 예정했던 증인(시진국 부장판사)이 출석 못한 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걸로 보겠다"며 "다른 조치(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은 감치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음)는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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