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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의 NARA 앨범 ⑤] 폭풍전야, 1949년

등록|2019.08.08 11:39 수정|2019.08.08 11:39

▲ 1.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 기념식이 중앙청광장에서 열리고 있다(1949. 8. 15.). ⓒ NARA


'좌익 게릴라' 준동에 전전긍긍하는 남한 사회

1948년, 한반도에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섰으나 해방정국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친일파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반민특위의 해체되고, 제주 4.3사건에 이은 여수 순천 사건,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흑백논리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1949년은 폭풍 전야와 같았다. 1948년 말,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국에게도 남한에서 군대 철수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자 1949년 6월, 미군도 남한 땅에서 철수했다. 그러자 한반도에는 힘의 공백이 생겨났다.

소련으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은 북한 지도부는 이때를 무력 통일의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아무런 군사적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만 외쳤다. 이는 마치 한 선로 위에 두 열차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꼴이었다.

이번 회에서는 백범 김구 장의행렬, 미 군사고문단의 교육, 좌익 게릴라 준동에 전전긍긍하는 치안, 북한인민군 탱크부대 사열장면 등의 사진들을 모아 봤다.
 

▲ 2.. 백범 김구 선생 운구 행렬이 장례식장이었던 서울운동장을 출발하고 있다(1949. 7. 5). ⓒ NARA

 

▲ 3. 미군 철수 후, 미 군사 고문단이 남아 국군에 병기교육을 하고 있다(1949. 7. 16.). ⓒ NARA

  

▲ 4. 미 군사 고문단이 국군에게 자동차 교육을 하고 있다(1949. 7. 19.). ⓒ NARA

   

▲ 5.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 기념식이 중앙청광장에서 열리고 있다(1949. 8. 15.). ⓒ NARA

  

▲ 6. 국방경비대의 교육 장면(1949. 9.). ⓒ NARA

  

▲ 7. 경북의 한 마을, 좌익 게릴라의 침투를 막고자 만든 방호벽(1950. 3. 5.). ⓒ NARA

  

▲ 8. 경북의 한 마을, 주민들이 좌익 게릴라를 막아내고자 방호벽을 쌓고 있다(1950. 5. 3.). ⓒ NARA

  

▲ 9 경북의 한 마을, 좌익 게릴라를 방어하고자 조직된 마을자위대가 출동하고 있다(1950. 5. 11.). ⓒ NARA

  

▲ 10. 좌익 게릴라 침투를 막고자 세운 나무 울타리(1950. 5. 11.) ⓒ NARA

   

▲ 11. 경북의 한 마을 주민들이 좌익 게릴라를 막아내고자 조직한 자위대 (1950. 6. 3.). ⓒ NARA

  

▲ 12. 소련으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은 인민군 탱크부대의 사열 장면.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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