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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한국에서 종적 감춘 스틱 차, 왜?

[아이들은 나의 스승 168] 편리함이 낳은 불편함

등록|2019.07.28 11:43 수정|2019.07.28 11:43

▲ 요즘 대리운전을 부를 땐 반드시 미리 수동기어 차량임을 밝혀야 한다. 동종 업계의 협정 가격이라는 듯 수동기어 차량의 대리운전비가 일반 차량에 비해 3천 원 더 비싸다고 안내해주었다. 수동기어 차량이 거의 없어 운전이 가능한 대리운전 기사들 역시 드물다는 것이고 드문 만큼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 pixabay


며칠 전 술자리에 차를 가지고 간 바람에 대리운전을 부른 일이 있었다. 술자리 약속이 있는 날이면 대개 차를 세워두고 출근하는데, 그날은 갑작스럽게 약속이 잡혀 핸들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자리가 파한 후 함께한 지인들이 부른 대리운전 기사들은 금세 도착해 자리를 떴는데 나는 혼자 남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유인즉슨 내 차는 수동기어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업체에서 수동기어 차량 운전이 가능한 기사를 찾기가 힘들었던 거다. 참고로 요즘 대리운전을 부를 땐 반드시 미리 수동기어 차량임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꿎게 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고, 다른 기사를 다시 불러야 해서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스틱'이면 기본 1만5천 원부터입니다."

동종 업계의 협정 가격이라는 듯 수동기어 차량의 대리운전비가 일반 차량에 비해 3천 원 더 비싸다고 안내해주었다. 여기서 '일반'이란 오토 차량을 말하고 '스틱'은 수동기어를 가리킨다. 수동기어 차량이 거의 없어 운전이 가능한 대리운전 기사들 역시 드물다는 것이고 드문 만큼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요즘 도로 위 수동기어 차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르막길에 앞차가 멈추면 으레 뒤로 밀릴 걸 감안해 간격을 유지하는 게 운전의 '상식'이었는데, 꽁무니에 바짝 붙은 뒤차로 인해 식은땀 흘린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여전히 수동기어 차량이 운행되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서다.

수동 차량은 몇 대? 동료교사와 한 엉뚱한 내기 

얼마 전 함께 근무하는 한 동료교사와 엉뚱한 내기를 했다. '학교 교직원 차 중에 수동기어 차량이 얼마나 될까'를 두고 이야기 나누다 재미삼아 내기를 하게 된 거다. 수동기어 차량을 운전하는 입장에서 교사 수와 차량 구입 연도 등을 감안할 때 아무리 적다고 해도 스무 대 중 한 대꼴은 될 거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그는 되레 내 차를 제외하곤 단 한 대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수동기어 차량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운전해 본 경험도 없다'면서 말이다. 내심 승패의 기준을 몇 대로 정할까를 고민 했었는데, 한 대라도 있으면 내가 이기는 거고  없으면 지는 것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 최근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의 수동기어 차량의 출고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언뜻 '수동 반, 오토 반'이었는데 이제 수동기어 차량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 pixabay


행정실의 자료를 들춰보니 학교 교직원용으로 등록된 차량 대수가 총 136대였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여러 대가 등록된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테니 전체 교직원 수를 감안하면 100대 정도의 차량이 매일 교문을 드나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충 세단 형 승용차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반반이다.

일일이 확인한 결과 학교 내 수동기어 차량은 내 차를 포함해 달랑 2대뿐이었다. 만 10년 된 2009년식이라 그나마 여태껏 남아 있는 거라면서 3년이 채 안 된 내 차가 사실상 유일한 수동기어 차량이라고 '공인'을 받았다. 2009년보다 연식이 더 오래된 차량도 10대 남짓 있었지만 모두 오토 차량이었다.

그는 내기에 져서 커피를 사야 한다는 것보다 아직도 수동기어 차량을 몰고 다니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운전면허 시험도 대부분 오토 차량으로 응시하고 택시는 물론 시내버스조차 수동기어를 쓰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수동기어가 장착된 건 오로지 순간 스피드가 요구되는 스포츠카뿐이라고 여겨왔단다.

듣자니까 최근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의 수동기어 차량의 출고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언뜻 '수동 반, 오토 반'이었는데 이제 수동기어 차량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자가용 승용차로만 한정하면 비율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오랜 문화유산이나 독특한 경관이 아니라 도로에 오토 차량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30도는 돼 보이는 가파른 언덕길에 주차된 차량에 수동기어가 장착돼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렌터카가 수동기어 차량뿐이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을 만난 적도 있다.

같은 모델인데도 내수용은 오토, 수출용은 스틱

전 세계적으로 오토 차량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토 차량 선호 현상은 유독 두드러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자동차 시장에서 수동기어 차량은 60%대이고, 프랑스의 경우 80%를 넘는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같은 모델인데도 내수용은 오토, 수출용은 수동기어를 장착하고 있다. 심지어 수동기어를 선택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동기어 차량을 외면하게 된 이유는 뭘까. 흔히 교통 체증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운전하기가 불편하다는 걸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하다. 비탈진 지형에 도로마저 비좁고 교통 체증 역시 만만치 않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여전히 수동기어 차량이 다수라는 걸 설명해낼 수 없다.

일각에선 과거 자동차 보험사의 횡포를 탓하기도 한다. 오토 차량이라는 이유로 보험료를 대폭 할인해주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시나브로 수동기어 차량을 선택하지 않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토 차량의 기술 향상으로 연비나 가격 등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과 장애인의 외부 활동 증가와 인구의 고령화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과거 수동기어 차량을 구입할 때 영업사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충고'가 있다. 같은 모델의 오토 차량에 비해 턱없이 싼 이유는 기어의 기계 값 차이도 있지만, 그보다 중고차로 팔 때 제 가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심지어 오래 타다 고장이 날 경우 차량을 맡길 정비소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오토 차량을 팔기 위해 부러 겁을 준 것이지만 그도 수동기어 차량이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선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기술력이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오토 차량에 견줘 여전히 장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차량 가격이 싸고 연비가 뛰어나며, 유지비가 적게 들고 가속 능력이 좋다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백하듯 말했다.

우선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급발진 사고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 운전을 하자면 두 손과 두 발이 다 움직여야 하므로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연비가 좋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오토 차량에 견줘 탄소 배출량이 20% 이상 적어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에 피해를 덜 끼친다고 강조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지만, 환경적으로 보면 운전의 편리함과 그만큼의 탄소 배출량을 맞바꾼 셈이죠."

동료교사와의 엉뚱한 내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편리함'에 대해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두고 나 또한 '진보'이며 '선(善)'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영업사원의 말마따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편리함은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양의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리함이 만든 불편함... 학생의 뜻밖의 대답
 

▲ 우리가 마냥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혹시 이웃과 다른 나라에, 더 나아가 애먼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다. ⓒ Steve Jurvetson


이게 오토 차량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그렇고,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그렇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그렇고, 머그잔과 종이컵이 그럴 것이다. 물론 휘발유와 경유차 생산이 중단되고 전기차와 수소차의 대중화를 코앞에 둔 마당에 오토 차량 대신 수동기어 차를 타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마냥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혹시 이웃과 다른 나라에, 더 나아가 애먼 미래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다. 수업시간 이런 경험담과 생각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한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선생님,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플라스틱을 순식간에 분해하는 물질이 개발되고 미세먼지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가 나올지도 몰라요. 4차 산업혁명 시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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